해설:
아버지와 해후한 후에 요셉은 형들 중 다섯 형제를 데리고 바로를 찾아가 인사 시킵니다(1-2절). 요셉의 예상대로 바로는 그들에게 생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형제들은 조상 때부터 유목민으로 살았다고 답하면서 고센 땅에서 가축을 기르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3절). “여기에 잠시 머무르려고 왔습니다”(4절)라는 표현에서 보듯, 그들은 이집트에 영구 정착할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는 그 청을 허락하면서 자신의 가축까지 길러 달라고 부탁합니다(5-6절).
그런 다음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와서 바로에게 소개합니다(7절). 야곱은 바로를 만나 축복합니다(8절). “축복하다”는 일상적인 인사를 의미하기도 하고 제의적인 축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를 축복했을 것입니다. 바로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베푼 호의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비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는 야곱을 만나자 다짜고짜 몇 살이냐고 묻습니다(8절). 나이가 궁금할 정도로 겉모습이 늙어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곱은 백 삼십 세라고 답하면서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9절)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몇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우리는 야곱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바로에게 다시 축복하고 나옵니다(10절).
이렇게 하여 요셉의 가족은 고센 땅(후에 라암세스라고 불림)에 정착했고, 요셉은 흉년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식량을 공급해 줍니다(11-12절).
묵상:
야곱이 바로 앞에 선 모습을 상상합니다. 야곱은 무력한 이주민이고, 바로는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절대권력자입니다. 바로의 나이가 얼마였는지 알 수 없지만, 호호백발의 야곱에 비하면 그는 젊고 강했습니다. 바로는 왕의 모든 위엄으로 차려 입었고, 야곱은 궁정에서 제공해 준 예복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철저히 무력했고 바로는 전능자였습니다. 바로는 모든 것을 가졌으나 야곱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신에게도 바로에게 줄 것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바로가 가진 모든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입니다. 바로는 비록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그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다만 아버지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하여 살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바로를 보고 측은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시각에서 보면, 그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순식간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믿는 사람의 차별성이 드러납니다. 야곱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다 가진 것 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자신이 야곱보다 더 낫다고 생각 했겠지만, 야곱은 바로의 모든 권력과 권세와 영광을 덧없는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앞에 서 있는 야곱은 마치 제사장과 같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는 바로 앞에서 모든 예의를 갖추어 대했지만 비굴하지는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이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고후 6:10)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흔들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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