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요셉은 형제들과 충분히 회포를 푼 후에 종들에게 곡식을 내어 주도록 명합니다(1절). 막내 동생 베냐민의 자루에는 형들이 곡물값으로 낸 돈과 자신이 아끼는 은잔을 넣게 합니다(2절). 형들의 마음을 알아 보기 위해서 요셉이 함정을 판 것입니다. 그들이 요셉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한 나절 쯤 갔을 때 요셉은 관리인을 시켜 형제들을 추격하게 합니다. 그들을 따라 잡으면 왜 은잔을 훔쳐갔느냐고 호통을 치라 이릅니다(3-5절).
요셉의 지시대로 관리인은 형제들을 따라 잡고 왜 은잔을 훔쳐 갔느냐고 다그칩니다(6절). 그러자 형제들은 결백을 주장하면서 만일 자루를 뒤져서 은잔이 나오면 그 사람은 죽이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7-9절). 누구도 그런 일을 했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관리인은 은잔을 훔친 사람만 주인의 종이 되고 나머지는 돌아가도 좋다고 답합니다(10절). 형제들이 곡식 자루를 관리인 앞에 내려 놓자, 그는 맏아들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자루를 뒤지는데, 베냐민의 자루에서 그 잔이 나옵니다(11-12절). 그것을 보고 형제들은 이젠 죽었다 싶어 옷을 찢고 웁니다. 그들은 오던 길을 돌아 다시 요셉의 집으로 돌아갑니다(13절).
그들이 돌아오자 요셉은 그들이 한 일에 대해 크게 책망합니다(14-15절). 이 지점에서 저자는 “유다와 그 형제들이……”라고 쓰면서 유다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유다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인정하면서 모두가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16절). 그러자 요셉은 잔을 훔쳐간 막내만 자신의 종이 되고 다른 형제들은 돌아가도 좋다고 말합니다(17절).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제들의 마음이 어떤지를 떠 보려 했던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다가 요셉에게 나서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베냐민이 아버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아들이기에 곡식이 떨어질 때까지 돌아올 수 없었으며, 이번에 올 때에도 간신히 아버지를 설득하여 막내 동생을 데리고 왔으며, 따라서 막내 동생을 두고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은 자식된 그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호소합니다(18-32절). 유댜는 차라리 자신을 종으로 받아 주고 막내 동생은 아버지께 보내 달라고 간청합니다(18-33절). 만일 막내 동생을 두고 돌아갔을 때 아버지에게 닥칠 불행을 차마 볼 수가 없다면서 간곡하게 호소합니다(34절).
묵상: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됩니다. 열두 지파들 중에 유다 지파는 장자 지파가 됩니다. 맏아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을 범하여 실격 되었고,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디나의 일로 세겜 주민들을 살륙하는 끔찍한 죄를 범하여 실격 됩니다.
넷째 아들 유다 역시 장자 지파의 조상이 될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는 요셉을 구덩이에서 굶어 죽게 하느니 노예로 팔아서 돈이라도 벌자고 제안했던 사람입니다(37:26-27). 그는 또한 일찌기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독립하여 가나안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고 가나안 여인과 혼인을 합니다(38:1-2). 그의 두 아들은 하나님에게 징벌 받아 죽을 정도로 악했는데, 유다는 아들들의 죽음을 며느리 다말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그는 아내가 죽었을 때 애도 기간을 끝내자 마자 성매매 여인을 찾을 정도로 막장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일찌감치 장자 지파의 조상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나 유다가 다시 등장했을 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두번째로 곡식을 사러 갈 때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에 앞장을 섭니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감당하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합니다(43장). 요셉이 짜 놓은 계략이 말려서 꼼짝 없이 막내 동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유다가 나서서 요셉에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막내 동생을 보내 달라고 간곡히 청합니다. 그 대가로 자신의 인생을 내놓겠다고 제안합니다. 십여 년 전의 유다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유다가 다말의 사건을 통해 처절하게 깨어진 다음 새로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그에게는 새로운 존재로 발돋움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유다는 장자 지파의 조상이 되고, 그의 후손에서 다윗이 나오고, 메시야가 나옵니다.
흔히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나 통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고쳐 쓰십니다. 성경에 그 예가 수두룩한데, 유다는 그 중에서도 으뜸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처절한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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