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상처가 꽃이 되게 하는 법 (창세기 45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6. 26. 05:16

해설:

동생과 아버지를 향한 유다의 뜨거운 마음을 보고 요셉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물러가게 한 다음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는 억누르고 있던 감정을 쏟아 놓습니다(1절). 이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쌓였던 감정의 봇물이 터지자 한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요셉의 울음 소리가 바로의 궁에까지 들릴 정도였습니다(2절). 

 

형들은 요셉의 말을 믿을 수도 없었고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형제들은 자신들이 죽이려 했다가 노예로 팔아넘긴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자신들 앞에 서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믿어진 다음에는 두려움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요셉은 절대 권력자였기 때문입니다(3절).

 

요셉은 형제들을 가까이 오게 한 후, 두려워 하지 말라고, 자신을 이집트로 보낸 것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해 줍니다(4-8절). 이것이 그가 이집트로 팔려 온 이후로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경험해 온 진실입니다. 그는, 인간의 역사는 인간들의 선택과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지만 배후에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인간의 악행은 여전히 인간의 책임이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그 악행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요셉은 그 섭리를 믿었습니다. 형들이 자신에게 찾아와 과거를 뉘우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진실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의 배후에 계셨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가뭄이 끝나려면 오년이 더 있어야 하니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이릅니다(9절). 그는 이미 아버지와 형제들이 살아갈 곳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는 형제들에게, 아버지와 모든 식솔들과 가축들을 데리고 와서 고센 지역에 머물러 살면 자신이 모든 것을 돌보아 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10-13절). 이렇게 말한 다음,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부둥켜 안고 통곡합니다(14절). 그런 다음 형제들을 하나씩 끌어 안고 입을 맞추고 함께 웁니다(15절). 그러고 나서야 형들은 긴장을 풀고 요셉과 말을 주고 받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소식이 바로에게 전해지자 요셉의 모든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도록 모든 물자를 제공해 주겠다고 제안하면서 이집트에서 가장 좋은 땅을 택하라고 말합니다(16-20절). 요셉은 여러 대의 수레와 넉넉한 양식을 주어 아버지와 가족을 모시러 가게 합니다(21절). 그는 형들에게 새 옷을 주어 입히고 아버지에게 드릴 예물도 넉넉히 마련해 줍니다(22-23절). 요셉은 형들을 보내면서 “가시는 길에 서로들 탓하지 마십시오”(24절) 하고 당부합니다. 과거 야기를 하면서 네 탓 내 탓 하며 다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야곱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보고합니다. 야곱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아들들이 가져 온 양식과 많은 선물을 보고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25-27절). 야곱은 아들들에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고는 기꺼이 가서 요셉을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28절). 

 

묵상:

요셉의 이야기는 용서와 화해의 교과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사에는 때로 인간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심한 상처(악의, 시기, 질투, 혐오, 배신, 상실, 상해, 살상 등)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 상처는 상처 입은 사람에게 분노와 원한의 원인이 되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은 과거에 묶여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은 결국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악의 순환 고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깊어지는 것이 인간의 죄 된 본성의 속성입니다. 

 

악의 순환 고리를 끊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나 결단으로 되지 않습니다. 상실의 깊은 질곡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인간적으로 모두에게 버림 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납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를 생각하며 분노를 쌓기를 멈추고 미래를 바라보며 하루 하루를 충실히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가끔 멈추어 걸어 온 길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신비한 손길로 인도해 오셨음을 깨닫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실수와 악행을 거두어 그분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 섭리를 체험하는 만큼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하고 감동적인 화해의 순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열일곱의 나이에 이를 때까지 철부지 응석받이로 살았던 그가 노예로 팔려가는 끔찍한 시련을 겪으면서 하나님에게 눈 뜨고, 그 이후로 그는 인간의 악행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 그분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인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내던져졌을 때 요셉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짐작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 하나님은 그의 악행을 사용하여 요셉을 더 높은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형제들을 만나 화해하고 보니, 자신에게 대한 형들의 악행도 역시 하나님의 손에서 선을 만들어 내는 도구로 쓰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악의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 선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해서 인간의 악이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과 빌라도의 비겁한 선택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다고 해서 그들의 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시 1:1)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악의로 인해 고난을 당할 때 인간의 악의를 사용하여 선한 열매를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고난을 견뎌낼 수 있고 과거에 붙들어 매는 상처의 악한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상처는 꽃으로 변하고, 상처의 고름은 꿀로 변하며, 고름 냄새는 향기로 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