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아들들의 이야기를 듣고 야곱은 짐을 챙겨 이집트로 가는 길에 브엘세바에서 제사를 드립니다(1절). 브엘세바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거주하면서 예배를 드렸던 곳입니다(21:33).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하여 이집트로 내려 갔다가 겪은 일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삭도 기근을 피하여 그랄로 이주 했다가 곤경을 당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야곱은 이집트로 이사 가는 것에 대해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지켜 온 것을 자신이 버리는 것 같은 염려도 있었을 것입니다. 희생 제사를 드리는 그의 마음 상태는 하란으로 도피할 때의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2절).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3절)는 말씀으로 위로하면서, 그곳에서 그의 자손이 큰 민족으로 불어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반드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불러 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4절).
야곱은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바로가 보낸 수레를 타고 모든 가족과 재산을 모아 이집트로 향합니다(5-7절). 이 지점에서 저자는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들의 이름을 나열합니다(8-27절). 지금 우리에게는 모두 낯선 이름 뿐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이름들이었습니다. 이집트로 내려 간 육십육 명과 이집트에 있던 요셉의 가족 네 명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 자신이 고센 땅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28절). 그 소식을 들은 요셉은 지체 없이 고센 땅으로 가서 아버지와 감격적인 해후를 합니다(29-30절). 요셉은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변방에 있던 고센 땅을 정착지로 삼습니다. 당시에 문명이 발전했던 이집트 사람들은 유목민들을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곳에서 살고 있는 한 안전할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요셉은 만약을 위해 바로가 직업을 물으면 유목민이라고 소개 하라고 형제들에게 일러 둡니다(31-34절). 그래야만 변방에 정착하게 한 요셉의 의도가 의심 받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묵상:
하나님은 가나안을 이스라엘의 정착지로 정하시고 아브라함을 불러 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이곳 저곳을 유랑하며 살다가 기근을 만나 잡시 이집트 땅으로 피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큰 곤경을 치루고 가나안 땅으로 쫓겨납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나안을 지켰습니다. 이삭의 신부감을 찾을 때에도 그를 하란으로 보내지 않고 대신 종을 보냅니다. 가나안보다 훨씬 번영했던 하란에 갔다가 이삭이 그곳에 정착하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통이 이어져서 야곱도 하란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할아버지의 땅으로 돌아 옵니다.
가나안 땅에 돌아와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다가 겨우 살만 해 졌을 때 심한 기근을 만납니다. 아들들이 곡식을 사러 이집트에 내려갔다가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만납니다.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은 온 가족이 정착할 곳을 준비해 놓고 이민 오도록 초청합니다. 이 초청을 놓고 야곱은 심하게 고민했을 것입니다. 삼 대를 이어 지켜 온 가나안 땅을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겪었던 것처럼 큰 어려움이라도 겪지 않을까 걱정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브엘세바에 들러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란으로 가는 길에 벧엘에서 했던 것과 같이 야곱은 하나님께서 가는 길에서 지켜 주시기를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은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염려하지 말고 이집트로 내려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야곱은 가뿐한 마음으로 이집트로 향합니다.
지나고 나서야 안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없는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큰 민족으로 자라도록 준비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는 다른 민족이 살고 있었기에 큰 백성으로 자라기에 여러 가지 장애가 있었습니다. 또한 가나안 주민들의 죄가 아직 심판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 때가 오기까지 하나님은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길러 다시 불러 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주변부에 있던 고센 땅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한 이집트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당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야곱)의 후손들은 그 이후로 사백여 년 동안 그곳에서 살아갑니다. 잠시 동안 머물다가 돌아갈 마음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이토록 길어졌습니다. 사백여 년 동안 그들은 처음에는 이주민으로, 나중에는 노예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고난이 깊어지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왜 자신들을 이 고난 속에 내버려 두시느냐고 항의하고 불평했습니다. 하지만 끝에서 보니 하나님은 그들을 이집트에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붙들어 두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의 국가로 새출발 할 준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내셨습니다.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변덕을 부리시는 것처럼 보이고, 또 때로 그분은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왜 그렇게 하셨는지 그리고 왜 하나님의 때가 가장 완벽한 때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조차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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