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2 10

놀라는 제자들(막 6: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막 6:50)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섰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서기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분이십니다. 앞 절에 묘사된 유령 운운도 역시 이 놀라움에 대한 서술입니다. 놀라움은 바로 하나님 경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믿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야 할 그 구원 사건들이 예수님에게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구약성서의 하나님 경험도 역시 놀라움으로 묘사됩니다. 출애굽 이후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소고를 들고 춤추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

유령인가?(3)(막 6: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막 6:49) 성서 텍스트는 해석되어야 한다는 저의 주장이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르겠군요. 모든 게 해석되어야 한다면 결국 성서의 중심까지 해체되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그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의 신화적 요소를 무조건 제거하자는 게 아니라, 즉 불트만 식으로 탈(脫)신화화하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담아내려는 구원의 현실들을 바르게 찾자는 말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님에 관한 많은 경험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경험은 처음부터 고정된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 그 경험도 역시 깊어질 수밖에 없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여기 ..

유령인가?(2)(막 6: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막 6:49) 어제의 묵상에서 저는 성서의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호수 위에서 새벽 네 시에 바람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난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물위를 저벅저벅 걸은 것인지 아니면 해변을 걸은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텍스트는 물론 물위를 걸어서 오셨다고 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유추해석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 성서의 내용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면 되지, 하고 주장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성서를 의심하려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알려는 것입니다. 이건 개인의 알량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기독교를 진리의 차원에서 변증하려는 치열한 지..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신17: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명기17:19)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왕을 세울 때 왕이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인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말씀에 귀기울여야 하지만 특히 설날 아침에 가정에서 가장이라면, 어머니라면, 또 가정에서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면 이 말씀에 더욱 귀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항상 가까이 두고 읽으며, 말씀을 따라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지켜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이든지, 자녀나 남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슬기롭고,지혜로운 여인이든지,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자녀든지 주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

우연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2023.1.22, 주일)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룻기 2:3). 1978년 주한미군이었던 그렉 보웬(Greg Bowen)은 한국인 여자 친구와 함께 한탄강 주변에 소풍을 나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 물을 끓이려고 돌을 쌓다가 고고학을 전공한 그의 눈에 범상치 않은 돌 하나가 보였습니다. 모양과 절단면이 선사시대 유물인 주먹도끼가 틀림없었습니다. 경기도 연천군의 전곡리라는 시골 마을이 구석기시대 역사 유적지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시에 주먹도끼는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만 발견되었습니다. 찍개 정도만 발견되던 동아시아는 석기시대부터 문명의 차이가 난다고 고고학계가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렉 보웬의 우연한 관심이 세계 고고학계의 정설을 무너뜨리..

한 다스리는 자 (마 2:1-12)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6). 예수님의 성육신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합니다. 본문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 당시은 유대 왕 헤롯, 그리고 대제상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이 모두 예수님의 성육신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마리아와 요섭에게 은밀하게 알려주신 계획을 이제 공개적으로 나타내십니다. 공개적인 나타내심은 예수님의 오심이 예언의 성취이고, 역사적 사실임을 알려줍니다. 은밀한 이야기가 아닌 온 백성이 들어야 합니다. 백성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에게 알려줍니다. 헤롯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유대의 왕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를 묻습니다. 그 소식을 알..

행복한 목회

행복한 목회 목회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고 서원하였던 때에 당시 전도사님은 목회의 길은 고난의 긴 여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역을 하기 전까지는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군대 제대하고 드디어 사역의 현장에 처음 나갔습니다. 그 때 담임목사님은 말씀하시기를 목회의 길이란 오장육부와 쓸개를 다 버려야 갈 수 있는 길이라 하셨습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신학교 생활은 행복하였고, 전도사 생활도 즐거웠습니다. 마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신대원을 가고 전임 사역을 하면서 조금씩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알게 되었습니다. 전임 사역은 이전에 보았던 교육전도사 생활과 전혀 다른 패턴의 삶을 요구하였습니다. 새벽부터..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정체성 글쓴이/봉민근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정체성을 요구받으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산다면 아마도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방랑자와 같다고 할 것이다.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은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을 수 있는 가치를 깨닫고 살아갈 수가 있다. 우리는 세상의 것에 만족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비록 세상에 살고 있으나 결코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는다.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저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삼고 살아가기에 오직 말씀에 살고 말씀에 죽을 각오와 준비를 하며 사는 자들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하나님 앞에 어떤 인간이 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우리의 삶에 중심의 무게는 ..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시작됩니다.(마 2:13-23)

마 2:13-23 묵상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시작됩니다. 헤롯 왕의 살해 위협으로 애굽으로 피신합니다. 아기 예수 애굽 피신 예언(호11:1)의 성취입니다. 현자들의 속임으로 아기 예수를 찾지 못한 헤롯. 베들레헴 지경의 두 살 아래 남아를 살해합니다. 베들레헴의 통곡 예언(렘31:15)의 성취입니다. 헤롯 왕이 죽자 예수님을 애굽에서 부르십니다. 아켈라오 왕의 위협으로 나사렛에 머뭅니다. 나사렛 예수라 칭하는 예언(사11:1)의 성취입니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됩니다. 그 구원의 역사가 나에게 임함은 은혜입니다. 지금 여기서 그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