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0 13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누가복음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9:62) 누구나 자신의 과거의 어느 순간은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라서 잊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도 왜 그렇게 잊혀지지도 않고 떨쳐버리지도 못하고, 벗어나지도 못하는지 어렵습니다. 또 과거의 어떤 시간은 너무 좋았고, 자랑스럽고, 화려해서 놓치고 싶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머물고 싶은 시간도 있습니다. 벗어나고 싶은 과거이든, 머물고 싶은 과거이든 둘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사는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로 머물게 합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미련을 갖게 하고, 주저앉히고, 좌절시키는 것들이 얼마..

신적 권위(출6:14-30)

신적 권위(출6:14-30) 본문은 갑자기 출애굽의 대역사의 두 주역 모세와 아론 중심이 족보가 소개되고 있다. 즉, 본문은 모세와 아론 두 주역이 조상 레위 지파의 위치가 어떠함을 보이기 위해 먼저 르우벤과 시므온 지파의 족보를 언급한 후, 조상 레위로부터 두 주역에 이르는 족보와 그와 병행하여 레위지파내의 여러 가계들이 소개되고 있다. 우리가 본 족보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두 주역의 역사성과 출애굽의 새 역사가 두 주역을 중심으로 전개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모세와 아론이 지닌 신적 권위와 선민 지도자로서의 합법성을 강조하시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역자가 사역자라는 이유만으로 신적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신적 권위는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부터 부여 받는 것이기..

하늘땅사람이야기41 - 성과 속의 경계를 넘어

성과 속의 경계를 넘어 안녕하신지요? 한로를 앞둔 절기여서인지 조석 기운이 선선합니다. 새벽녘에는 한기가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개울가에 핀 물억새가 갈색에서 흰색으로 변해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았을 때 선생님은 문 밖에서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짧은 시간의 응시였겠지만 공교롭게도 눈길이 그렇게 마주친 것이지요. 누구시냐고 묻는 제게 선생님은 제 글을 읽고 꼭 만나고 싶어 어렵게 찾아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기치 않은 만남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부담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의례적인 응대만 하고 얼른 하던 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저를 대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진실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저는 이야기 ..

저물매(2) (막 6: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막 6:47)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동안에 이미 날이 저물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나쁘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군요. 저물지 않은 시간이라도 하더라도 배를 젓는 일은 만만하지 않은데, 하물며 저문 시간이라고 하니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배는 바다 가운데 있다고 하네요. 일반적으로 인생을 항해로 비유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도 역시 영적인 항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신앙생활에 저문 시간은 무엇일까요? 신앙적으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 시간일지 모릅니다. 예수를 믿는 세월이 쌓이면서도 신앙이 깊어지지 않는 시간 말입니다. 신앙에도 분명히 매너리즘이 작용합니다. 신앙생활이 습관으로 굳어지면 크게 어긋..

저물매(1) (막 6: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막 6:47) 벳새다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앞서 가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제자들은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벳새다 쪽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날이 저물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시간 계산을 잘못했는지, 아니면 바람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것인지, 또는 처음 배를 탈 때부터 날이 기울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오병이어 이야기와 시간적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한다면 세 번 째 경우에 해당될지 모르겠군요. 오병이어 사건이 이미 저녁 무렵에 일어난 것이니까요.(막 6:35) 그러나 이 두 사건을 시간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무리들을 돌려보냈다는 45절 보도만 감안한다면 연속적인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산으로 가신 예수님 (막 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려 산으로 가시니라.'(막 6:46) 예수님이 기도하기 위해서 산으로 가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영적인 삶의 진수인 기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에 집중하는 우리의 종교행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아야겠지요. 예수님의 공생애는 광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광야도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거기서 그는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시고, 마귀에서 세 가지 시험을 당하시기까지 했습니다. 그 뒤로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부근의 한적한 곳을 자주 찾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안으로 들어가려는 당연한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오늘 현대인들은 혼자 있는 시간도 공간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 시간..

당신의 주 무대는 세상입니까? (2023.1.20, 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태복음 5:13-14). 먹방, 쿡방이 대세인 셰프 전성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셰프들이 각종 방송에 얼굴을 내밀면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셰프들의 주된 활동공간은 바로 ‘주방’입니다. 한 유명한 셰프는 방송 출연은 쉬는 날만 하고 나머지 날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방을 지킨다고 강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셰프는 자신의 활동 무대인 주방에서 일할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납니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천 직업인들의 활동무대는 어디입니까? 얼핏 생각하기에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콜럼버스는 멍청했지만

콜럼버스는 멍청했지만 “콜럼버스가 인도로 출발했던 것은 잘못된 계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고 그 둘레는 약 29,000km라는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장을 믿었다. 콜럼버스는 인도까지의 거리가 4,345km라고 계산했는데 이 거리는 인도까지 실제 거리의 1/6에 불과했다. 당시의 배로는 인도까지 갈 수 있는 식량을 모두 실을 수 없었다. 콜럼버스가 인도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면 그는 인도로 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종하 저(著) 《다르게 생각하는 연습》 (새로운 제안, 20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콜럼버스는 멍청한 지도 계산법으로 인도를 향해 갔지만 인도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도전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더 값어치 있는 ..

어른들은 ‘불변’을 어린아이나 하는 말이라고 한다

어른들은 ‘불변’을 어린아이나 하는 말이라고 한다 “영원불멸이 없듯이 변하지 않는 노래도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불변은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웃어 넘기거나 사용하지 않으려 하지요. ‘불변’ 혹은 ‘영원’ 은 어린아이들이나 쓰는 단어라고 말입니다.” 고형렬 저(著) 《시 속에 꽃이 피었네》 (바다출판사, 203-20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합니다. 세월을 먹어본 어른들은 ‘불변’이라는 말을 어린아이들이나 쓰는 낭만적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에는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

예수님의 계보(역사 책)(마 1:1-17)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 1:1-17) 마태복음을 묵상합니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전한 예수님의 기쁜 이야기입니다. 4복음서 중 가잔 긴 복음서입니다, 마태는 세리였다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인 마태를 통하여 예수님의 복음이 기록되었습니다. 마태는 복음의 시작을 계보(역사)로 전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복음의 역사성과 진실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비역사적이고 사가가 아닙니다. 꾸면낸 이야기도 아니고 구전도 아닙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난 실제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계보 즉 족보라는 형식을 통하여 멀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