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397

하나님 앞에서 (마 6:1-18)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 6:1)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제자는 가버나움 산에 있던 제자이고 오늘 우리들입니다(마28:19). 산상살교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십니다. 마 6장의 초반은 구제, 기도, 금식에 대한 태도를 말씀합니다. 세가지 다 우리들에게 중요합니다. 어느 하나 소홀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가지 모습이 다 균형잡혀 있는 신앙이 건강하고 합당한 신앙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매우 주의하여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위입니다. 구제를 할 때 사람에게 영광받으려고 하는 것은 외식적인 것이라 말합니다. 오..

배려는 사랑이다.

배려는 사랑이다. 글쓴이/봉민근 상대를 생각하며 산다는 것! 이처럼 아름다운 삶이 세상에 또 있을까? 배려는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터치 하시고 간섭하심은 모두가 나를 위한 것들이다. 나에게 복주시기 위한 구실을 언제나 찾아 만드시는 하나님임을 깨닫는다. 선을 행하고 충성하라 하심도, 기도하라 하심도 결국은 나에게 복주시기 위한 것들이다. 하나님을 잘 믿다는 것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이지만 우리는 늘 하나님을 위하여라고 거꾸로 생각을 한다. 배려가 없는 사람은 늘 정죄하기 쉽고 나의 입장만 생각하게 되며 거기에서 시기, 질투, 원망이 섞여 나오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셨더라면 십자가를 지실 아무런 이유가 없으셨다. 나를 생각하셔서 나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셔서 십자가의..

힘을 빼야 배운다

힘을 빼야 배운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비행기, 자동차, 호랑이, 코끼리 등등 열심히 그림을 보여주며 해당 글자 쓰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쓰는 글씨를 보고 있던 아이는 볼펜을 달라면서 자기가 써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글씨를 쓰려고 애쓰는데 처음 써보는 글자는 어색하고 삐뚤삐뚤하게만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획의 순서를 알려주고자 아이의 손을 붙잡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역시 마찬가지로 글씨는 써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가 손에 힘을 빼고 볼펜을 아버지의 손에 맡겨야 하지만 끝까지 아이는 손에 힘을 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앞바퀴가 모래밭에 빠져서 아무리 액셀을 밟아도 자동차 바퀴가 헛돌기만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바퀴의 ..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된 거룩한 백성.(마 6:19-34)

마 6:19-34 묵상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된 거룩한 백성. 따라서 하늘의 가치가 삶의 기준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선한 청지기로 삽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의 선한 목자가 되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성도는 염려하는 대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의 기업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의 생명의 양식. 하나님 나라가 나의 궁극적 가치가 되며 하나님의 의가 나의 삶의 기준 되게 하소서!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마 6:19-34)

마 6:19-34 묵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물 쌓아 둘 곳은 오직 하늘이라고 가르치신 이유는 땅에 쌓아 놓은 재물은 자신과 가족을 망치기 때문입니다. 새나 백합화도 아무 염려 없이 공중을 날고 꽃을 피운다면 생존을 위한 인간의 염려는 얼마나 초라하고 가련한가. 예수님께서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신 이유는 그 후의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 후의 은혜를 모르는 자가 이방인입니다.

우박 재앙(출9:13-35)

우박 재앙(출9:13-35)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계속 거역하는 바로와 애굽을 향해 이번에는 우박 재앙을 내리셨다. 이는 그동안 강(7장)과 땅(8장)과 공중(9장) 재앙에 이는 하늘로부터의 전무후무한 우박 재앙을 내리신 것이다. “내가 무거운 우박을 내리리니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18절) 이로 말미암아 ‘전국에 우박이 애굽 땅의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에’(22절) 내려 사상 유래 없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26절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그 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 할렐루야! 우리는 여기서 심판 중에도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목도한다. 이 하나님께서 이 한주간에도 우리와 함께하심에 감사한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삼하22: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사무엘하22:31) 하나님은 시간적으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완전하심과 먼 과거부터 먼 미래까지 모두 아시는 완전하심과 못하시는 일이 하나도 없는 완전하심과 도덕적으로 흠결이 한 점도 없는 완전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성품도 완전하시고, 가르치심도 완전하시고, 모든 말씀도 완전하시고, 진실하시고, 영원한 진리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고, 멈추지 말고, 부지런히 따라가며 하나님과 함께 걸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되고, 그 능력의 은혜를 누리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언어가 됩니다. 오늘도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씻음의 영성 (막 7: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막 7:4) 요즘 영성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다시피 사용되는 탓에 저도 오늘 말이 되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일단 씻음의 영성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바리새인과 경건한 유대인들은 유달리 씻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본문의 설명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손을 씻지 않으면 먹지도 않았고, 잔과 주발, 놋그릇을 잘 씻었다고 합니다. 물이 귀한 곳이라서 유대인들이 목욕을 자주 하지는 못했겠지만, 씻는 일에 부지런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 중의 하나인 세례, 또는 침례는 물속에 잠긴다는 뜻이면서, 조금 더 포괄적으로 본다면 ..

장로들의 전통 (막 7: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막 7:3) 손 씻는 장로의 전통은 위생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유대인들의 지혜입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모든 전통은 지혜의 축적입니다. 세속적인 전통도 그렇고, 종교적인 전통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옛 선조들이 지키던 삼강오륜이라는 전통이 오늘 우리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조상시대에는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제사전통도 역시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전통의 근본 의미가 퇴색되고, 그것이 기득권을 보수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이겠지요. 오늘 한국교회가 지난 2천년 기독교의 전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우선 우리는 교회의 아주 중요..

부정한 손 (막 7: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막 7:2)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몇 사람이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본문이 설명하는 대로 부정한다는 말은 손을 씻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유대의 정결의식에 따르면 밖에서 돌아오거나 밥을 먹기 전에 물로 손을 씻어야만 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의 파키스탄이나 인도 사람들처럼 손으로 밥을 먹었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손이 아니라 포크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밥 먹기 전에 손 씻는 습관은 좋은 것이지요. 이런 일은 우선 위생건강에도 좋습니다. 고대시대에 불결한 환경과 전염병 등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정결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유대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