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386

십자가에 달린 자(4)(막15: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막15:29)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라는 말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들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당대의 가장 뛰어난 건축물입니다. 이런 건축물에 사람들이 얼마나 크게 감동했을지는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옛날부터 왕들은 장엄한 건축물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력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정치를 하는 통치자들은 많습니다. 특히 독재자들이 그런 건축물을 많이 세웁니다. 여기에는 종교 지도자들도 다를 게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 교회당을 자랑합니다. 그런 건축물은 신자들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을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매도할 필..

십자가에 달린 자(3)(막15: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막15:29) 지나가는 자들은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이 말은 예수님이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을 때 증인들이 나와서 한 내용입니다.(막 14:58) 예수님이 직접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에 대해서 아무도 단정적인 대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상황을 추론해볼 수는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이 실제 건물로서의 성전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고 말씀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런 일에는 무능력하십니다. 이런 관점에서만 본다면 산헤드린의 재판과정에서 증인으로 나선 사람들의 말과 십자가 앞에서 투덜거린 사람..

십자가에 달린 자(2)(막15: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막15:29)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쩔레쩔레 흔들며 모욕하고 있는 대상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인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다니, 이걸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불위의 존재자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린다는 말은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자가 아니든지 십자가에 달리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 모순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답은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내려오셨다는 교리입니다. 성육신(incarnation) 교리입니다. 인간의 육..

마가복음 15장 16-20절: 조롱과 모욕을 당하시다 / 김영봉목사

해설: 군인들은 심하게 매질 당한 예수님을 총독 관저 안뜰(브라이도리온)로 데리고 갑니다. 군중 앞에서 충분히 매질한 후에 안뜰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온 부대”(16절)는 육백 명으로 구성된 로마군 대대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서 머리에 씌운 뒤에, ‘유대인의 왕 만세!’ 하면서”(17-18절) 조롱합니다. “자색”은 왕족을 상징하는 색깔이었습니다. “가시관”은 유다 지방에서 자라던 가시나무 가지로 만든 것입니다. 이 나무의 가시는 이쑤시개 정도의 크기에 매우 날카롭고 강합니다. 그것으로 관을 만들어 씌우면서 군사들은 예수님에게 고통을 주는 동시에 조롱힌 것입니다. 한 동안 그들의 조롱과 모욕은 계속 되었습니다(19절). 그들은 그분이 참되고 영원한 왕이라는..

주님처럼 끝까지 사랑하게 하소서!(요한복음 13:12-15)

주님처럼 끝까지 사랑하게 하소서! (요한복음 13:12-15)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을 기록하는 요한복음 13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1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서 보여 ..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막 14:53-72)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그리고 서기관들이 모인 공회로 심문을 받으러 갑니다. 이때 베드로는 멀리서 주님을 따라갑니다. 공회에서 예수님을 심문하지만 증언들이 일치하지 않아서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각종 거짓말만 난무할 뿐입니다. 대제사장들이 여러말로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대제사장이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묻습니다. 침묵하시던 예수님은 이 질문에 " 내가 그 나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답을 하십니다. 이 답에 모인 사람들이 흥분합니다.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을 씌우고 사형에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독하고 폭행을 행합니다. 여기에 하인들도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 글쓴이/봉민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님의 영광을 입버릇처럼 말을 한다. 강단의 주된 설교도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겠다고들 한다. 과연 나는 그렇게 살았는가? 수 십 년 믿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말장난으로 그칠 때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말과 삶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게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산 흔적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오히려 주님을 나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삼고 살았다. 기도를 해도 나를 위하여 하고 예배를 드려도 내가 은혜받기 위해서 드렸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직 복 받겠다는 욕심으로 봉사할 때가 더 많았다. 말이 주님의 영광이지..

하나님 앞에서 쇼하지 마라.

하나님 앞에서 쇼하지 마라. 글쓴이/봉민근 위선이 팽배한 세상이다. 현시대는 다 방면에서 거짓이 난무하고 위장술로 진리를 왜곡하기에 뛰어나다.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다, 거짓 믿음이 진실을 왜곡하는 일들이 무수히 많다. 사탄은 인간을 노리갯감으로 삼고 사람들을 흔들어 불장난을 한다. 정의가 무엇인지 불의가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게 한다. 그야말로 분별력을 잃어버린 세상이다. 그러할지라도 믿는 자들은 믿음으로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한다. 믿음은 보여 주기가 아니다. 세상 사람과 구별되지 못하면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언제나 정직하고 정의로우며 깨끗함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자신을 포장하여 부풀리고 외식하는 쇼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한없이 경건하고 한없이 ..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어떤 남자가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삿짐을 다 옮기고 짐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마을 전체가 정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남자는 더듬거리며 수북한 짐 사이에서 양초를 겨우 찾았을 때 '띵동' 하며 현관 벨소리가 들렸습니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한 아이가 서 있었고 인사와 함께 말을 건넸습니다. "아저씨 양초 있으세요?" 아이의 말을 듣자 남자는 '이사 오자마자 나에게 양초를 빌려달라고 하다니 만일 지금 양초를 빌려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것저것 빌려 달라고 하겠군'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양초가 없다고 말하며 아이를 돌려보내려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아이가 급하게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아저씨! 이사 온 첫날부터 정전 때문에 불편하실 것 같아서 양초를 드리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막 15:1-15)

막 15:1-15 묵상입니다.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 ‘유대인의 왕이냐’ 묻는 물음에 긍정하십니다. 하나님께 맡기고(벧전2:23) 순종의 길을 가십니다. 전례대로 죄수 한 사람의 석방을 요구하는 무리. 유대인의 왕을 놓아주기를 원하냐 묻는 빌라도. 바라바를 요구하라고 무리를 충동하는 대제사장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외치는 무리.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외치던 그 무리입니다. 빌라도는 무리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넘깁니다. 나는 무리인가 제자인가 자문자답해 봅니다. 진리보다 세상 유익에 마음이 쉽게 기웁니다. 부끄럽지만 주님의 긍휼을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