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막 14:53-72)

새벽지기1 2024. 3. 28. 04:25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그리고 서기관들이 모인 공회로 심문을 받으러 갑니다. 이때 베드로는 멀리서 주님을 따라갑니다.

공회에서 예수님을 심문하지만 증언들이 일치하지 않아서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각종 거짓말만 난무할 뿐입니다.

대제사장들이 여러말로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대제사장이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묻습니다.

침묵하시던 예수님은 이 질문에 " 내가 그 나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답을 하십니다. 이 답에 모인 사람들이 흥분합니다.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을 씌우고 사형에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독하고 폭행을 행합니다. 여기에 하인들도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칩니다.

그러는 사이에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여종과 곁에 있던 사람들에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한 사람이라는 말에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그리고 그 새벽에 닭이 두 번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기억이 나서 울었습니다. 서글픈 울음이자 통곡의 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증거하십니다. 그 자리가 자신의 생명이 오고가는 상황이지만 그리스도 되심을 숨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인자의 승천과 재림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제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베드로의 부인을 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모욕과 멸시를 받고 죽음의 길을 가는데 제자들은 도망가고 적극적으로 부인합니다.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권력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모른다고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한 통속이 되었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신앙으로 준비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롯 유다와 다른 모습입니다. 회개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누구라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까지 온전한 복음의 능력을 누릴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보내주시는 성령의 임재없이는 예수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언제든지 종교권력자와 베드로의 모습처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주의 은혜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오늘도 부활의 주님을 믿는 신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