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6 13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신25: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신25:4) 고대 근동지방에서 추수한 곡식을 타작할 때 소들이 곡식 위를 걸어 다니게 함으로써 탈곡을 했다. 그 때 소들은 자연히 자기 발아래의 곡식을 먹게 마련이었다. 이에 주인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소의 입에 망을 씌우기도 했다. 본문은 바로 그와 같은 무자비한 행위를 금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비록 짐승이라 할지라도 정당한 대가를 주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 날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그 수고와 노력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악성 임금체불 관련 뉴스가 이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한편 사도 바울은 본문을 인용하여 전도자가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당하다’라는 원칙을 설명했다(고전9:9).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6:36-3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들, 하나님 나라에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자비로우라! 서로 비판하지 말라! 마치 자신이 재판관이라도 된 것처럼 정죄하지 말라! 용서받은 것처럼 용서하라! 나누어주고, 베풀라! 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절로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도저히 자..

거룩한 충격, 각성을 일으키다 (행5:1~11)/ 이재훈목사

하나님은 때로 충격적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각성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어떤 모습에 있다 할지라도 버리지 아니하시며 사랑하십니다. 그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때로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서 그 사랑에 합당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일깨우시는 일을 행하십니다. 5장에 나타난 충격적 사건이 하나님의 의도 속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성경 역사 속에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을까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예를 들어, 에서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성소에서 다른 불을 분향했을 때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 가나안을 정..

세계관-사회학1. 결혼과 가정 / 류현모교수

기독교는 모든 죄의 근원을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의 영혼과, 악으로 향하는 영혼의 자유의지라고 규정한다. 죄에 대한 책임과 회복의 책임도 사회 전체보다는 개인에게 있다. 반면 무신론자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문화가 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결정짓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죄의 근원을 잘못된 사회와 그 문화에 전가한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는 가족, 교회, 국가와 같은 사회 기관을 인정하기에 각 세계관들이 이런 사회기관들을 사회의 죄악과 연관하여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기독교에서 가정은 하나님이 임명하신 최초의 사회기관(창2:24)이며 모든 사회기관의 기본이다. 이스라엘의 가정은 자녀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양육하는 기관의 역할을 부여받았다(쉐마, 신 6:4~9). 이스라엘의 가..

빌라도의 재판(10)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막15:5) 예수님의 침묵 앞에서 빌라도는 놀라워했습니다. 이 놀람은 단순히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적인 경험입니다. 복음서에서 놀람은 늘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비상한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상대한 사람들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겠지요. 빌라도는 로마 제국의 엘리트입니다. 유대 총독을 끝내면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고위직을 맡거나 아니면 더 큰 지역의 총독으로 승진하겠지요. 그는 내로라하는 많은 학자, 정치인, 군인, 귀족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한 뒤에는 유대의 귀족들과도 친분을 맺었겠지요. 그는 사람을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

빌라도의 재판(9)(막15: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막15:5) 산헤드린의 고발과 빌라도의 설득도 예수님의 침묵을 해제할 수 없었습니다. 이 침묵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비명을 지를 때까지 계속됩니다. 예수님은 앞서 산헤드린 법정에서도 침묵을 지켰습니다.(막 14:60,61) 단 한 마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은 종교와 정치의 최고 권력자 앞에서 각각 한 마디만 하신 셈입니다. 가능한 많은 말로 자기를 변호해야 할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수님은 왜 입을 다문 것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첫째, 지금 예수님을 고발한 산헤드린을 설득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단지 처리..

빌라도의 재판(8)(막15: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막15:4) 국가와 기독교의 관계가 복잡하다는 어제 묵상의 마지막 문장을 보충 설명해야겠습니다. 자칫하면 여기에는 많은 오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오해는 기독교가 국가 종교, 또는 시민 종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의 뿌리는 유럽 역사에서 콘스탄틴 황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로 기독교는 유럽의 중심 종교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박해를 받던 자리에서 이제는 박해할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로마 황제와 교황은 이 세상을 완전하게 지배하는 쌍두마차였습니다. 여기에서는 국가와 교회가 아무런 대립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황제의 신적 권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막 11:27-12:12)

기도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일에 대하여 책망하신 예수님을 향하여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항의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항의에 대하여 세례 요한의 권위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습니다. 그 대답에 따라서 말씀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똑똑한 이들은 예수님의 질문이 가진 의도를 잘 알고 있었기에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라 하면 셰례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위가 아니라 한다면 세례 요한을 부정하는 것이니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들은 알지 못한다고 얼버부립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악한 중심을 아시고 나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답이 있습니다. 질문이 정직하지 않으면 정직한 답을 얻을 수 없습..

반드시 명심하고 살아야 할 것들

반드시 명심하고 살아야 할 것들 글쓴이/ 봉민근 늘 명심하고 살아야 한다.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사실! 인생은 짧다는 사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 인간의 능력은 한계 있다는 사실! 욕심을 부려도 단 한 가지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 죄를 지으면 심판에 이른다는 사실! 스스로 죄를 씻을 수 없다는 사실!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꺾으신다는 사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코 만족함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이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믿어야 한다. 믿지 않는 자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없고 반드시 지옥에서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괴로운 생각 극복하기

괴로운 생각 극복하기 어느 나라의 왕이 철학자 세 사람을 궁으로 불러 질문했습니다. "그대들은 인생을 살아갈 때 가장 괴로운 일이 무엇인가?" 그러자 한 철학자가 대답했습니다. "노인이 되면 일을 못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가난이 찾아올 테고 가난이 찾아와도 힘이 없기에 일을 할 수 없게 되죠. 그 때문에 마음과 다르게 일을 할 수 없게 된 늙은 몸이 괴롭습니다." 또 다른 철학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평생 꿈꾸던 것을 이루기 직전 한계에 부딪혀 포기해야 할 때 괴롭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철학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아무런 선행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인데 그런 죽음 앞에는 오직 후회와 뉘우침밖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삶을 괴롭게 만드는 상황은 저마다 다양하지만 사실은 상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