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7 16

성도의 거룩성

성도의 거룩성 글쓴이/봉민근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믿는 자도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 성도가 거룩 성을 잃으면 불신자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된다. 거룩하게 살고자 하면 먼저 내속에 더러운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깨끗하게 씻어야 내야 한다. 거룩한 척한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몸을 깨끗이 씻었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거룩은 거룩한 분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거룩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도는 더러운 것에 때 묻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온갖 죄를 지으면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나라다.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 흰옷을 입고 가는 곳이 천국이다. 믿는 자가 거룩 성을 잃으면 존재감을 잃은 것..

악어와 악어새

악어와 악어새 자연의 공생관계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악어와 악어새(이집트물떼새)를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날씨 좋은 날 햇볕을 쬐던 악어가 기분 좋게 입을 벌리고 있으면 악어새가 입안으로 날아 들어와 악어 이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쪼아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악어새는 배를 채우고 악어는 이빨을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어 서로 도움이 되는 공생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악어의 이빨은 아주 듬성듬성하게 나 있어서 그 사이에 음식물이 낄 것 같지도 않으며 악어는 평생 3,000개가 넘는 이빨을 교환하므로 악어새와 같은 이빨 청소부가 필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둘 사이의 공생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요?..

부도덕한 자에 대한 규례(신23:17-18)

부도덕한 자에 대한 규례(신23:17-18) 본문은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창녀와 남창을 제거하라는 명령(17절)과 창녀와 남창이 번 돈은 결코 하나님께 바칠 수 없음을 규정하고 있다(18절).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중차대한 범죄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에 빠진 근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지 않고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진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삿1:21, 27-36). 우리 역시 세속의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항상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12: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태복음12:11)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마침 거기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의 손을 고쳐주시려고 하시는 것을 알고는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고발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 집에 있는 양이 구덩이에 빠져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다면 꺼내주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시면서 사람은 양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훨씬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이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안식하며, 하나님을 예배하..

부디 힘내셔야 합니다.

침묵의 시간입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하고 시간 또한 멈춘 듯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천지를 뒤흔드는 뇌성으로 가득한 시간입니다. 소리 없는 듯 하나 알 수 없는 괭음으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침묵 속에서 나를 돌아보게 됨은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지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카오스에서 벗어나는 순간입니다.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그 신비를 누리는 시간입니다. 일상이 신비입니다. 살아있음이 기적이고 살아감이 신비입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새롭게 인식되는 것이 많고 희미했던 것들이 드러나고 모든 것이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심이라 고백하게 됩니다. 믿음의 여정 가운데 가장 큰 아픔을 겪고 계시기에 그저 기억..

대제사장 관저에서(16)(막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막14:62) 예수님의 대답 중에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을 문자적인 사실로 믿는 사람들은 아마 없겠지요. 그런 사람들은 순진하기는 해도 어리석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어렸을 때 “너를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단다.”는 말을 사실로 받아들여 혼자 심각해 하던 어린아이와 비슷하니까요. 그러나 그런 분들보다 문제가 더 심각한 사람들은 위 구절을 무의미한 것으로 바라보는 냉소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연과학적인 실증이 아니면 아무 것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서와 기독교 신앙의 내용들을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물론 그들의 주장이 ..

대제사장 관저에서(15)(막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막14:62) “내가 그니라.”는 예수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앞의 것은 대제사장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고, 뒤의 것은 그 대답에 대한 설명, 또는 해석입니다. 인자(人子)는 앞에서 몇 번 언급했듯이 세상 마지막 때 심판자로 올 어떤 이를 가리킵니다. 낱말 뜻으로는 단순히 ‘사람의 아들’이지만 유대교의 묵사사상과 연결되어서 종교적인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인자가 바로 예수님을 가리켰습니다. 그렇게 해석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들은 예수님을 부활체로 경험했습니다..

대제사장 관저에서(14)(막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막14:62) 대제사장이 답답하게 느낄 정도로 침묵을 지키던 예수님이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그니라.” 대제사장이 기대한 대답일까요? 예수님이 실제로 이렇게 대답하신 걸까요? 그걸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른 뉘앙스로 대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과 대제사장이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훗날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 제자들의 믿음이 이 대답에 담겨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문제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식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즉 예수님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식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이 질문의 대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

‘서로서로 소금 같은 구실을 하여 화목하라’(막 9:38-50)

막 9:38-50 묵상입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 제자들의 편협한 배타주의를 책망하시는 예수님. 독선적 교파주의나 교리주의에 대한 교훈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 먼저 하나님의 자녀답게 구별된 삶을 살아가며 이웃에게 덕이 되며 거침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서로 소금 같은 구실을 하여 화목하라’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말고,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며 섬김과 나눔으로 화평의 길을 가게 하소서! 말씀과 기도로 구별된 일상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