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3 10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편147: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편147:11) 자신을 그냥 바라봐주는 사람만 있어도 좋고, 그냥 기대해주는 사람만 있어도 행복하고, 그냥 같이 있어 주는 사람만 있어도 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봐주시는 것, 기대해 주시는 것, 같이 계셔주시는 것을 넘어 그냥 "나"를 기뻐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을 바라고,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일입니다.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

대제사장 관저에서(4)(막14: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막14:55) 위 구절에 따르면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의회는 예수를 죽이려는 목적을 이미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체적 진실을 찾으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증거만 찾으면 됐습니다. 그들이 그런 목표를 설정하게 된 이유도 있겠지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렇게 사람을 죽일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앞에서 어느 정도 해명이 됐습니다만 여기서 보충하는 게 좋겠군요.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약간 방법론적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근본적인 차이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율법과 성전에 대한 견해 차이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것을..

대제사장 관저에서(3)(막14: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막14:54) 악이 공모되는 자리에 산헤드린 의원만이 아니라 베드로도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체포 순간에 다른 제자와 함께 도망갔었습니다. 그가 다시 등장했다는 건 자신의 잘못을 깨우쳤다는 뜻일까요? 본문은 명시적으로는 물론이고 암시적으로도 그런 생각을 비치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들어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웃음이 나는군요. 베드로가 누굽니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막 14:31)다고 큰소리를 친 인물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늘 앞장서서 대답했습니다. 때로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물속에도 뛰어든 적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지금은..

대제사장 관저에서(2)(막14:53)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막14:53) 산헤드린 공의회는 정의를 세우는 최고 법정입니다. 인류가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 마련한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지요. 만약 산헤드린이 없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될 겁니다. 무법천지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세상입니다. 산헤드린은 법으로 주먹을 다스릴 수 있는 특별 권한을 확보한 기관입니다. 이것이 법의 사회적 기능이겠지요. 법에 의해서 작동되는 세상이 상대적으로 건강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법이 옳게 작동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법이 무엇인가, 하는 법철학이 개입됩니다. 법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법이 인간의 모든 삶을 다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도구로 삼는 위험 (막12:38-40) / 김영봉목사

해설: 앞에서 율법학자들의 신학적 오류를 지적하신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해 비판하십니다. 율법학자는 율법에 대해 연구하여 율법 문제에 대해 자문해 주고 판정해 주는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입니다. 당시에는 종교법과 사회법이 분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학자가 종교인으로서 변호사와 판사의 역할을 겸했습니다. 원칙적으로 율법학자들은 법률 서비스 제공의 대가를 받을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했습니다. 회심하기 전의 사울이 천막 만드는 일로 생활비를 벌었던 것이 그 예입니다. 이런 까닭에 율법학자들은 평민들에게 높이 존경을 받았습니다. 율법에 대해 해박했고 보통 사람들의 신앙과 삶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 8:14-26)

신앙의 성숙은 정말 지루하게도 오래 걸립니다. 제자들은 눈 앞에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역사를 보았음에도 떡 하나 밖에 없는 것으로 염려하였습니다.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제자들이 한 순간에 바리새인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심은 이들은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율법과 욕망에 갇혀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이적으로만 판단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보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을 책망하신 후에 벳새다에서 맹인을 만나서 침을 뱉고 안수하여 눈을..

인생은 선택이다.

인생은 선택이다. 글쓴이/봉민근 사랑할 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고 죄악 된 일을 사랑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 넘어져도 하나님 앞에서 넘어지라는 말이 있다. 억울해도 부족해도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토로하는 자가 믿음의 사람이다. 마귀는 결코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용하고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고 멸망시키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인간의 죄에 대한 욕망은 달콤하며 끝이 없다. 세상은 죄악으로 얼룩져 있다. 가까이하면 내게 오염되고 전염되어 내 영혼을 더럽히고 그것이 인생의 올무가 된다. 거룩함을 가까이하면 거룩해지고 경건을 추구하면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믿는 자는 어떤 경우에도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진리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게 세상을 향한 끝없는 욕망이 ..

늘 뿌린 대로 거둔다

늘 뿌린 대로 거둔다 누구나 요행을 꿈꾸지만, 노력이 아닌 뜻밖의 행운만을 기다리는 마음은 욕심일 뿐입니다. 특히 삶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의 마음에는 한 번의 시도로 큰 재물을 얻으려는 한탕주의와 도박으로 성공하려는 사행심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며 실패하게 되면 다시 일어설 용기까지 잃게 만듭니다. 요행만 바라며 사는 사람은 인생의 발전도, 희망도 없으며 운이 좋아서 일확천금을 얻는다고 해도 결국 파탄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진리가 있다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마음과 나쁜 것을 심고는 좋은 것을 기대하는 마음도 어리석은 삶의 자세입니다. 근면 성실한 삶을 살아온 이들은 실패로 넘어지더라도 다시 도전정신으로 일어섭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노력으로..

십자가의 길이 진리의 길 영생의 길입니다.(막 8:27-9:1)

막 8:27-9:1 묵상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는 예수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대답하는 베드로.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바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신다 말씀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말씀을 비난하고 꾸짖는 베드로.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십니다. 믿음의 고백에 따른 헌신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 십자가의 길이 진리의 길 영생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말하지만 여전히 내가 살아있고, 은혜를 말하지만 여전히 내가 주인되고 있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과 교만을 긍휼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