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종교를 도구로 삼는 위험 (막12:38-40)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3. 3. 06:56

해설:

앞에서 율법학자들의 신학적 오류를 지적하신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해 비판하십니다. 율법학자는 율법에 대해 연구하여 율법 문제에 대해 자문해 주고 판정해 주는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입니다. 당시에는 종교법과 사회법이 분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학자가 종교인으로서 변호사와 판사의 역할을 겸했습니다. 

 

원칙적으로 율법학자들은 법률 서비스 제공의 대가를 받을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했습니다. 회심하기 전의 사울이 천막 만드는 일로 생활비를 벌었던 것이 그 예입니다. 이런 까닭에 율법학자들은 평민들에게 높이 존경을 받았습니다. 율법에 대해 해박했고 보통 사람들의 신앙과 삶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율법학자들에 대한 이러한 존경과 대우는 많은 율법학자들로 하여금 타락하게 하는 올무가 됩니다. 그들 중에는 종교 서비스에 대해 두둑한 사례비를 챙기는 사람들도 있었고, 재판을 하면서 뇌물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과부의 가산을 삼킨다”(40절)는 말이 그런 의미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율법에 대해 가르치며 그대로 살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대우를 즐겼습니다. 그래서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한”(38절) 것이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39절)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영성은 텅 비어 버렸고 모든 신앙의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길게 기도했는데, 그것이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경건하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40절). 

 

물론, 철저하게 자신을 지키려는 율법학자들도 있었지만 절대 다수는 위선과 가식과 부정에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40절)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들은 가장 거룩한 것으로 가장 악한 죄를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묵상:

율법학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은 목사, 선교사, 신학자 같은 직업 종교인들에게는 추상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종교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은 복된 소명입니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그 인생을 거룩하고 참되고 영원한 것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것은 매우 값지고 귀한 일입니다. 그것이 값지고 귀한 만큼 그 삶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 썩으면 가장 추한 것이 됩니다. 가장 거룩한 것이 타락하면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 됩니다. 가장 높은 부름이기에 가장 큰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종교를 업으로 삼고 살다 보면, 종교가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종교가 도구가 되면 종교적인 행위에서 자신은 소외됩니다. 예배와 기도와 말씀 묵상과 성도들을 돌보는 모든 일을 통해 자신은 허비되고 고갈됩니다. 영성이 텅 비어 버리면 그가 하는 모든 종교 행위는 허위와 가식이 되어 버립니다. 자신의 밥벌이를 유지하기 위한 연극이 되어 버립니다. 종교 활동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만족을 얻지 못하니, 사람들에게서 인정과 존경을 받으려 합니다. 영적으로 비어 있다 보니 물질적인 것에 탐욕이 생깁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팔면서 속으로는 탐욕을 채웁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을 위해 죄를 쌓고, 순진한 신자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종으로 부르셨다고 믿었기에 이 길에 들어섰는데, 이 삶에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책임이 이토록 큰지를 미리 알았다면 요나처럼 하나님의 부름을 피했을지 모릅니다. 제가 피했다 해도 하나님은 결국 저를 이 자리에 끌어다 놓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도리가 없습니다. 직업 종교인이 아니라 전임 예배자로 저의 소임을 감당하도록 매일, 매순간 저를 깨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이 말씀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종교를 도구로 삼으려는 유혹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종교 활동이 무엇을 얻자는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가고 그분의 모습을 더 많이 닮아가기 위한 과정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