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1 10

"주의 종은... "(디모데후서2:24-26)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디모데후서2:24-26) 이 말씀에는 "주의 종"과 "모든 사람"과 "거역하는 자" 이렇게 세 종류의 사람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실상 모두 주의 종이고, 실제적으로 주의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모두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 곧 주님의 종입니다. 이론적으로만, 말로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신분에 대하여 분명히 밝혀주고..

세계관 1-2. 레녹스와 도킨스 / 류현모교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은 사람들은 성경 전체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믿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공격적 무신론자들이 지난 40~50년간 일반인들의 머리에 주입한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계시하는 성경은 신화로는 읽을 수 있으나 지식의 근원으로 사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존 C. 레녹스는 옥스퍼드 대학 수학과 명예교수이다. 또한 과학, 철학 및 종교의 중간지대에서 서로 부딪히는 부분에 대해 기독교 측의 변론가로 국제적으로 유명한 연사이며 저술가이다. 예술, 수학, 철학 분야에 박사학위가 있으며 생명윤리 분야의 석사학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적 식견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과학과 기독교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도킨스, 히친스 그리..

바라바 이야기(15)(막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막15:15) 바라바와 예수의 운명이 극으로 갈렸습니다. 바라바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예수는 십자가 처형에 던져졌습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바라바를 좀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바라바만 아니라면 예수님이 유월절 사면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았을 테니까요. 바라바의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억울할 겁니다. 바라바는 특별 사면을 위해서 예수와 적극적으로 경쟁한 게 아닙니다. 소설가의 상상력을 빌린다면 바라바를 주인공으로 장편 소설이 나올 수 있겠지요. 그에게도 우주의 무게에 해당되는 삶이 있습니다. 그의 가족이 그의 석방을 얼마나 간절히 바랐겠습니까. 그의 자식들이 있었다면 더 할 ..

바라바 이야기(14)(막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막15:15) 바라바는 풀려났습니다. 민족 해방을 위해 투쟁한 용사가 민중들의 도움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모두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7,80년대에 감옥에 갇혔던 통일 열사가, 또는 민주 열사가 87년 6월 항쟁 뒤로 풀려난 것과 비슷하니까요. 이런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일에 우리의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야 합니다. 그런데 위 본문의 상황은 뭔가 찜찜하기 그지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바라바가 풀려났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뜨거운 욕망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

바라바 이야기(13)(막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막15:15)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빌라도는 민중에게서 점수를 얻기 위해서 결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바라바를 풀어 주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석방이 불가능해졌다는 뜻입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대중추수주의) 정책입니다. 포퓰리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치 지도자가 독단이 아니라 민중의 생각을 따른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민중에 영합하느라 바른 정치를 펴지 못할 때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민중의 판단이 늘 옳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 전제됩니다. 길게 보면 민중의 판단이 옳을지 모르지만 일시적으로는 틀릴 때도 많습니다. 이런 예를 우리는 국내외 현대 역사에서 흔하..

기도로 산다는 것 (막14:43-50) / 김영봉목사

해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준비되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가룟 유다가 성전 경비병들을 데리고 나타납니다(43절). 마가는 유다를 소개하면서 굳이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라고 씁니다. 스승을 배신한 사람이 다름 아닌 제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통해 이 사태의 비극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다음 문장에서 마가는 유다를 “예수를 넘겨줄 자”(44절)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다시 ‘파라디도미’(넘겨주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권력자들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오랜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당신을 하나님의 뜻에 넘겨 주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유다가 나서더니 예수님께 다가가 입을 맞춥니다(45절). 볼에 대고 입을 맞추는 것은 중동 지방의 오랜 예법입니..

까다로운 장벽들을 넘어 예수님께!(마가복음 2:3-5)

까다로운 장벽들을 넘어 예수님께! (마가복음 2:3-5)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인생에 까다로운 장벽들이 많습니다. 이웃들의 호의로 예수님 앞으로 가게 된 한 지체장애인도 많은 장벽들에 부딪혔습니다. 첫째는 질병이라는 장벽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질병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앞으로 가지 못합니다. 둘째 장벽은 사람이라는 조건의 장벽이었습니다. 중풍병자는 그나마 친절한 이웃의 도움으로 예수님이 계신 집에 갔으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낮아짐의 영성

낮아짐의 영성 글쓴이/봉민근 신앙생활 잘하는 법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높아지려 하는 교만을 깨뜨리는 것이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해도 낮아지지 않으면 그 신앙은 거짓이다. 신앙은 나를 버려 그리스도를 세우는 일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했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가 없다. 교만한 자는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겸손을 배우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80세가 되도록 훈련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훈련장을 40년간 전전하게 했다. 요셉도 다윗도 자신이 낮아져 하나님만 붙들기까지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주님도 자기를 비어 종으로 섬기셨거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마땅할까? ..

'항상 깨어있으라' (막 13:28-37)

막 13:28-37 묵상입니다. 마지막 때 곧 인자의 날에 관한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배우라 하십니다. 많은 징조를 주심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날은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오직 생명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며, 지혜로운 청지기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과 삶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게 하소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님이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