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4 12

참으로 잘 견디셨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동안 성도님의 모습을 되새기며 하나님께 감사했습시다. 또한 수척해진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견디시며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는 그 모습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잘 이기셨습니다. 바로 믿음의 승리입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비록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이요 환란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마음을 추스리시고 다시 한번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몸도 돌아보시길 소망합니다. 마음고생으로 인해 몸이 힘들어하며 연약한 부분의 면역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답니다. 마음을 잘 관리하셔서 이기신 것처럼 식사나 시간관리도 잘하셔서 몸이 힘들어하는 것을 잘 관리하시면 좋겠습니다. 저의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그러..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도님에게 감사합니다. 저의 연약하고 부족한 기도를 들어주심에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성도님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을 주시고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고 참고 견디는 마음도 주시고 넓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우리 다시 주 안에서 굳게 서며 함께 가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광야 같고 거친 바다와 같은 믿음의 여정을 계속해요! 온갖 시험과 환란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라 하신 믿음의 길을 함께 가요! 상처가 있더라도 그것을 품고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함께가요!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고 지치고 일어설 힘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곁에 있는 도반에게 ..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막10:33-34)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마가복음10:33-34)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열두 제자에게 자신이 당하실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루살렘에 가셔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건너편 겟세마네로 가셔서 기도하시다가 가룟 유다가 데리고 온 대제사장과 그 수하에 있는 자들에 의해서 붙잡히셔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셨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을 죄를 지은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아예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

생명의 물줄기는 막을 수 없다(행5:27~42) / 이재훈목사

전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단체나 무자비한 독재자들의 출현, 그리고 거짓된 이념을 추종하는 사이비 종교들, 이 모든 악의 흐름 이면에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한 거짓된 악이 존재합니다. 왜곡된 믿음, 독이 있는 믿음이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 믿음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신론자도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 속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가?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지’가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합니다.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죽이는 일을 거리낌 없이 행하는 행위 이면에도 독이 있는 무서운 믿음이 숨어 있습니다.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까지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려는 유대 지도자들의 모습에서도 왜곡된 믿음, 독이 있는 믿음이 발견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1)(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막15:21) 막 15:21-41의 내용이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전체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서로 중복되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을 못 박았다는 이야기가 24절과 25절에 중복됩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에게 마실 것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23절과 36절에서 중복됩니다. 예수님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는 이야기도 34절과 37절에 나옵니다. 마가복음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이야기에는 서로 다른 두 전승이 결합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성서학자들은 구절을 자세하게 분석해서 두 전승의 성격..

자색 옷(7)(막15: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막15:20) 예수님의 수난 전승을 육체적 고통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을 영육이원론적인 시각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아무런 고난을 당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육체성에 대한 부정은 초기 기독교만이 아니라 중세를 거쳐 지금까지 계속 기독교 영성에 잠재되어 있는 가현설입니다. 가현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인성을 약화시킵니다. 예수님은 신이기에 인간으로 겪어야 할 모든 육체적 한계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체는 영혼보다는 열등하게 취급됩니다. 먹고 마시고 고통당하는 모든 육체의 속성이 세속적인..

자색 옷(6)(막15: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막15:20) 십자가 사건에서 고통이 핵심이 아니라는 어제 묵상의 마지막 언급을 보충해서 설명해야겠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로마 군인들에게 당한 가혹한 폭행 장면을 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십자가 처형 장면도 육체적인 고통과 직결해서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제 잠시 말씀드렸듯이 마가복음 기자는 군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했다고 말할 뿐이지 채찍질에 대해서는 직접 거론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납덩이가 가죽 끈 끝에 달린 채찍으로 맞으셨을까요? 그럴 개연성은 높습니다. 로마의 십자가 처형 제도는 죄수를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채찍질을 합니다. 그런데 복음서 기자들은..

진실로 강한 사람 (막14:66-72) / 김영봉목사

해설: 그 때 안뜰 아래쪽에서 재판 광경을 지켜 보고 있던 베드로에게 하녀 한 사람이 다가와 빤히 노려봅니다. 아마도 그 하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당신도 저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이지요?”(67절)라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화들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는 강하게 부인하고 바깥 뜰로 나갑니다. 그러자 하녀가 베드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합니다.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입니다”(69절). 베드로는 또 다시 부인합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베드로의 강한 부인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그에게 따져 묻습니다(70절). 부인하는 그의 말에서 갈릴리 억양이 드러난 것입니다. 위기감을 느낀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나는 아니지요 (막 14:12-21)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위기가 오면 도망치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그래서 나는 아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속여도 중심을 보시는 주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제자들을 성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물 한둥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서 집에 들어가거든 주인에게 선생님의 말씀이 유월절을 지낼 객실이 어디있느냐 하면 큰 다락방을 보이고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유월절을 지낼 다락방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보내고자 성으로 들어옵니다. 날이 저물고 저녁을 먹고자 모두 앉았을 때에 예수님께서 폭탄 선언을 하십니다.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에 ..

당신은 진정한 하나님의 종입니까?

당신은 진정한 하나님의 종입니까? 글쓴이/봉민근 구약시대의 종들은 노예였다. 자유가 없고 개인적인 삶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요셉이 종으로 사는 동안 보디발의 집에 총무가 되었다고 자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시 105:18) 요셉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모든 수익은 보디발의 것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주의 종이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부족하고 못난 종이라도 주인은 그 종을 사용한다. 연약해도 사용한다. 다만 종은 충성할 뿐이다. 하나님은 충성된 종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신다. 인정받는 종은 주인 앞에서 늘 자유함과 평화를 누린다. 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