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1 13

가정을 지키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것!(신24:1-4)

가정을 지키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것!(신24:1-4) 성경적으로 결혼한 부부가 다시 둘로 나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불가피하게 이혼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본문은 그 불가피한 경우를 아내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을 때로 한정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수치되는 일’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이혼하는 가정이 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가정을 지키는 것이 가족을 지키는 것이며, 사회를 지키는 것이고, 더 나아가 교회를 지키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4:7-8)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르는 그리스도인, 예수님 믿는 사람, 성도, 교회에 속한 사람, 구원받은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인 형제자매들을 서로 사랑하는지, 교회의 성도들을 서로 사랑하는지 이것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지, 영생을 얻은 사람인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지를 평가할 수 있는 시금석입니다. 서로 경쟁자로 여기며,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하는 것은 불신자와 같은 것입니다. 당신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

베드로의 울음(5)(막14: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막14:70) 베드로는 두 번째로 예수와의 관계를 부인했습니다. 차마 자기 입으로 발설하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미 한번 꺼낸 말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습니다. 거짓말은 또 다시 거짓말을 낳게 됩니다. 한번 죄를 범하면 자연스럽게 똑같은 죄를 범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베드로의 이런 행태 앞에서 독자들의 심정은 좀 복잡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저런 수준밖에 못 된다는 사실 앞에서 실망감이 들기도 합니다. 호수에 뛰어들던 결기를 이 자리에서 다시 보여주었으면 통쾌했겠지요. “그래, 나는 네가 말한 대로 나사렛 예수와 한 패다...

베드로의 울음(4)(막14:69)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막14:69) 여종을 향해서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시치미를 뗀 베드로는 아래뜰에서 앞뜰로 자리를 옮겼다고 합니다. 일단 자리를 피하고 보자는 계산이었겠지요. 여종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곳에 머물던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고 떠벌렸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이 여자가 야속할 겁니다. 무슨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계속 따라다니면서 베드로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니까요. 처음에 베드로에게 말을 걸었던 여종과 지금 두 번째로 베드로를 거론한 여종이 마가복음에서는 동일인으로 나오지만 마태복음에서는 다른 여자로 나옵니다. 누가복음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

베드로의 울음(3)(막14:68)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막14:68) 하인들 사이에 끼어서 불을 쬐고 있던 베드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부딪쳤습니다. 대제사장의 여종을 통해서 그의 정체가 들통 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산헤드린 공의회를 통해서 사형 선고를 받은 나사렛 예수와 일당이라는 겁니다. 돌아가는 형편이나 파악할 요량으로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온 그에게 당혹스런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여종의 말을 반박했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생사람 잡지 말라고 말입니다. 베드로 스스로 그런 말을 내뱉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겠지요. 베드로가 누굽니까?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호수에 뛰어든 인물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며..

축복은 분명하나… / 김영봉목사

지난 주일 예배는 여러 가지로 감격스러웠습니다. CUMC가 주일 오후에 본당을 사용해야 할 경우가 한 해에 한두 번 있습니다. 과거에는 더 많았는데 최소한으로 줄인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ROC에서 합동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지난 주일이 그랬습니다. 저는 전교인 합동 예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합동 예배를 드리려면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전 세대 교인들에게 모두 의미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세대의 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배 드리는 것은 그 모든 희생과 고초를 각오 하고라도 지속할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연합하여 한 몸 되었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것이 교회로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예배는 한 가족됨을 진하게 경험하게 해..

몰입과 집중의 지혜(누가복음 10:40-42)

몰입과 집중의 지혜 (누가복음 10:40-42)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황농문 교수는 그의 책 『몰입』(알에이치코리아 펴냄, 2007)에서 몰입을 도입한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한 회사는 ‘생각 주간’(Think Week)이 있어서 CEO나 회사의 임원들이 1년에 두 차례 생각하는 주간을 가졌습니다. 문구를 생산하는 한 회사는 100년 동안 6만 여개의 제품을 출..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막 10:23-31)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놀란 제자들을 보신 예수님은 확고하게 말씀합니다.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에 더욱 놀란 제자들은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제자들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을 듣자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에 대답 대신에 중요한 원리로 답하십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세상의 집착을 버린 자는 세상에서 박해와 함께 백배나 돌려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영생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런 후에 먼저 된자로 나중 되고 나중 된자로서 처음된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주를 위하여 버리는 것

믿음은 주를 위하여 버리는 것 글쓴이/봉민근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먼저 자신에게 있는 비 신앙적인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과연 주님이 기뻐하시는지 생각을 해야 한다. 돈을 많이 가졌다고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오히려 저주가 된다. 신앙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우상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서 만들어진다.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믿고 따르며 의지하는 것이 우상이다. 회개란 영적인 쓰레기통에 하나님과 관계 없는 불필요하고 더러운 것들을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과 관계 없는 삶을 사는 것이 불신앙이다. 내가 귀하게 여기는 것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님을 위하여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신앙이다. 끊을 것 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