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2 12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12:23-24)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그것을 "영광을 얻는"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십자가의 죽음을 한 알의 씨앗이 땅에 심겨져서 자신을 잃어버림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의 죽으심이 부활의 생명으로 일어나시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자에게도 동일한 생명적인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예수님의 죽음 "나의 죽음", 예수님의 부활 "나의 부활"이라는 생명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루이스와 프로이트 / 류현모교수

“신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궁극적 질문이다. 많은 유명한 사상가들이 신 존재를 “믿는다” 혹은 “믿지 않는다”의 결론을 가지고 자기의 견해를 피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단편적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으로 끝나며 인생의 전반적인 측면에 대해 골고루 논한 사람은 드물다. 비록 논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기록을 통해 비교할 수 있는 유신론과 무신론의 훌륭한 모델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856년 5월 6일 오스트리아 프라이베르크에서 유대인 부모의 8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비엔나에서 성장하였고, 비엔나 대학을 우등졸업 하였는데 철학, 동물학, 의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비..

죽임에서 살림으로!(엡 2:1-10)

사순절 4주, 2024년 3월 10일 그리스도교를 구원 종교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세상에 구원 지향적이지 않은 종교는 없습니다. 종교만이 아니라 예술, 문학, 과학, 정치에 이르는 인간 문명 활동도 인간 구원을 지향합니다. 그런데 유독 그리스도교를 구원 종교라는 특징으로 이름 붙이는 이유는 교회가 구원 문제를 그 어떤 종교나 인간 문명과 달리 더 직접적이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라는 말에 교회의 존재 이유가 있으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 무엇일까요? 대충 알 것 같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 서로 대답이 다르기도 할 겁니다. 죽임에서 이 문제를 오늘 설교 본문인 엡 2:1-10절은 가장 간명하게 설명합니다. 1절과 5절에 보듯이 하나님께서 ..

자색 옷(2)(막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막15:17) 군인들은 총독 관저 안으로 예수님을 끌고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못 박는 작업은 그렇게 많은 군인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형수에게 가하는 집단적인 폭행이 일종의 세리모니로 준비되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에게는 가학성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심리입니다. 이것은 개인보다는 집단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일본과 한국에 사회적 문제로 종종 불거지는 이지매(왕따)가 그런 심리의 발현입니다. 이것이 종교심과 연결되면 야만적인 행태를 불러옵니다. 14-17세기에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자행되던 마녀재판에서 이에 대한 한 전형을 볼 수 있습니다. 마녀재판은 주로..

자색 옷(1)(막15: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막15:16)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된 예수님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1차 심문을 당하고, 이어 빌라도의 정식 재판을 받습니다. 거기서 유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을 끌고 예루살렘의 총독 관저라 할 수 있는 ‘브라이도리온’의 뜰 안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빌라도의 재판은 관저 밖 광장에서 진행된 것 같습니다. 총독이 평소에 머물던 관저는 물론 지중해 연안인 가이사랴에 있습니다. 군중들이 많이 모이는 유월절에 맞춰 총독이 예루살렘으로 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끌고 관저 안으로 들어간 군인들은 안토니아 수비대이거나 빌라도가 가이사랴에서 데리고 온 군대이겠지요. 예수님이 그들의 손에 떨어졌다는 것은 앞으로 모든 ..

바라바 이야기(16)(막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막15:15)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죄인을 십자가형에 처한다.”는 선고가 내려진 것입니다. 빌라도는 무슨 근거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을까요? 이건 정말 복잡한 물음입니다. 십자가형은 반역죄를 일으킨 죄인에게만 해당됩니다. 앞에서 본대로 빌라도는 가능한대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자기의 시도가 실패하자 빌라도는 무리 앞에서 손을 물로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자기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무리는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 27:25)고 외쳤습니다. 복음서기자들이 아무리 호의적으로 묘사했다고..

어떤 젊은이의 정체 (막14: 51-52) / 김영봉목사

해설: 경비병들이 예수님을 데리고 대제사장관저로 가고 있는데 어떤 청년이 어둠 속에서 따라 왔습니다. 경비병들이 그것을 눈치 채고 그를 잡으려고 했는데, 잡힌 옷을 벗어 두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그 청년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맨 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51-52절). 학자들은 이 청년이 누구이며 왜 이 이야기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지를 두고 논의해 왔습니다. 이 두 절은 다른 복음서에 없는 내용입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예수님에 대해 어떤 의미도 가지지 않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들만을 선택하여 제한된 지면에 기록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의미 없는 이야기를 이 대목에서 써 넣을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

진리가 반드시 이긴다.

진리가 반드시 이긴다. 글쓴이/ 봉민근 세상은 거짓이 진리를 대신하고 불의가 정의를 대신하며 정직이 외면당하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 같은 것은 세상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사탄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답답하고 땅을 치고 소리치며 외치고 싶은 심정이 가슴속에서 넘칠 때가 있다. 그러나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저들의 때는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세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심판의 날도 가깝다.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 저들은 불에 타는 것처럼 사라질 것이요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악한 자가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거룩하시기에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세상을 심판하신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주를 생각하고 참으면 복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억..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 미국의 시사주간지로 유명한 더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성공한 사람의 기준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였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그건 바로 '내 맘에 드는 나'입니다. 결국 나에 대한 자존감과 자부심, 그리고 사명을 깨달은 사람이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해야 하며 지금 하는 일을 무엇보다 좋아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인생은 정말 풍요로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따뜻한 말로 자신을 격려해 보세요.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살아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