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4

순종에 따르는 축복(신28:1-14)

순종에 따르는 축복(신28:1-14) 본문은 27장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의식을 행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에 이어 이제 본장에서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축복과 저주의 구체적인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본문은 순종에 따른 축복의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으로, 특히 백성들로 하여금 순종에 따른 축복을 선택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성경에서의 축복의 본질은 그리스도로 안에 감추인 영적인 축복, 곧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생명을 얻는 영생의 축복을 말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로마서6:6-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로마서6:6-7) 예수님이 못박혀 죽으신 그 십자가에 우리도 같이 못박혀야 합니다. 2,000년 전의 십자가 사건에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같이 못박힐 수가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일어나는 성령의 사건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

향유를 손에 든 여자 (막 14:1-11) / 정용섭목사

종려 주일, 2024년 3월 24일 고난주간 오늘은 세계 교회가 종려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그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는 전승에서 유래하는 절기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다음 부활절 전 토요일까지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한 주간에 걸쳐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그 인근에서 여러 일을 겪으시다가 체포와 재판과 십자가 처형에 이르게 됩니다. 한 마디로 예수께는 일종의 마녀사냥을 당한 겁니다. 그 마녀사냥의 출발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서 시작했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 첫 구절인 막 14:1절이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

십자가에 달린 자(4)(막15: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막15:29)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라는 말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들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당대의 가장 뛰어난 건축물입니다. 이런 건축물에 사람들이 얼마나 크게 감동했을지는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옛날부터 왕들은 장엄한 건축물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력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정치를 하는 통치자들은 많습니다. 특히 독재자들이 그런 건축물을 많이 세웁니다. 여기에는 종교 지도자들도 다를 게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 교회당을 자랑합니다. 그런 건축물은 신자들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을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매도할 필..

십자가에 달린 자(3)(막15: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막15:29) 지나가는 자들은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이 말은 예수님이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을 때 증인들이 나와서 한 내용입니다.(막 14:58) 예수님이 직접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에 대해서 아무도 단정적인 대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상황을 추론해볼 수는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이 실제 건물로서의 성전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고 말씀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런 일에는 무능력하십니다. 이런 관점에서만 본다면 산헤드린의 재판과정에서 증인으로 나선 사람들의 말과 십자가 앞에서 투덜거린 사람..

십자가에 달린 자(2)(막15: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막15:29)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쩔레쩔레 흔들며 모욕하고 있는 대상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인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다니, 이걸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불위의 존재자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린다는 말은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자가 아니든지 십자가에 달리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 모순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답은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내려오셨다는 교리입니다. 성육신(incarnation) 교리입니다. 인간의 육..

마가복음 15장 16-20절: 조롱과 모욕을 당하시다 / 김영봉목사

해설: 군인들은 심하게 매질 당한 예수님을 총독 관저 안뜰(브라이도리온)로 데리고 갑니다. 군중 앞에서 충분히 매질한 후에 안뜰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온 부대”(16절)는 육백 명으로 구성된 로마군 대대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서 머리에 씌운 뒤에, ‘유대인의 왕 만세!’ 하면서”(17-18절) 조롱합니다. “자색”은 왕족을 상징하는 색깔이었습니다. “가시관”은 유다 지방에서 자라던 가시나무 가지로 만든 것입니다. 이 나무의 가시는 이쑤시개 정도의 크기에 매우 날카롭고 강합니다. 그것으로 관을 만들어 씌우면서 군사들은 예수님에게 고통을 주는 동시에 조롱힌 것입니다. 한 동안 그들의 조롱과 모욕은 계속 되었습니다(19절). 그들은 그분이 참되고 영원한 왕이라는..

주님처럼 끝까지 사랑하게 하소서!(요한복음 13:12-15)

주님처럼 끝까지 사랑하게 하소서! (요한복음 13:12-15)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을 기록하는 요한복음 13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1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서 보여 ..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막 14:53-72)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그리고 서기관들이 모인 공회로 심문을 받으러 갑니다. 이때 베드로는 멀리서 주님을 따라갑니다. 공회에서 예수님을 심문하지만 증언들이 일치하지 않아서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각종 거짓말만 난무할 뿐입니다. 대제사장들이 여러말로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대제사장이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묻습니다. 침묵하시던 예수님은 이 질문에 " 내가 그 나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답을 하십니다. 이 답에 모인 사람들이 흥분합니다.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을 씌우고 사형에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독하고 폭행을 행합니다. 여기에 하인들도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 글쓴이/봉민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님의 영광을 입버릇처럼 말을 한다. 강단의 주된 설교도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겠다고들 한다. 과연 나는 그렇게 살았는가? 수 십 년 믿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말장난으로 그칠 때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말과 삶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게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산 흔적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오히려 주님을 나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삼고 살았다. 기도를 해도 나를 위하여 하고 예배를 드려도 내가 은혜받기 위해서 드렸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직 복 받겠다는 욕심으로 봉사할 때가 더 많았다. 말이 주님의 영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