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막15:17)
군인들은 총독 관저 안으로 예수님을 끌고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못 박는 작업은 그렇게 많은 군인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형수에게 가하는 집단적인 폭행이 일종의 세리모니로 준비되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에게는 가학성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심리입니다. 이것은 개인보다는 집단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일본과 한국에 사회적 문제로 종종 불거지는 이지매(왕따)가 그런 심리의 발현입니다. 이것이 종교심과 연결되면 야만적인 행태를 불러옵니다.
14-17세기에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자행되던 마녀재판에서 이에 대한 한 전형을 볼 수 있습니다. 마녀재판은 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독신 여성을 대상으로 행해졌습니다. 인민재판과 비슷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그 여자가 마귀와 간음을 했다는 사실을 자백 받는 것입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자포자기에 빠진 이 여자는 재판관의 불호령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장작더미에서 극한의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마녀를 보는 군중들은 가학적인 쾌감에 빠져듭니다.
온 군대가 이제 예수를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었습니다. 자색 옷은 왕을 상징합니다. 가시관도 역시 왕관을 대신합니다. 이런 일은 악한 군인들의 개인적인 소행이라기보다는 사형수에게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의식이었을 겁니다.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그 압박감을 이런 의식을 통해서 줄이려 한 것이겠지요.
지금 예수님은 자색 옷을 걸치고 가시관을 썼습니다.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이 모욕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산헤드린에서도 이런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모욕을 당해야 할 사람들이 모욕을 주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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