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막15:15)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빌라도는 민중에게서 점수를 얻기 위해서 결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바라바를 풀어 주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석방이 불가능해졌다는 뜻입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대중추수주의) 정책입니다.
포퓰리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치 지도자가 독단이 아니라 민중의 생각을 따른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민중에 영합하느라 바른 정치를 펴지 못할 때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민중의 판단이 늘 옳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 전제됩니다. 길게 보면 민중의 판단이 옳을지 모르지만 일시적으로는 틀릴 때도 많습니다. 이런 예를 우리는 국내외 현대 역사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라는 민중들의 소리는, 그것이 자신들의 실질적인 이익에 부합한 것이었거나 아니면 대제사장들의 선동에 의한 것이었거나 상관없이, 진리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일종의 광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집단에서 이런 악한 힘에 더 쉽게 사로잡힙니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도덕적인 인간과 부도덕한 사회>에서 이런 현상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도 사회에서는 쉽게 부도덕성에 노출된다고 말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시키는 일에 연루된 집단은 셋입니다. 하나는 민중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함이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 앞에서 기분이 좋았을 겁니다. 다른 하나는 대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한 산헤드린입니다. 이들은 쾌재를 불렀겠지요. 하나님을 모독한 예수를 쉽게 처리했으니까요. 셋째는 빌라도입니다. 그도 역시 나름으로 이익을 본 것입니다. 민중의 이름으로 사회 소요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악은 이렇게 협조를 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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