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막15:14)
예수님에게 민중은 누구일까요? 이는 곧 기독교 신앙에서 민중의 자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극단적인 민중 신학자들은 민중 메시아론을 주창하기도 합니다. 민중의 바로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민중사관과 민주(民主)주의는 서로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진보적이고 지적인 신자들 중에서 교회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목회자의 독단이 불러오는 폐해가 얼마나 큰 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민중 개념이 추상적인 것처럼 민주주의도 추상적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민중사관이나 민주주의가 구체성을 결여하면 일종의 포퓰리즘으로 빠질 염려가 큽니다. 예수를 어떻게 하랴,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하는 빌라도의 질문 앞에서 민중들은 더욱 크게 고함을 쳤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그들은 대제사장들의 강요에, 또는 선동에 쉽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들은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흔하게 일어납니다.
예수님에게 민중은 누구였을까요? 민중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 투쟁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 민중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는지요.
제가 보기에 예수님 앞에는 민중이 아니라 인간이 있을 뿐입니다. 아주 구체적인 인간 말입니다. 그 인간은 눌린 계급에 속할 수 있고, 부르주아적 계급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구원받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모두 죄에 물들어 있으며, 죽음에 직면해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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