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막15:13)
아, 듣고 싶지 않은 고함소리를 결국 듣게 되었습니다. 민중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그들은 민족 해방의 영웅인 바라바가 자신들을 구원하지 예수가 아니었다고 생각한 걸까요? 아니면 대제사장의 선동에 놀아난 것뿐인가요. 어느 쪽이든지 절망적인 일입니다.
바라바와 예수는 여러 면에서 비교됩니다. 우선 비슷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라바와 예수는 똑같이 삶과 세상의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바라바는 폭력을 통해서 정치적인 변화를 끌어내려고 했다면, 예수는 철저한 비폭력을 통해서 영적인 변화를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폭력의 문제는 앞에서 한번 언급했으니 여기서는 그만 둡시다. 정치적 변화와 영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진전된 논의가 필요합니다.
정치적인 변화는 구체적입니다. 민중이 살아가는 일상 자체를 인간다운 삶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힘입니다. 민중이 주체로 서는 민주주의와 경제정의가 정치적인 변화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이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돈을 벌고 집을 장만하고, 자식을 교육시키는 모든 과정이 정치적인 영역입니다. 이것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건 출가해서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에 반해서 영적인 변화는 관념적입니다. 정치적인 상황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그 차원을 말합니다. 자칫 이런 영적인 차원이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인 삶을 완전히 부정하고 초월적인 삶만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적인 삶과 현실적인 삶을 적절하게 종합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영적인 변화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건 결코 유보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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