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대제사장 관저에서(3)(막14:54)

새벽지기1 2024. 3. 3. 07:00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막14:54)

 

악이 공모되는 자리에 산헤드린 의원만이 아니라 베드로도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체포 순간에 다른 제자와 함께 도망갔었습니다. 그가 다시 등장했다는 건 자신의 잘못을 깨우쳤다는 뜻일까요?

 

본문은 명시적으로는 물론이고 암시적으로도 그런 생각을 비치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들어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웃음이 나는군요. 베드로가 누굽니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막 14:31)다고 큰소리를 친 인물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늘 앞장서서 대답했습니다. 때로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물속에도 뛰어든 적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지금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멀찍이는 어정쩡한 태도를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바짝 다가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바짝 다가갔다가는 자기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고, 외면하기에는 그동안 예수님과 쌓아오는 연대감이 아깝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눈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베드로는 나름으로 대견해보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별로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집 뜰 안에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습니다. 가관입니다. 불을 쬐면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 예수님의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알아보려는 걸까요? 복음서 기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 장면에서 완전히 구경꾼입니다. 

 

먼 훗날 복음서가 보도하고 있는 이 장면을 읽는 베드로의 심정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미 순교의 영성에 들어간 사람은 수치스런 과거가 모조리 까발려져도 그 영혼이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