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 하니라.'(막14:52)
예수님의 체포 장면에 한 청년이 등장합니다. 그 청년은 체포당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기특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쳤는데 이 청년만은 그래도 예수님의 뒤를 따랐으니까요. 그런데 이 청년의 복장이 특이합니다.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둘렀다고 합니다. 홑이불을 두른 거야 그 당시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입는 거니 이상할 게 없지만 속에 아무 것도 안 입었다는 건 좀 그렇군요.
예수님을 호송하던 군인들이 이 청년을 수상하게 여기고 체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위기의 순간에 자기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홑이불을 벗어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스트리킹이군요. 밤에 벌어진 일이니 본 사람도 별로 없어 다행이긴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에 없습니다. 마가복음만의 자료입니다. 이 청년이 바로 마가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면 벗은 몸으로 홑이불을 두른 걸 알 수 없었을 테니까요. 마가는 복음서를 쓰면서 이렇게 우스꽝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신앙 간증처럼 털어놓은 게 아닐는지요.
벗은 몸으로 달아나는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다급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제자의 영적 실존이기도 합니다. 위험을 느끼는 순간에 모든 것을 귀찮은 듯이 벗어버립니다. 그동안 쌓았던 예수와의 인간관계도 벗어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망도 벗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둠속으로 쏜살같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내달립니다.
당시의 제자들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똑같겠지요. 벗은 몸으로 달아나는 그 청년이 우리 자신입니다. 일단 어둠 속으로 숨고 봐야 합니다. 아무도 우리가 벗었다는 것과 달아났다는 사실을 모르겠지요. 그러나 자기 자신과 하나님만은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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