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일에 대하여 책망하신 예수님을 향하여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항의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항의에 대하여 세례 요한의 권위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습니다. 그 대답에 따라서 말씀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똑똑한 이들은 예수님의 질문이 가진 의도를 잘 알고 있었기에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라 하면 셰례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위가 아니라 한다면 세례 요한을 부정하는 것이니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들은 알지 못한다고 얼버부립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악한 중심을 아시고 나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답이 있습니다. 질문이 정직하지 않으면 정직한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종교 기득권자들의 태도가 얼마나 불의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났지만 어떤 답도 얻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비유를 통하여 종교기득권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포도원 주인과 종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이 포도원을 잘 만들고 세를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그리고 계약에 따라서 기간이 되어 소출을 받기 위하여 자신의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소출을 주기를 싫어하는 이들이 종들을 때리고 상하게 하고 때로는 죽였습니다. 참으로 사악한 일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자신의 아들을 보냅니다.그러면 정신을 차릴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아들이 상속자니 죽이자고 모의하고 죽였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분노하여 직접 사람을 데리고 와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시대에도 나타납니다. 갑질 임대인도 문제지만 불의한 임차인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가 철지난 내용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건물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됨을 말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이 비유를 들은 똑똑한 종교기득권자들은 자신을 향한 말임을 알아차립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종들인 기득권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뻔한 일입니다.
자기 욕망에 빠지면 복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욕망을 채우는 일에 사용됩니다. 신앙생활도 이럴 수 있습니다. 종교기득권자들의 모습처럼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 수 있습니다. 복음이 사라지고 자기 욕망이 지배하면 이렇게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높은 산에 바알 신전을 짓고 그곳에서 풍요를 위하여 우상숭배와 음행을 일삼은 것을 책망하였습니다. 교회가 복음이 아니라 풍요의 신을 섬기면 바알신전이 됩니다. 지금 종교기득권자들이 만들어 놓은 강도의 소굴이 그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대하여 분명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믿음의 길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을 알고 고백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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