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386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마태복음 27:22-24)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마태복음 27:22-24)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사도신경에 이름이 기록된 유명한 한 직업인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사람으로 온 세계 크리스천들에게 암송되는 빌라도 총독입니다. 아마도 그는 억울해서 자신은 예수님을 죽이는데 아무런 결정도 하지 ..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막 14:43-52)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가롯 유다와 예수를 잡아가려는 대제사장의 무리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고 있는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들은 계획한대로 가롯 유다가 인사하는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계획이 시행됩니다. 가롯 유다가 인사하자마자 바로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그 때 제자중 한 사람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떨어뜨립니다. 마가복음은 이 내용만 전달합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 앞에 담대하게 말씀합니다.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왔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성경을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하면서 순순히 잡힙니다.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합니다. 얼마전까지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나의 사명

나의 사명 글쓴이/ 봉민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왜 사는지를 모르고 산다. 인생의 목적도 방향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많다. 목적도 없이 사는 사람처럼 불쌍한 것은 없다.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가는 자처럼 산다는 것은 그 인생 자체가 괴롭다. 목적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은 뜻과 계획이 있어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다. 모두에게 주어진 나름대로의 달란트가 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누구에게나 있다. 인생을 덧없이 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반드시 내게 주신 달란트를 도로 찾으실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방황이요 세월을 허비하는 것은 인생을 잘못 사는 것이다. 무엇이든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을 찾아야 한다. 세월..

‘내가 그리스도니라’(막 14:53-72)

막 14:53-72 묵상입니다. 한 밤중에 공회에서 심문당하시는 예수님. 정당한 재판이 아니라 형식적인 절차입니다. 거짓 증인을 세우는 등 악한 일에 하나 됩니다. 침묵하시는 예수님께 질문하는 대제사장.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리스도’라 대답하십니다. 이에 죽을죄로 정죄하고 조롱하고 핍박합니다.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가 불을 쬐던 베드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통곡합니다. 입술로는 시인하나 마음과 삶으로는 부인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항상 깨어있게 하소서! 성령님께서 저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소서!

진실은 진실로만 증명됩니다.(막 14:53-72)

막 14:53-72 묵상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진실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증명될 것입니다. 베드로의 세 번 부인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진실을 증명합니다. 진실은 진실로만 증명됩니다. 진실은 거짓으로 증명될 수 없고 거짓으로 막을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진실 밖에 없습니다.

축복과 저주(신27:11-26)

축복과 저주(신27:11-26) 본문은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에발산에 돌비와 돌단을 쌓은 후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기 위해, 12지파 가운데 각 6지파씩 나누어 각각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서야 했다. 이처럼 각기 6지파씩 나누어 선 것은 하나의 상징적 행위로, 축복의 산에 선 6지파는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을 상징하고, 저주의 산에 선 6지파는 율법에 불순종하는 자들을 상징할 뿐이다. 특히 본문에는 축복에 관계 된 내용이 생략된 채 저주에 관계된 내용만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본성적으로 범죄하기 쉬운 인간의 죄악 된 심성에 강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함이다.

아름다운 거리감

아름다운 거리감 지구가 태양을 사랑한다고 해서 태양 쪽으로 갑자기 뛰어든다면 혹은 달이 지구가 좋다고 와락 달려와 안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별빛이 고운 것은 그 빛이 오래전 출발해 지금 우리 눈에 닿았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지척에서 별의 표면을 본다면 그것은 한낱 울퉁불퉁하고 거친 광야 같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아름다운 거리감'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을 통한 아름다운 거리감은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마음의 연결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때로는 열정적이고 격렬할 수 있지만, 그 열정이 상대방을 무례하게 다루거나 침범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후서1:8)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필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제대로 살고,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면 그 자체가 고난이고, 고난 앞에 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지금도 고난인데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이 아주 무겁게 느꺼질 수도 있습니다. 매년 이 맘때면 교회마다, 성도마다 더욱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받고, 변화되어 자신의 일생을 복음을 위해 신실하게 살아낸 믿음의 선배로서 고난을 어떻게 대했는지 고백하여 남겨줌으로써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 것을 권면하고 있습..

제삼시(막15: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막15:25)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을 ‘제삼시’로 못 박습니다. 오늘의 시간으로 오전 9시입니다. 제육시, 즉 낮 12시에 온 땅에 어둠이 깔렸고(막 15:33), 제구시, 즉 오후 3시에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며 운명했습니다.(막 15:34, 37) 마가복음의 이런 연대기적 진술은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을 말하지 않고 대신 어둠이 깔린 낮 12시와 예수님이 운명하신 오후 3시만 지적합니다. 누가복음도 마태복음과 똑같이 보도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제삼시’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 말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대신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십자가 아래서(3)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막15:24) 십자가 아래서 제비뽑기를 하고 있던 로마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원죄론의 타당성을 언급한 어제의 묵상을 오늘 보충해야겠습니다. 자칫하면 그 묵상이 원죄론의 오용과 왜곡을 옹호하는 것처럼 전달될 수도 있으니까요.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원죄론은 크게 왜곡되기도 했습니다. 우선 그 가르침은 신자들을 심리적으로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했습니다. 거의 질병 현상으로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불행한 일을 만나면 모든 것을 죄의 탓으로 돌립니다. 심지어는 기도를 게을리 했다거나, 헌금을 제대로 바치지 않아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까지 말합니다. 이런 죄책감이 사회적인 차원으로 발전하면 개혁과 변화의 장애로 작용합니다.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