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5 13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사(창44:1-13)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사(창44:1-13) 본문은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은잔시험이 기록된 부분이다. 아마도 요셉의 형제들은 1차 때와는 달리 2차 애굽 방문 때에는 애굽 총리의 후한 대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1차 애굽 방문시 억류되었던 시므온과 야곱이 염려했던 베냐민을 무사히 데리고 다시고향 땅으로 돌아 갈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형제들이 귀향하기 직전 요셉은 고의적으로 은잔을 숨기고 도둑으로 몰자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의 은잔 시험으로 인해 또 다시 경악하게 된다. 본문은 우리 인생사의 한 단면으로 보게 한다. 즉 인간 스스로는 자신의 앞길을 한 치도 알 수 없으며, 또한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불운을 겪거나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자주 ..

욥의 시간 (욥 7:1~8)

(2022/12/11, 대림절 제3주) [인생이 땅 위에서 산다는 것이, 고된 종살이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 그의 평생이 품꾼의 나날과 같지 않으냐? 저물기를 몹시 기다리는 종과도 같고, 수고한 삯을 애타게 바라는 품꾼과도 같다. 내가 바로 그렇게 여러 달을 허탈 속에 보냈다. 괴로운 밤은 꼬리를 물고 이어 갔다. 눕기만 하면, 언제 깰까, 언제 날이 샐까 마음 졸이며, 새벽까지 내내 뒤척거렸구나. 내 몸은 온통 구더기와 먼지로 뒤덮였구나. 피부는 아물었다가도 터져 버리는구나. 내 날이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지나가니, 아무런 소망도 없이 종말을 맞는구나. 내 생명이 한낱 바람임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내가 다시는 좋은 세월을 못 볼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다시는 나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눈을 ..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입니다"(시편146: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146:5) 다윗은 하나님을 아주 멀리 계신, 우주의 어딘가에 계신 하나님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한 것처럼 자신의 삶에 개입하셔서 누이시고, 인도하시고, 소생시키시고, 함께 하시고, 필요를 채우시고, 부어주시고, 이끄시는 최고로 완전한 목자이신 하나님을 느끼고, 누리며, 동행하며 살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이스라엘)의 하나님, 대대로 섬겨오신 하나님을 주님으로 믿는 자는 복이 있다고 찬양합니다. 다윗의 믿음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의미없이 호칭하거나, 누군가를 덩달아 따라가는 것처럼 믿는 것이 아니라 하..

오병이어 (6)(막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 6:38) 오병이어 사건이 벌어졌을 때 모인 사람의 숫자가 5천명이 되었다는데,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겨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다는 게 이상해보입니다. 옛날에는 밥을 사먹을 데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대개는 자기 먹을 걸 자기가 갖고 다니기 마련입니다. 깜빡 잊고 나온 사람들이 개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웬만한 사람들을 챙겨 나왔을 텐데 오병이어뿐이라니요. 좀 심합니다. 여기에는 성서기자가 보도하지 않은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 겁니다. 이런 사연은 앞으로 여러 번에 나누어 다루어질 테니까 접어두고, 오늘은 그 사태 자체만을 짚겠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필..

오병이어 (5)(막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 6:38)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제자들이 가서 알아보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떡만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물고기까지 알아보았군요. 지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갈릴리 호수 근처라서 물고기를 말린 먹을거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구는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신기한 혹성입니다. 우리가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먹을거리를 아주 풍성하게 생산합니다. 오늘 저희 교회에서는 예배 후에 점심으로 옥수수, 감자, 빵을 먹었습니다. 옥수수와 감자를 텃밭에서 거두어온 교우의 말을 들어보니 옥수수 한 알에 옥수수 한 ..

오병이어 (4)(막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 6:38) 어제 저는 오병이어가 예수님과 더불어 새로운 빛을 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물이 거룩하게 변하는 순간입니다. 이 땅에 있는 사물이 과연 거룩한 빛을 낼 수 있을까요? 그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우리 눈에 사소하게 보입니다. 늘 그렇게 널려 있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거룩하게 빛을 내려면 무언가 색다른 것이어야만 하는데, 그 사물들은 너무나 평범해 보입니다. 이 세상의 사물들이 뿜어내는 거룩한 빛을 우리가 포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우리에게 거룩한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습니다. 산은 그곳에 늘 있어야 하고, 강은 그렇게 늘 흘러야 합니다. ..

이웃을 기쁘게 하는, 성숙한 인생! (2022.12.15,목)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로마서 15:1-2). 바울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한 부분을 짊어지라고 부탁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중을 먼저 생각하기에 이웃 사람들의 상태까지 고려하여 행동합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 10:33). 대표적으로 그런 삶을 보여준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기만 기쁘게 행동하셨다면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예..

전도서 12장: 창조주를 기억하라

해설: 전도자는 이제 결론에 이릅니다. 그가 이 책에서 한 모든 말들은 결국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께 미래를 맡기고 하루하루의 삶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일입니다(1절). 2절은 죽음의 날 혹은 심판의 날에 대한 비유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천 년 만 년 살 것 같지만, 예기치 않은 시간에 죽음의 문턱에 이를 수 있습니다. 3-4절은 노쇠 하는 것에 대한 비유인데, 새번역은 비유를 풀어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비유를 풀어 놓으면 이해하기는 쉬운데 비유의 힘은 증발해 버립니다. 6절도 육체의 여러 기관이 약해지는 것을 비유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때가 되면 늙고 죽음에 이릅니다(5절, 7절). 그것만 보면 인생은 헛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8절)..

묵묵히 자기 길을 가다 (전 9:11-18)

"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전 9:11) 사람이 자기의 계획대로 다 된다면 이 세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준비한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두 가지의 생각을 전합니다. 하나는 원인과 결과가 항상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같습니다. 토끼가 외적으로 거북이를 압도하지만, 삶의 경주가운데 나타나는 다양한 변수는 항상 토끼가 이길 수 없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다 부..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인격적인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인격적인 사랑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이익 때문에 베푸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주는 것이 좋아서 자기가 일방적으로 퍼붓는 사랑도 아니다. 부부의 사랑은 서로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인정해 주며, 그 사랑의 질서 안에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데서 오는 사랑이다. -김남준 목사의 ‘아내도 ‘그릇’이다‘에서- 그 인격적 사랑의 중요한 특징은, 상대방이 부족할지라도, 그를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미성숙할지라 인내하고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인격적인 사랑은 ‘어설프게 서로를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인격적인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해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