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9 16

형들에 대한 요셉의 시험(창42:6-25)

형들에 대한 요셉의 시험(창42:6-25) 본문은 요셉과 형들의 재회와 형들을 요셉이 시험하는 장면에 이어, 요셉이 시므온만 억류하고 나머지 형들에 대해서는 조건부로 귀향시키는 내용이다. 요셉에게는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 온지 20여년만의 상봉이었지만, 요셉은 형들과 재회의 기쁨 보다는 오히려 형들을 시험 했다. 이러한 요셉의 행동은 얼핏 너무 냉혹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요셉이 성급하게 자신의 신분부터 밝혔다면 형들은 지난날의 잘못으로 인한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요셉을 기피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야곱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 질 수 있었다. 한편, 본문에는 오래 전 요셉이 꾼 첫 번째 꿈(37장)이 형들이 요셉에게 절을 함으로써..

여호와를 아는 지식 (사 11:1~10)

대림절 둘째 주일, 2022년 12월4일 오늘 설교 성경 본문인 사 11:1~10절 앞 대목인 10:24절 이하 단락에는 우리말 성경으로 ‘주께서 앗수르를 멸하시리라’라는 제목이 붙었고, 뒤에 나오는 13:1절 이하 단락에는 ‘바벨론에 대한 경고’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은 이집트와 더불어서 이사야 시대에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볼 때 이집트는 남쪽이고, 앗수르는 북쪽이며, 바벨론은 동쪽입니다. 서쪽은 지중해입니다. 크게 보면 고대 이스라엘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이에 끼어 있던 셈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열강의 세력 틈바구니에서 늘 생존이 위태로웠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8세기 중반 남유다를 반(反)앗수르 동맹에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요즘 ‘한미일 동맹..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이사야29:8)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요새를 쳐서 그를 곤고하게 하는 모든 자는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되리니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이사야29:7-8) 아리엘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로 아리엘이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공격받게 하심으로 괴롭고, 슬프고, 애곡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적들이 4면을 포위하고, 예루살렘 성 옆에 토성 같은 대를 높이 쌓아 공성 전으로 공격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아리엘, 곧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적들인 열방의 무리들은 실질적으로는 얻는 것도, 이룬 것도 없는 한 낱 꿈 같고, 한 낱 환상 같을 뿐이라고 하십니다..

152 - 비판/정죄의 이유

[기도/말씀]​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귀한 하루 주시고 하늘의 문, 마음의 문 열어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봅니다. 말씀과 기도, 찬송과 믿음에 풍성한자 되게 하셔서 축복의 등불이 되어 믿음의 등대를 밝히게 하옵소서.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 16) [배경/해석]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유대인은 모세 5경 토라(הרות)에서 AD 3세기경 율법 613개의 계명이 만들어 졌습니다. 율법 613개 계명은 "하라"는 계명 248개와 "하지 말라"는 계명 365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언급한 먹고 마시는 것과 7대 절기와 초하루(월..

쉼 (막 6: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막 6:31) 막 6:30-44절은 소위 오병이어 사건을 중심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두 전승을 하나로 묶은 것입니다. 31-33절은 파송에서 돌아온 사도들의 보고를 중심으로 한 전승이며, 34-44절은 오병이어 전승입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나름의 시각으로 이 두 전승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었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31절 말씀도 파송에서 돌아온 제자들에게 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문맥으로만 본다면 제자들의 수고와 피곤을 풀어주려는 예수님의 배려인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말씀, 즉 사람이 많아..

사도들의 보고 (막 6: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막 6:30) 앞서 막 6:6b-13절이 보도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파송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에게 일어난 일을 예수님에게 보고했습니다. 마가복음은 그 사이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물론 요한은 그 이전에 이미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바로 이 대목에서 요한의 죽음을 다시 거론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이런 편집은 글쓰기의 기술이겠지요. 사도들의 보고는 큰 줄기로 볼 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가르침입니다. 전자는 실천(praxis)이고, 후자는 이론(theory)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학문, 예술, 정치를 비롯한 인간..

요한의 시체 (막 6: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막 6:29) 요한은 끔찍하고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공식적으로 재판이라도 받았지만 요한은 그런 절차도 없이 헤롯의 생일잔치 자리에서 벌어진 그들의 객쩍은 농담 몇 마디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무리 헤롯이 왕이라고 하지만 로마의 식민 치하에서 총독의 재가 없이 이렇게 참수형을 집행할 수 있는지는 제가 문헌을 조사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 당시야 공식과 비공식이 그렇게 엄격하게 구별되지도 않았을 때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는 있었을 겁니다. 요한의 죽음이 비극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방식으로 역사가 발전하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공생애 바로 직전이나 아니면 아주 초기에 죽지 않..

하나님이 대견하게 여기시는 사람! (2022.12.9, 금)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기 1:8). 욥기 1장은 하나님이 천사들과 회의를 하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옵서버로 참석했을까요,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한 사탄의 활동 상황을 질문하시던 하나님이 대뜸 욥이라는 사람을 거론하셨습니다. 사탄에게 하나님이 뭔가 자랑할 만한 비장의 ‘카드’로 꺼내신 사람이 바로 욥이었습니다. 욥기의 긴 이야기는 그렇게 하나님이 사탄에게 자랑하고 싶으시던 사람을 칭찬하시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칭찬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이런 극단적인 칭찬이 어디 있으며, 더구나 하나님이..

전도서 7장: 메멘토 모리

해설: 이 장에서 전도자는 여러 가지의 잠언들을 열거합니다. 이 잠언들은 에 나오는 잠언들과 유사해 보이지만 회의적 정서가 강합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2절). 인간의 유한성과 연약함을 인식하는 사람은 흥겹게 먹고 즐기는 것보다 고통 받는 사람과 함께 하기를 힘쓸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망각하고 웃고 떠들기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가마솥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6절)와 같습니다. 탐욕도, 뇌물도, 분노도 어리석음에서 나옵니다(7-9절). 지혜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줍니다(10-13절). 인간은 앞일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받을 뿐입니다. 그분은 좋은 일도 주시고 나쁜 일도 주십니다(14절). 이어서 전도자는 극..

스벤 브링크만 '절제의 기술' / '절제는 최고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덴마크 알보그대학 심리학 교수 스벤 브링크만의 《절제의 기술》을 하나님께 드리며 ‘절제는 최고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 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길거리와 TV는 물론 포털사이트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끝없이 이것을 가져야 좋고 저것도 좋다면서, 무언가를 얻는 것이 행복의 비결인 것처럼 선전합니다. 그런데 브링크만 교수는 유혹만 좇아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플라톤의 대화편 ‘고르기아스’에 나온 소크라테스의 표현을 빌려, 헛된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마음을 가리켜, 아무리 많은 물을 부어도 결코 채울 수 없는 ‘구멍 난 항아리’에 비유합니다. 그러기에 행복은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