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4 15

방형! 고맙습니다.!

늘 그러하듯 어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늘 풍성한 대접을 받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그렇게 삶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나의 삶의 여정 가운데 참 의미 있는 시간들입니다. 분명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나의 지나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네요.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선각자들의 말처럼 빠르네요. 그 세월만큼이나 나의 삶의 여정이 농익었는지 돌아보니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아도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관점으로도 늘 함량 미달입니다. 그러한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음은 그 이웃들의 따뜻한 배려 덕분이고 나의 생명의 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니 굽이굽이마다 사연이..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갈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라디아서6:1) 교회 안에 범죄하거나, 빗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교인들 중에는 그런 사람을 비난하고, 배척하다가 자기 자신도 시험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시험에 빠지고, 영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누구 때문이야"라고 핑계를 댑니다. 교회 안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범죄한 사람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정도의 문제가 있을 때 그 사람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신령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을 말하는데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만이 교회에서 말할 수 있고,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만이 선한 영향력을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알지 못했다!(창43:26-3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알지 못했다!(창43:26-34) 본문은 장차 이스라엘 12공동체를 형성하게 될 야곱이 12아들이 약 20여년 만에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식사와 교제를 나누는 장면이다.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요셉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 전 형제들의 나이 순서대로 앉히고 함께 식사하는 장면(31-34절)이다. 이것은 요셉이 첫번째 꿈이 또 다시 성취되는 순간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26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은 애굽 총리가 바로 자신들이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았던 요셉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볼 때 예수께서 죄인을 위해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지만, 그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한 인간들의 모습..

오병이어 (3)(막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 6:38) 제자들은 하찮다는 의미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입니다. 오병이어밖에 없으니 무얼 어떻게 할 수 있나요? 그런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오병이어나 있습니다. 이 두 문장의 차이는 ‘밖’과 ‘나’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천양지차입니다. 흔히 그런 말들을 한다고 하지요. 지혜로운 사람은 술을 마시면서도 아직 남아있는 것에 마음을 두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이미 먹어버리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똑같은 사태에 직면했는데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있답니다. 이 사..

오병이어 (2) (막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 6:38) 떡 몇 개나 있는지 알아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일어난 사건의 총체를 코드화 한다면 바로 이 오병이어(五餠二漁)라는 단어일 겁니다. 이것은 민중의 굶주림이 해결된 사건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초자연적 능력이 나타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는 별로 많은 먹을거리가 아닙니다. 몇 사람들이 요기를 하기 위해서 가져 온 것이겠지요. 다른 복음서에는 어린아이가 가져온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어쨌든지 제자들은 어디선가 오병이어를 구했습니다. 자신들이 구할 수 있는 건은 이것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병이어 (1) (막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 6:38)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유심히 보십시오. 제자: 무리를 마을로 보내서 무엇을 사먹게 하십시오. 예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오라는 말씀인지요. 예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 알아보라. 제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이백 데나리온 운운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는지 알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단 그걸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매우 소중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미리 겁을 먹습니다. 기독교..

고난의 유익을 아십니까? (2022.12.14.수)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생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린도후서 1:8-9). 힘이 들 때 누군가를 원망하기 쉽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 지역에서 선교하면서 극심한 고난을 겪었던 때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겠지만 그는 남달랐습니다. 하나님은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십니다. 그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난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환난을 받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위로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면 믿음이 더 굳건해집니다. 그리고 그 위로의 경험을 ..

전도서 11장: 알 수 없는 미래

해설: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1절)는 의역입니다. 직역하면 개역개정성경처럼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고 해야 합니다. 번역자는 앞뒤 문맥을 감안하여 이 비유를 투자에 대한 조언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여유 돈이 있으면 투자를 하되 위험을 분산시키라고 조언압니다(1-2절). 전도자의 관심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려는 데 있습니다. 비즈니스를 하든 농사를 짓든, 늘 염두에 둘 것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3-5절). 따라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가장 좋은 준비는 부지런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6절). 전도자는 다시금 ‘산다는 것’에 대해 예찬을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며, 따라서 주어진 모든 날을 즐겨야 합니다. 다만 두 가지를 기억..

시 읽기의 네 가지 유익

시 읽기의 네 가지 유익 “시를 읽으면 뭐가 좋아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시 읽기의 네 가지 유익함’이란 말로 답하곤 한다. 첫째는 ‘몸과 마음을 춤추게 하는 리듬(운율)의 즐거움(樂)’이고, 둘째는 ‘마음속에 그려지는 시각적 회화의 이미지(像)’다. 셋째는 ‘시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設)’다. 넷째는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감성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공감각적 상상력(想)’이다. 고두현 저(著)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쌤앤파커스, 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시는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울림을 주는 문학 장르입니다. 함축과 생략, 비유와 상징의 묘미가 살아 있는 시어는 숨 막히는 말줄임표이고, 벙어리 소녀의 눈빛 같이 강력합니다. 성경의 시편은 말 그대로 시로 쓰여진..

아무 것도 없는 스올 (전9:1-10)

"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전9:10) 해 아래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올은 더욱 더 절망적입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생의 주인이 자신인 것처럼 살지만 정작 내일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지못합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일입니다(1절). 불평등이 많은 세상이지만 그 가운데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악인과 의인은 죽음에서는 차등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은 만물보다 부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