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9 17

85. 다윗의 리더쉽

[기도]​ ​ 여호와 하나님,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인생이 되게 하사, 먹든지 마시든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구하게 하소서. ​ [말씀]​​ ​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23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삼상22:20~23) [묵상] ​ 아히멜렉의 살아 남은 아들..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창5:21-32)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창5:21-32) 본문 기자는 족보를 기록하던 중 갑자기 에녹의 생애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24절) 에녹은 여호와를 기쁘게 해드렸고 항상 하나님과 ‘동행’했던 하나님의 사람이다. ‘동행하다’(히 할라크)의 단어는 종종 ‘뜻을 좇다’, ‘삶을 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이 말은 에녹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올바른 삶을 살았다’란 뜻이다. 곧 에녹은 당시대의 부패상과 타락상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하나님과 교제하며, 성결의 삶을 살았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이 지구상에서의 생존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늘로 들어 올리셨다. 시기상 에녹 승천은 아담 사후 57년에, 노아 탄생 69년전에 있었다. 이 에녹의 승천 사건은 오고 오는 모..

82.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울

[기도]​ ​ 아버지 하나님, 채우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삶의 주변과 경계를 넘어 흘러가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송하며 복음을 전하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 ​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삼상22:17) ​ [묵상] ​ 사울은 아히멜렉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좌우 호위병에게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호위병은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자들로 왕을 지키는 자들이나, 찾아가서 죽이라는 명령에는 따를 수 없었습니다. 더 더욱,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들을 죽일 ..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편119: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편119:36) 우리의 마음은 어딘가로 향하게 되어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향하고, 마음이 흘러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탐욕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당연한 것처럼, 아주 쉽게 탐욕을 향합니다.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고, 이기적인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빠르게 달려갑니다. 이 시편의 기록자는 자신의 마음도 너무 쉽게 탐욕으로 달려가는 것을 알았고, 이런 탐욕스러운 마음에 자신을 태우고, 그 탐욕을 채우기 위해 달려가지 않도록 도와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탐욕으로 향하던 마음을 멈추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런데 멈추고, 돌이킨 그것만으로 우리의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레 26:1-13)

"9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13) 하나님은 언약을 맺은 자녀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반드시 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 일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그 어떤것도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이 있다면 더이상 언약의 열매를 먹을 수 없습니다. 해야 할 것은 안식일을 지키고 성소를 경외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유일한 신이심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안식일과 성소..

시인 김수영의 정신 구조 최상부에 있는 것

시인 김수영의 정신 구조 최상부에 있는 것 “모호성은 시작(詩作)을 위한 나의 정신 구조의 상부 중에서도 가장 첨단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없이는 무한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유일한 도구를 상실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김수영 저(著) 이영준 편저(編著) 《시여, 침을 뱉어라》(민음사, 9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깊은 시인 김수영에게 모호성은 시작(詩作)을 위한 정신구조의 첨단에 놓이는 미지의 정신이었습니다. 그의 정신 꼭대기에 ‘명료성’보다 ‘모호성’ 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됩니다. 악한 마귀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유혹하며,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알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

그 사람의 인격인 리더십 (2022년 8월 19일 금요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사무엘상 12:3하). 참다운 리더십은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이나 힘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삶에서 나타나는 인격이 리더십의 본질에 더욱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리더십의 유형 중에 카리스마적 스타일이 있습니다. 결단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고 화려하고 찬란한 결과를 늘 기대하는 리더십 유형입니다. 그러한 리더십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다운 리더십은 오히려 리더의 삶의 특질(Quality)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삶이 바로 그런 리더십 유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희어져..

학대를 치유하는 참된 위로를 위하여! (2022년 8월 18일 목요일)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전도서 4:1). ‘학대’라고 하면 폭군이나 착취하는 부자들을 연상합니다. 아마 오늘도 세계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는 그런 학대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입니다.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조용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위로자의 사명’일 것입니다. 물론 거기서 더 나아가 그런 학대를 종식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 상황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더라도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학대의 현장을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과 인자 (7) (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인간의 감수성이 지배하는 예배와 삼위일체 하나님이 임재 하는 예배를 우리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구분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말은 이렇게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신학적 영성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설명해보아야겠지요. 예전(liturgy)과 교회력의 약화는 오늘의 예배가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의 가장 결정적인 근거입니다. 예전과 교회력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지난 2천년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표현해온 상징입니다. 오늘의 열린예배는 이런 요소들을 무시되고 현재 청중들의 종교적 감수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로만 나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찬송만 해도 그렇습니다...

안식일과 인자 (6)(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안식일의 주인이 인자라고 한다면 가능한대로 교회 자체나 사람들의 흥미를 줄이고 주님에게 우리의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잘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자는 우리에게 너무 먼 이야기에 불과하고, 그저 우리끼리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훨씬 흥미롭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열린예배”도 역시 안식일의 주인이 인자라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거역하는 예배 행위가 아닐는지요. 물론 모든 경우를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경향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이 예배는 기본적으로 정통의 예배가 안고 있는 정숙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정통예배보다 훨씬 심각한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