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5 13

하나님의 긍휼과 거룩하심 (호 11:1~11)

호세아 선지자는 기원전 8세기 초, 그러니까 지금부터 2천7백 년 전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호세아는 문서 선지자 중에서 유일한 북이스라엘 출신이라고 합니다. 말이 2천7백 년이지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조선보다 훨씬 이전 시대니까요. 그렇게 오래전에 선포된 말씀인데도 오늘 살아있는 선지자의 설교처럼 생생하게 들립니다. 그런 생생한 경험이 무엇인지를 오늘 여러분에게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바알 숭배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를 짚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2절 말씀이 그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북이스라엘은 핵심 도시..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혹자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를 ‘땅의 소산’으로 드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첫째, 당시에는 피의 제자 제도가 생기기 전이었다. 하나님은 제정되지 않은 법으로 백성들을 정죄하는 분이 아니시다. 둘째, 하나님은 제물을 드린 사람의 태도에 주목하셨다는 것이다. ‘아벨과 그의 제물’과 ‘아벨과 그의 제물’에 답이 있다. 여기서 ‘제물’은 제사 드리는 자의 태도를 말한다. 히브리기자는 이일에 대하여 이렇게 주석하고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아가서7:10)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아가서7:10) 아가서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책입니다. 솔로몬의 여인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표현이라고도 하고, 솔로몬이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마음을 시로 표현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모두 성경의 권위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의 나쁜 의도에서 출발이라고 생각 됩니다.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크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너무 작게 표현하시고, 심지어 사랑하는 대상인 우리 각 사람에게 예속 될 정도 동등한 입장에서 사랑하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질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하시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내 ..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다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다 “만남의 광장엔 만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만나는 사람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다 두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도착할 수는 없으니까 ‘기다리다’를 견디지 못하면 ‘만나다’도 없다. 만남의 광장의 다른 이름은 기다림의 광장이다.” 정철 저(著) 《머리를 9하라》 (리더스북, 5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적지 가나안은 직선 코스로 일주일, 돌아가도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단련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구름이 떠오르면 행군을 했으며, 구름이 머물러 있으면, 그 곳..

당신의 삶에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까? (2022년 8월 15일 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2-24). 많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령 충만, 성령의 역사, 성령의 능력 등은 다분히 신비적인 느낌을 줍니다. 물론 성령님은 성도들의 삶에서 신비한 역사도 일으키시고 초자연적인 능력도 행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역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훨씬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성령의 열매가 바로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처럼 중요한 것이 없지만 사랑은 항상 부족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사랑이 넘쳐납니다. 인간적인 정으로 사랑을 ..

안식일과 사람 (2) (막 2: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2:27) 안식일과 사람,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무엇이 신앙의 중심축입니까? 물론 예수님의 이 말씀에 의하면 당연히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런 게 바로 성서읽기에서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이며, 동시에 우리가 반드시 유지해야 할 긴장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이 말씀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은 밀이삭을 잘라먹은 제자들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불평이었습니다. 안식일 법을 빌미로 제자들의 행동을 문제 삼은 바리새인들 때문에 이런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상황을 전제하지 않고 안식일과 사람만을 대립적으로 판단..

안식일과 사람 (1) (막 2: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2:27) 오늘 본문은 보기에 따라서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니요. 그리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니요. 이 말씀은 그 당시에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알고 있는 종교와 인간관계를 완전히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절대규범인 안식일을 상대화하는 이런 진술은 신앙의 본질을 꿰뚫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진리의 성격은 이렇게 이중적입니다. 본질을 드러내면서 위기를 불어온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안식일을 해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정확하게 들여다보십시오. 안식일은 무의미한 종교..

에스더기 8장: 새로운 조서가 공포되다

해설: 왕은 하만의 재산을 몰수하여 에스더에게 주었고, 그에게서 빼앗은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줍니다(1-2절). 하지만 하만이 내린 조서는 아직 유효합니다. 한번 공포된 조서는 취소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권위를 깎아 내리는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한번 공포된 조서는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제거 되었지만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 명령은 여전히 유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다시 왕에게 찾아가 하만이 왕의 이름으로 내린 조서를 취소해 달라고 간청합니다(3-6절). 하지만 왕은 이미 공표된 조서는 취소할 수 없으니 유대인들에게 유리한 조서를 하나 더 내리도록 허락한다고 답합니다(7절). 왕은 조서를 작성하는 권위를 모르드개에게 위임합니다. 그는 서기관들을 소집하여 왕의 이름으로..

박탈과 분리의 트라우마 치유 / 이경희 목사(대구 한빛교회)

출생 때부터의 박탈과 분리 트라우마는 일생을 살아가는 데 영향을 미친다 박탈과 분리 트라우마는 예수를 주로 영접한 후 그분과의 일체감에서 치유된다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철이 일찍 든다고 그렇게 말을 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회갑이 넘어도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여자가 남자를 보고 철이 없다는 말을 하지 남자가 여자를 보고 철이 없다고 하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엄청난 상처를 받는다. 대표적인 상처가 박탈감의 상처와 분리감의 상처다. 태어날 때 박탈과 분리의 공포 속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사람은 근원적인 트라우마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여자가 잉태하면 태아는 산모의 몸속에 있는 아기집이라는 곳에서 자라서 10개월이 되면 산모의 몸 밖으로 나와 세상..

박수갈채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박수갈채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박수갈채가 무엇인가? 한순간 공기의 진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처럼 허무한 것이 없다. 인기 연예인 중에서 왜 약물에 많이 빠지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공기의 진동인 박수갈채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박수갈채를 향하여 뛰어가고 그것을 받지만 집에 돌아오면 허전한 것이다. 그 공허함을 엉뚱한 것으로 채우려 하기에 쉽게 약물에 빠져드는 것이다. 인간의 박수갈채를 푯대로 삼지 않는다는 뜻은 인간의 모함도 핍박도 굴하지 않고 이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핍박의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이재철 목사의 ‘인간의 박수갈채와 주님의 심판’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핍박의 시대가 지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분들은 단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