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30대의 젊은 교수였던 필자는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의 여름방학을 일본에서 보냈다. 이토 히로부미 연구에 천착했던 여름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습기 많고 무더운 일본, 특히 교토의 날씨는 필자의 헤어 스타일을 영원히 “빛나게” 하는데 기여했다. 탈모의 시작이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일본의 치밀한 전략과 이토의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났다. 당시 일본학계에서도 다수파는 이토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 때의 공부가 이후 친분을 맺게 되는 다키이 가즈히로 교수의 이토에 관한 긍정적인 학설들을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이 때 ≪황성신문≫에 1905년 6월 12일부터 6월 21일까지 6차례에 걸쳐 利龍子라는 이름으로 기고된<헌정쇄담>의 저자를 찾고 싶었다. 근대 헌정과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