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3 13

안식일 (5)(막 2: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 2:24) 구약성서의 안식일은 안식년과 희년 사상의 단초입니다. 이들 개념은 모두 인간의 해방, 자유, 평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생태적인 평화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구약성서가 이런 개념을 발전시킨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인간 삶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왜곡된 삶을 하나님이 창조한 원래의 뜻에 따라 새롭게 구성해내자는 게 바로 이런 개념들의 방향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바로 이런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 정신이 교회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는 이런 개념들을 순전히 개인의 종교적인 차원에서만 받아..

안식일 (4)(막 2: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 2:24) 초기 그리스도교는 오랫동안 안식일(토요일)을 지켰습니다. 훗날 태양신을 섬기던 로마 제국의 문화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시나브로 주일(일요일)을 예배드리는 날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예수님의 부활이 일요일이었다는 사실과 아울러 로마제국이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켰다는 사실이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어쨌든지 예배모임이 토요일이냐, 일요일이냐 하는 것은 문화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성탄절이 서방교회가 지키는 12월25일이든 러시아 정교회가 지키는 1월6일이든 크게 중요한 게 아니듯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질문해야 할 사실은 과연 오늘 교회의 주일이 신자들에게 참된 쉼을 제..

"우리로 지혜로운 마음을 얻을 수 있게 해주소서”(시90:12)

“그러하오니 우리가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 것인지를 헤아릴 수 있게 하셔서 우리로 지혜로운 마음을 얻을 수 있게 해주소서”(시90:12.쉬운말성경)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심이 어찌 그리 신비로운지요! 또한 예수님의 대속의 은총이 어찌 그리 놀라운지요! 원컨대 보혜사 성령님께서 사랑으로 강권하셔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며, 오직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하소서!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39:4)

하지말라면 하지 말라!(창3장 교훈)

하지말라면 하지 말라!(창3장 교훈) 첫째, 진리(말씀)의 결여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3절)“? 아니다.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다. 회색과 희색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회색과 희색을 같이 취급하려고 한다. 둘째,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6절) “먹지 말라!” 분명히 말씀하셨건만 그것을 먹었다. 셋째, 사탄의 계략에 대한 무방비이다. ‘정말 먹지 말라하시더냐?’(1절)-의심과 회의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4절)-거짓말 그리고 사탄이 발라 놓은 죽음의 향기에 취해 선악과를 먹었다. 사탄은 ..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마태복음13:44-46)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태복음13:44-46)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을 사는데 돈을 아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하면 "영끌"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영끌"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 비유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집을 사고, 주식을 사는데는 "영끌"을 하는데 천국을 위해서는 그냥 오라고 해도 오지 않습니다(사55:1). 천국의 가치, 복음의 가치는 돈을 바라보느라 눈이 먼 사람..

일터에서 성적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하여! (2022년 8월 13일 토요일)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욥기 31:1-2). 남성들이 여성을 보는 시각에는 성적인 측면과 유혹의 요소가 많은 모양입니다. 요즘에 더욱 성희롱과 성추행, 각종 성적 범죄에 대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데 욥의 양심선언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대중문화를 통해서 성적인 자극들이 더욱 심해지고, 여성들의 사회 활동도 많아져서 이성 간의 접촉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일터에서도 바람직한 이성 관계를 규정하고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꼭 필요..

에스더기 7장: 하만이 몰락하다

해설: 왕과 하만은 이틀 연속 에스더가 차린 잔치를 즐깁니다. 술이 거나 해지자 왕이 다시 에스더에게 청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에스더는 왕에게, 전멸될 위험에 처한 자신의 민족을 구해 달라고 청합니다(1-4절). 왕은 누가 그런 일을 도모하고 있는지 물었고, 에스더는 하만이 그 장본인이라고 답합니다. 갑작스러운 반전에 하만은 사색이 됩니다(5-6절). 격분한 왕은 잠시 바깥으로 나가 생각을 정리하는데, 하만은 에스더의 침상에 엎드려 목숨만 살려 달라고 간청합니다(7절). 잠시 후에 잔치 자리로 돌아온 왕은 하만이 에스더를 범하려는 줄로 여겨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소리에 내시들이 달려와 하만을 포박합니다(8절). 왕이 하만을 어떻게 할까 궁리할 때,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여 매달아 놓으려고 세운 망..

“이런 눈물을 흘리고 싶습니다” / 구정오 목사(미래로교회)

우리네 삶은 수고의 눈물의 양이 감격의 눈물의 양을 결정해 요즘 나이가 먹어가는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자꾸 눈물이 납니다. 그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새벽을 깨워 하나님 앞에 나와 어린아이같이 기도하는 성도들을 볼 때 눈물이 납니다. 새벽마다 목장 식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면서 기도하는 목자들(구역장)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선교지에서 자기 몸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그렇게 섬기다가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해 본국에 와서 수술에 수술을 거듭해야 하는 우리 선교사들을 볼 때 안타까워 눈물이 납니다. 동물과 사람을 구분 짓는 것 중에 하나가 눈물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슬퍼도 눈물, 기뻐도 눈물, 억울해도 눈물, 감격스러워도 눈물, 고통스러워도 눈물, 참회하면서 눈물! 참 다양한데..

영육이 다 구원을 받았으므로

영육이 다 구원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되 한두 번만 지키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까지 지켜주신다고 했다. 우리는 아무리 죽음의 위험에 빠진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 .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 지켜주실 것이다. 우리는 영육이 다 구원을 받았으므로. 안전하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문성욱 목사의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이 우리의 도움이라고 생각하였던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우리의 눈을 들어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길을 지켜주시고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고 우리의 출입을 지..

외식적인 삶은 기독교인의 적

외식적인 삶은 기독교인의 적 글쓴이/ 봉민근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외식이다. 거짓으로 자신을 드러 내거나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거나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외식이다. 외식은 자칫 자신을 교만으로 이끌어 간다. 평생을 주를 위하여 몸 바쳐 헌신하고 최선을 다했다 할지라도 외식하는 자가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상은 전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과소평가할 때에 섭섭함을 넘어 우울증에 시달리게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단호하고 엄격하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책망을 받은 주된 요인이 외식 주의적 삶에 대한 질타였다. 강단에서 평생을 목회하는 분들이 이러한 잘못에 빠지기 쉬운 것은 사람들을 향하여 자신을 드러 내려는 욕망이 그 누구에게나 있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