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 423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한다‘는 바울의 고백. 또한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을 본받아 참 제자의 삶을 살았던 본회퍼의 고백을 되새깁니다. ’하나님의 강함은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완전해진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살리시고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심이 어찌 그리 놀라운 은혜인지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바람을 꾸짖다!(막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오늘 본문을 정직하게 읽는다면 황당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연현상까지 굴복시키는 일이 예수님에게 과연 가능했을까요? 그런 일들은 주로 마술사들이 하는 겁니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그건 그가 직접 바람을 일으킨 게 아니라 과학적 통계를 통해서 그 시각에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뿐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아주 신통한 능력이 주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난 이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광풍이 멎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채신 걸까요, 아니면 실제로 자연을 제어할 수 있는 초능..

제자들의 호들갑 (막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 4:38) 제자들은 졸고 계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선생님, 위험하니 먼저 피하십시오,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왜 모른 척 하십니까, 하는 거였습니다. 그들은 늘 자신들에만 관심을 두고 있군요. 그건 그렇고, 제자들 중에는 전업 어부들이 많았습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왕년에 갈릴리 호수를 주름잡던 제자들은 그런 풍랑을 자주 경험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런 상황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게 이상합니다. 어쩌면 이런 경험이 없던 제자들이 나서서 예수님을 깨운 것인지 모르겠네요. 어쨌든지 그들의 행동은 호들갑입니다. 그들이 침착했다면 이런 일에..

잠든 예수 (막 4:37)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 4:37) 갈릴리 호수를 항해하고 있는 배 안에서 예수님이 졸았다고 합니다. 왜 졸았을까요? 피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게 가장 적절한 대답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피고하면 아무리 정신적으로 긴장해 있으려고 해도 그게 안 됩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제자들도 졸았습니다. 그 순간에 그 유명한 예수님의 경구가 나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하다고 말입니다. 예수님도 졸았고, 제자들도 졸았습니다. 양쪽 모두 피곤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약간 거꾸로 본다면 제자들의 졸음보다는 예수님의 졸음이 조금 더 무책임합니다. 제자들..

“네 문제를 해결 받을 의지가 있느냐?”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요한복음 5:5-6, 8-9).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이 베데스다라는 연못에 가셨을 때 그곳에는 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물이 움직일 때 천사가 내려오면 가장 먼저 내려가는 자가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38년이나 된 딱한 환자가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 사람을 보고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혹시 그는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는 예수님이 가장 먼저 연못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리라고 기대했을까요. 물이 움..

잠언 3장: 창조 원리를 따라 사는 삶

해설: 1절부터 12절까지는 지혜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소중히 간직하고(1절), 인자와 진리를 마음 깊이 새기며(3절),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5절),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경외하며(7절), 주님의 훈계와 책망을 기뻐하는(11절) 사람은 장수하며 평안을 누리고(2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고(4절), 주님께서 형통하게 하시고(6절), 상처가 낫고 아픔이 사라질 것이며(8절), 물질적으로 넉넉해질 것입니다(10절).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징계 하기도 하시지만 그것은 사랑의 다른 표현입니다(12절). 13절부터 18절까지는 앞의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지혜는 세상 어떤 것보다 귀합니다. 지혜를 따르는 삶에 장수와 부귀영화와 즐거움과 평안의 복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이사야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이사야1:2-3) 아주 망나니 같은 아들을 고발하는 부모의 탄식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어릴 때 시골 마을에서 본 장면은 통곡하며 "동네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망나니 같은 아들의 못된 행실에 대하여 억울하고, 폭폭하고, 사무치는 설움을 눈물로 쏟아내는 깊은 탄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컫는 자들이 소나 나귀만도 못하다고 탄식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개돼지만도 못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 하나님 보시기에 개돼지..

다윗의 퇴장 (삼하 23:1-17)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삼하 23:1-17) 본문은 다윗의 공적유언(1-7)과 마지막 교훈(8-17)으로 되어있습니다. 첫번째 다윗의 유언이라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퇴장하는 모습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보고함으로 퇴임사를 전합니다. 이새의 아들 목동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왕으로 기름부으시고 높여주셨고, 노래를 잘 하는 자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에는 자신이 할 일은 없고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었음으로 고백합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믿어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다윗은 지금 하는 말은 성령이 자신을 통하..

제자가 아닌 팬

제자가 아닌 팬 예수님이 원하시는 관계 중에 스타와 팬의 관계는 없다. 그런데도 미국의 많은 교회가 성전에서 스타디움으로 우르르 몰려와 예수님을 응원하지만 그분을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젯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리스도를 따를 생각은 추호도 없는 팬들이다. -카일 아이들먼의 [팬인가, 제자인가] 중에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향햐여 분명한 삶을 살 것을 요청합니다. 무리되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더욱 분명한 신앙을 가진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 무리되어 팬처럼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헌신짝처럼 버리도록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철저히 좁은 길로 가는 자가 영원한 생명을..

용서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것은 거짓 믿음의 증표다.

용서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것은 거짓 믿음의 증표다. 글쓴이/ 봉민근 참는다는 것! 인내한다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조그마한 비난에도 참지를 못한다. 혈기가 오르고 인내의 한계를 곧 드러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들은 조금만 손해를 보게 되면 얼굴색이 변하며 곧 혈기가 튀어나온다. 작은 욕심에도 그것에 집착하여 억누르며 자재할 능력이 부족한 것이 인간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이익 타산이 맞지 않으면 다시는 상대하려 하지 않는다. 살벌한 세상이다. 그리스도인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참으며 인내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일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우리 주님은 수천 년 역사를 통해 인내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죄악으로 찌든 인생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