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카이퍼 75

제15 장 주의 날개 밑에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생각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표상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날개를 가진 피조물들을 볼 때에 저절로 그들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비유적 표현을 발견하고 환호성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경이 그렇게 말씀해 주고 계시며, 그런 표현에 익숙해진 것이고 모든 헌신적인 신자는 곧 이 이러한 비유가 자신의 마음을 감싸주며 정신을 풍요롭게 해 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 속에서 우리는 이것을 아주 쉽게 이해한다. 병아리를 품고 있는 암탉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비유이다. 그 비유는 모든 사람을 그 모습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으로 감동시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

제 14장 하나님은 나의 태양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 특히 딸 아이에 대해서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는 우리 집과 우리 생활에 있어 태양과 같다’’고 종종 말 할때가 있다. 그러나 특히, 걱정 근심거리가 있을 때에 가정을 환하고 밝은 분위기로 이끄는 작은 태양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아무리 기뻐한다 할지라도 시편 기자가 자신의 인생길의 태양이신 여호와 안에서 즐거워하며 모든 세대의 성도들의 귀에 “나의 삶의 태양은 나의 주님이십니다’’라는 노래를 들려주었을 때의 감격과는 도저히 비교가 안된다. 우리 서구인들은 성경 시편 기자의 이 부드럽고 아주 정열적인 말에 좀 더 익숙해져야만 한다. 시편 기자의 노래는 늘 의기를 양양시키며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시 84:11). 이 구절을 읽을 때나 들을 때에 우리는..

제12장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좇아 인간을 지으심

모든 참된 종교, 진실한 신앙심, 실제적 경건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여러분은 젖을 먹는 어린 시절을 지나 단단한 음식을 먹으며 생활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영혼이 영원하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여러분이 하나님 날개 아래 거하기까지는, 하나님께 부탁하고 그분의 계명대로 걷는다 해서 그것 자체로 여러분이 종교적이고 신앙적이고 경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감추어진 모든 분량만큼의 구원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보다 외형적인 종교 형식이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떤 점에서 이 세상에서는 외형적인 형식이 가장 잘 갖춰질 수도 있다. 그러한 것들은 하늘나라에서는 불필요한 것이지만 현재 살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구속력을 발휘하며 ..

제 11장 유일한 것

고독이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때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고독, 유일 -같은 단어임 ' 역주). 이것은 혼자 있는 아이가 무서워 울음을 터뜨릴 때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어른들에게 있어서는 고독을 추구하거나 피하려는 충동이 어린아이들의 경우보다는 덜 명백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상대방의 성격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능한 한 분주한 주위 환경에서 벗어나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는 우울하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 다시 활기를 되찾는 것이다. 이것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우리의 마음이 선과 악의 교차로에 서서 선택을 하는데서 기인된다. 사람이 나쁜 짓을 하려 할 때는 자신을 감추고 숨긴다. 악이란 어둠 속에..

제10장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옛날에 연세가 높으시고 신앙이 좋으신 분이 평화스러운 얼굴 표정을 하고 자신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경로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일은 흔하였다. 그때는 그러그러한 때에 “나는 주님을 알게 되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이러한 표현이 변하였다. 즉 사람들은 “이러 이러한 방식으로 깨달았다” 또는 “나는 그때 거기서 회심하게 되었다" 아니면 “그때에 나는 나의 영혼을 예수님께 맡겼다” 또는 ‘‘이리하여 나는 냐의 구세주를 발견하게 되었다",등 자신의 영혼 속에서 일어났던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스스로 선택한 어휘를 사용했다. 이러한 모든 표현 방식들은 각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나는 주님을 알게 되었다’’라는 옛날식 표현 방법이 결코 후시대의 표현들보다..

제9장 나를 부르짖으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응답이 없다! 우리가 꽉 닫힌 문 앞에서 있을 때 문이 열리지 않아 우리로 하여금 걱정하게끔 한다. 그때 우리는 점점 더 세게 두드린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더 큰 소리로 부른다.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대답하는 음성도 나지 않으면, 우리가 방안에 틀림없이 있으리라 알고 있는 어린 아이, 또는 아마도 형제에게 불길한 일이 일어났으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반응이 없다! 우리가 아주 곤란한 때에 도움을 청하고 기다렸으나 여전히 회답이 오지 않을 때에 너무 자주 희망이 변하여 절망에 빠지게 된다. 회답을 받지 못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녀나 형제에 대해 궁금해서 소식을 알고자 편지를 쓰고 또 썼으나 소식이 오지 않아 전보의 반신료를 선불하나 여전히 회신이 오지 않는 때에 아주 불안하다. 응답을..

제8장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나의 창조주 하나님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나의 창조주 하나님 우리 인생에 있어서 밤은 신비이며 미지의 문제로 남겨져 있다. 수세기에 걸쳐서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 잠이란 7, 8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삶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 잠시 삶에서 뒤로 물러 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베개를 베고 누운 후 곧 잠이 들어 다른 세계로 가버린다. 그러다가 시계 바늘이 깨어날 시간을 가리키면 일어나서 다시 생활을 시작한다. 기껏해야 사람들은 이따금 자면서 꾼 꿈을 기억할 뿐이고 나머지는 전혀 공백 상태인 것이다. 무의식 속에 빠진 재로 보낸 7시간은 홀러가 버리고 그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두 시간, 기껏해야 세 시간 정도에 불과한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인생의 삼분의 일은 지나가 버린다. 서른 살이 된 사람은 실제로 이십년 밖에 살..

제7장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이나 자신의 내적 존재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지식은 그것의 출처에 따라서 다르다. 그것의 일부분은 스스로 얻은 것이고 또 일부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만일 이 두 가지 자신에 관한 지식이 어떤 점에서 다른가 의문이 나면 이 차이점을 상기하라. 여러분은 부지런히 자신 안에 있는 선에 관한 지식을 획득한다. 이에 반하여 여러분 속에 있는 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억나게 하시고 지적하신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어린아이에게서 본다. 일반적으로 어린아이는 남에게서 받은 칭찬은 쉽게 받아들이고 달콤하게 간직한다. 그러나 그가 잘못을 지적받게 될 경우 은밀해지긴 하나 불쾌하게 여기며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지 않고 꾸지람을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그의 양심이 하나님에게서 ..

제6장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주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과거에는 사람들이 소리 자체는 목에서 나오며 그 힘은 제한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까운 거리에서만 들을 수 있지 먼 거리까지는 들리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말하고자 원하지만 통화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 줄 말이 있으면 심부름꾼을 보냈다. 그리고 좀 더 후에 위대한 글자의 발명이 있은 뒤로는 서신이 전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이 모든 것이 변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우리 목 자체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단지 공기 중에 진동을 만들어 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공기의 진동이 듣는 사람의 귀 속에서 진동을 받아들이는, 예술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에 도달..

5장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실 때(2)

이것이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소생시킨다. 그는 선지자적 담대함을 가지고 주님께서 다시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는 날이 올 것을 예견하고 이 생각에 힘을 얻어 선포한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시 102:17). 그는 사실상 여전히 주님께서 그 백성의 간구를 들어 주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훗날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간구를 들어 주시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편 기자는 하나님 자신에게서부터 인간의 소원에 반대하여 일어나는 다른 의견들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여러분은 스스로 다윗의 의견과 전혀 다른,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훨씬 더 지지하는가? 그러나 다윗보다 더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