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사랑하는 자녀, 특히 딸 아이에 대해서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는 우리 집과 우리 생활에 있어 태양과 같다’’고 종종 말 할때가 있다. 그러나 특히, 걱정 근심거리가 있을 때에 가정을 환하고 밝은 분위기로 이끄는 작은 태양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아무리 기뻐한다 할지라도 시편 기자가 자신의 인생길의 태양이신 여호와 안에서 즐거워하며 모든 세대의 성도들의 귀에 “나의 삶의 태양은 나의 주님이십니다’’라는 노래를 들려주었을 때의 감격과는 도저히 비교가 안된다.
우리 서구인들은 성경 시편 기자의 이 부드럽고 아주 정열적인 말에 좀 더 익숙해져야만 한다. 시편 기자의 노래는 늘 의기를 양양시키며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시 84:11). 이 구절을 읽을 때나 들을 때에 우리는 항상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자신들로부터 우리에게 이른 것은 아니다. 빈부를 막론하고 세계 각 곳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주요 대화는 해같은 자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일찍이 누군가가 자신의 깊은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 “나의 하나님은 나의 평생에 내게 태양이셨으며 또한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들은 바 있을 것이다.
해에 대한 비유가 여전히 사용되는데 가급적 교리적인 점에서 사용되며 그것도 ”의로운 해(Sun of Righteousness)"라는 제한된 의미 안에서만 사용되어 있다. 의로움을 강조하느라 해가 지니 풍부한 비유적 표현이 희생된 것이다. 그러나 태양에 대한 이 호사스러운 비유적 표현은 탁월한 부요를 내포한다. 그것은 단순한 비교가 아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이 실제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생애의 태양이시란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 복된 지식은 여러분을 하나님께 가까이 이끌어 주며, 전체적 삶에 광채를 던져 주고, 여러분이 딱딱한 추상 개념들에서 벗어나서 실제적인 신앙 지식을 얻게끔 해주는 보물인 것이다.
사실상 동방에 살았던 시편 기자가 쳐다보았던 태양과 우리 서구인들이 보는 태양은 다르다. 동방에서는 하늘이 빛나는 광재를 가지고 붉게 타오르며 반짝 이는데 서구인은 그 찬란함을 멀리서 짐작할 수가 없다. 아브라함이 이사하기까지 살던 땅과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셨던 땅을 환히 비쳐주는 하늘과 비교해 볼 때에 우리의 하늘은 어슴프레한 빛에 둘러싸인 듯이 보인다. 목자들이 밤에 보았던, 베들레헴 땅 위를 비춰 주는 하늘은 말하자면 천군 천사들이 내려와 예수님을 환영하기 위해 예비된 곳 이었다. 거기에서 별들은 자신들의 신비한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눈을 황홀케 했으며 달은 황홀한 활기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워 주었다. 그러한 나라에서 시편 기자는 태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읊조렸던 것이다. "해는 하늘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시 19:6).
만일 그때에 거기 이해할 수 있는 우상 숭배가 있었다면 그것은 형상들이나 정령들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해가 떠오르는 찬란한 그 동방지역에서, 옮겨 다니며 사는 유목인들은 밤에는 별들을 쳐다보고 낮에는 눈이 부셔서 쳐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밝은 태양을 보면서 고요한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주 감탄한 나머지, 훌륭하고 위엄 있고 온누리에 퍼지며 모든 것을 지배하는 태양이 단순한 천제가 아니라 심지어는 하나님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태양을 신으로 숭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시편 기자가 이런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고쳐 주었다. 하늘에 떠 있는 해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태양, 심지어 내 일생의 태양이신 것이다. 해는 자연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허무함 중에 무슨 역할을 해주는가 하는 영광스럽고 풍요로운 상상을 하게끔 해주기 위해 하나님 자신이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을 해와 비교하는 것이 우리에게 신기한 일은 못된다. 우리는 태양을 어떤 신의 형상으로 숭배의 대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은 자연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미치시는 영향력에 대한 상징인 것이다. 하나님 자신은 그 태양 안에서, 그리고 우리 존재의 모든 주변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사역들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전력을 다하여서 추구한 하나님의 덕들에 관한 분석적인 연구들과 그분의 섭리에 대한 추론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마침내 빈약하나 독특한 결론을 내렸으나 그분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리고 다시 회복할 수도 없는 상태에 놓여 있을 때에 마치 갑자기 더 고상한 삶의 빛이 여러분의 모든 내적 존재에 비추어져 여러분은 기뻐하며 모든 깨달은 진리를 "하나님은 나의 태양이시며 나의 인생의 해이다”라는 한마디로 요약해 버린 것과 같다.
하나님을 해로 비유하는 상상은 특히 햇빛이 온 세상 곳곳에 스며들듯이 하나님의 숨겨져 있는 능력이 우리의 내적 자아에 스며드는 것을 우리가 눈으로 분명하고 명백히 볼 수 있을 때에 특히 효과적이다. 태양은 여러분의 머리 위에 떠 있지만 또한 여러분의 오른쪽에도 있고 여러분의 주위에도 있다. 여러분은 해를 느낄 수도 있고 다루기도 한다. 여러분은 그늘에서 그것을 피하기도 하며 방에 차일을 드리워 해가 비치는 것을 차단시키기도 한다. 태양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까이 있는 힘인 것이다. 여러분은 태양의 이러한 능력과 사역에 대해서 알고 있다. 태양은 지면 즉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깊은 지하까지 내리비추어서 거기에 뿌려진 씨앗으로하여금 싹이 트고 잎이 나게끔 해 준다.
그리고 똑같은 작용과 대조가 하나님에게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아주 높은 곳에 있는 하늘에 보좌를 가지고 계시면서도 모든 곳에 편재하고 계시므로 여러분 곁에, 또 여러분 둘레에도 계신다. 그리고 여러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셔서 심령 깊은 곳을 가득 채우시며 여러분 속에서 보이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서 사역하신다. 만일 거룩한 씨가 여러분에게서 싹이 트거나 여러분 영혼 줄기 위에 거룩한 꽃봉오리가 맺혀질 경우, 능력있게 여러분 속에서 그와 같이 일한 분은 바로 여러분의 태양인 하나님 자신이시다.
잠시 해가 이 땅 위에서 떠나 버려 마치 여러분 주위에 있는 자연이 북극 지방과 같은 상태에 이르렀다고 가정해 보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어 버리고 모든 식물과 풀의 빛깔은 어스레하게 되고 사면은 눈과 얼음으로 된 커다란 장막으로 덮여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해가 떠오르면 상황이 다르다. 만물이 소생하고 맥이 뛰게 되며, 색깔과 홍조를 띠게 된다. 땅에서 식물이 자라나며 꽃받침이 꽃을 받쳐주며 하늘을 향한다. 따뜻한 온정이 자연 온 누리, 전 삶의 영역에서 숨쉬게 되는 것은 오직 태양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태양은 활력과 온기를 내뿜으며 신비한 힘에 의하여 죽음에서 생명을 불러일으키며 황량한 광야를 비옥한 옥토로 바꾸어 준다.
여러분의 영혼과 하나님의 경우에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잠깐 동안 영혼의 태양인 하나님의 은혜로운 내적 비침과 사역이 영혼 안에서 중단되었다고 가정해 보라. 여러분 마음은 마치 생명이 여러분에게서 떠나 버린 것 같을 것이다. 모든 햇빛과 온기가 사라져 버리고 얼음 같은 냉기가 여러분의 영혼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 것이다. 마음의 정원에 단 한 송이의 꽃도 피지 않으며 영혼 안에서 더 이상 거룩한 동작이 일어나지 않고 여러분의 마음은 더 이상 감정을 가지지 않게 되고 말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님을 깨닫고 감격한 나머지 다음과 같은 식으로 고백했다. "오, 삶의 원천이 되시는 주와 같이’’ "당신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나이다’’ 뛸 듯이 기뻐하면서 “하나님은 나의 태양" 등으로 표현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내 영혼에 생명이 있고, 하나님이 안 계시면 내 영혼이 죽은 것이다. 그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생명과 능력과 활기를 얻는다. 태양으로 하여금 온 우주 만물 위에 빛과 열로 내리비추며 유익을 주게끔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우리 마음 그리고 우리의 모든 존재를 풍성하게 하신다. 그분과 더불어 나는 넘치도록 부요하고 은혜로우며 지극히 행복하다. 그러나 그분이 없으면 나는 가난하고 텅 비고 냉랭해진다.
그러나 더 언급할 것이 있다. 태양은 자신의 열기에 의해서 생명을 품어 줄 뿐만 아니라 또 한 착색시켜 주며 자신의 빛의 광채에 의해서 그것을 나타낸다. 밤에 어두움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만물은 흐린 회색으로 되었다가 마침내 검게 될 정도로 흐릿하고 몽롱한 색을 띠다가 해가 돋아 온누리에 환하게 비치면 사물의 크기를 볼 수 있게 된다. 거리를 측정하고 형태와 색 배합과 색깔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태양의 광채를 받은 자연은 여러분의 마음에 명백히 이야기한다.
여러분의 태양인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의 내적 생명 속에서 사역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어두워진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여러분의 삶은 단지 거무칙칙한 것에 불과 하다. 출발점과 나가는 방향과 목표를 상실한 허무한 삶인 것이다. 그때에 모든 지식과 통찰력은 사라진다. 앞으로 나아갈 용기나 끝까지 달려갈 격려의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즐겁고 다정한 사귐, 지식, 자아의식 또는 색깔이나 형태가 없이 장님이 벽을 더듬는 것 같고 속에 꼭 감금된 것과 같은 삶이다. 잡초가 무성하며 뱀이 몰래 기어 다니는가 하면 밤새 비명으로 깜짝 놀라게 하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 것과 같은 생활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안개를 물러가게 하시고 태양이 다시 여러분의 영혼 속에 떠오르면 모든 것은 거룩한 아론의 싹 난 지팡이에 의한 것처럼 일변하게 된다. 빛이 여러분의 내적 어두움을 내어 쫓는다. 평화가 온유한 방법으로 여러분의 정신에서 내리누르는 억압을 물러가게 한다. 그때에 여러분은 하나님 얼굴의 빛에 의해, 똑똑하게 보면서 용감히 인생길을 걸어간다. 그때에 영혼의 태양은 높이 떠서 여러분의 심령을 기쁘고 성스럽게 해 준다. 하나님을 태양에 비유한 상상력은 심령 위에 비치시는 하나님의 빛이 때를 따라 비추이는 데서 또한 의미를 갖는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겨울이 되듯이 하나님의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과 뚜렷하게 의식적인 교계를 가지므로 말하자면 시시 때때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때가 있는 반면에,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난처한 일들과 영혼에 파고드는 괴로움, 심령에 부담감을 주는 근심거리로 꽉찬 때도 있는것이다. 영적인 삶에도 낮과 밤이 교차되는 것 같은 변화가 있다. 그리고 하루 24시간 중에서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는 시간은 단지 자기가 잠들은 시간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가 뜨고 지는 문제는 별도로 하고, 매일 해가 떠 있을 때도 가까이 비칠 때가 있는가 하면 멀리 비칠 때도 있듯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늘 나눌 때도 마찬가지이다. 즉 하나님의 태양의 빛이 우리 심령 위에서 뒤로 물러가서 비칠 때와 또 한 다시 가까이서 비칠 때가 있어 영혼의 삶에는 여름과 겨울이 서로 뒤바뀐다.
이 땅 위에서는 은혜스럽고 중단됨이 없으며 늘 똑같은 친밀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러한 교재는 단지 영원무궁한 빛이 비치는 하늘나라 궁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땅에서는 늘 변화와 전환이 있어 왔고 항상 그럴 것이다. 어떤 해(年)에는 다른 해(年)보다 훨씬 더 많은 수확을 거둔다. 그것을 통해서 좀 더 높은 차원의 안목을 갖게 되는 난제들과 수주간 또는 수개월 동안 어두침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시험들이, 말하자면 영혼의 얼음층밑에 덮어져 있는것이다.
그때에는 해가 없어진 것이 아니고 두꺼운 구름층이 가로막혀 햇빛이 퍼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태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되면 점점 구름이 걷혀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진다. 다시 영혼에 봄이 돌아온 것이다 그 봄은 영광스러운 여름의 전조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봄과 여름의 기쁨을 더욱 풍성히 맛보게 해 준, 영적 겨울의 파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과 태양과의 비교에서 절대로 지나치지 못할 특성이 남아 있다. 자연계에서 똑같은 태양열이 땅 위에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양은 땅을 따뜻하게 해주고 품어 줌으로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한다. 반면에, 태양은 흙덩이를 굳어지게 하고 말리는가 하면 잎사귀를 태우고 꽃을 시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양심에 대한 하나님의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인생의 태양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절대로 남용되지 않는다. 심령이 굳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인데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고 또한 지금은 우리에게도 빈번히 그런 일이 찾아 오는 것이다. 이 굳어짐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위에 퍼지는 열기가 우리를 부드럽게 하고 내적으로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나오는 반항에 내쫓겨진 것으로 우리의 외적인 신앙생활을 공격하며 태워 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영벌에 처해질 용서받지 못할 마음의 굳어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이 이 경건한 명상록을 볼 리는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또한 무섭게 저항하는 동안 우리의 영적 생명의 과정을 지체시켜 버릴 일시적인 마음의 굳어짐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사랑 그리고 그분이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서 일시적인 태움, 굳어집 그리고 시들음이 찾아 올 때가 수없이 많은 것이다.
그때에 우리가 경직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회개 기도를 드리지 않으며,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것으로부터 한 발자욱도 떼지 않으며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우리가 감각적인 생활, 가정적인 생활 또는 공중생활이나 교회 생활에서 마음을 굳힌 채로 하나님의 은혜를 즐기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해서 이렇게 살아가고 태양은 계속 내리 쬐이되 심지어 어떤 때는 너무나 강렬하게 내리비침으로 마침내 우리 영혼의 뿌리를 찾아 볼 수 없으며 하나님 자신의 은혜의 열로 우리를 굳어 버리게 한다는 것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본질상 있을 수도 없으며, 그와 같은 일은 생각해 볼 수도 없는 말인 것이다
‘‘주여 당신은 내 삶의 태양이십니다" 이것은 우리를 영생으로 이끄시는 영광스러운 말이다, 그러나 어떤 때 이 말이 우리에게 불리한 증거를 되지 않게끔 조심하라. 왜냐하면 “다시금 지고 떠오르는 것” 역시 여기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출처 자기부인 / 글쓴이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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