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카이퍼

제 11장 유일한 것

새벽지기1 2021. 8. 15. 07:28

고독이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때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고독, 유일 -같은 단어임 ' 역주). 
이것은 혼자 있는 아이가 무서워 울음을 터뜨릴 때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어른들에게 있어서는 고독을 추구하거나 피하려는 충동이 어린아이들의 경우보다는 덜 명백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상대방의 성격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능한 한 분주한 주위 환경에서 벗어나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는 우울하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 다시 활기를 되찾는 것이다. 
 

이것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우리의 마음이 선과 악의 교차로에 서서 선택을 하는데서 기인된다. 사람이 나쁜 짓을 하려 할 때는 자신을 감추고 숨긴다. 악이란 어둠 속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악행이 끝나고 양심이 살아나면, 고독이 엄습해 오고 다른 사람들과의 사뀜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게 된다. 

덜 현저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독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성질은 그 자체가 좀 더 명상적인가 혹은 좀더 활동적인 경향이 있는가 하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보다 내향적으로 생활하며 깊이 생각하고 숙고하며 느낀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외향적으로 생활하며 바삐 움직이며 고되게 일하여 자신의 활동상항들을 나타내 보이기를 좋아한다. 민족들 중에서 조차도 이러한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어떤 민족은 옥내에서 생활하지만 또 다른 민족은 가능한 한 바깥에서 생활하기를 즐긴다. 그런데 차이는 주로 기후나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말미암는다. 

그리고 셋째, 이러한 고독을 추구하거나 피하는 이유는 고독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수줍음을 타고 남 앞에서 거북함을 느끼며 속으로 겁을 잘 내는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다른 사람과의 사뀜을 두려워한다. 그리고는 기를 펴지 못한 채 뒤로 물러간다. 반면 명랑하고 원기 왕성하고 용감한 사람은 어떠한 종류의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융화 되어지낸다.

고독에는 이것 이상의 것이 있다. 즉 고독은 학문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다. 또 고독은 한창 때에 젊은이들 보다는 노인의 마음에 끼어든다. 약해진 신경조직과 연약한 건강으로 인해 노인들은 너무 큰 자극을 피해 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은 우연한 것이며 성격에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과 관련하여 뚜렷한 사실은 시편 기자는 두 번씩이나 그의 영혼에 대해 “유일한 것”이라불렀다는 것이다. 한번은 주님의 골고다 언덕의 사건을 예언적으로 읊은 시, 즉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22:20), 그리고 또 한 번은 시편 35편 17절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에서 말이다. 

여러분의 영혼은 여러분의 유일한 것(solitary one)이다. 이 말은 영혼의 귀중함을 냐타내 준다. 오직 한명의 자녀를 가진 부모들에게 있어서, 한 자녀는 다른 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일곱 아이들 보다 더 귀중한 것이다. 만일 이 독자가 사망하면 한 가문의 1대가 없어지는 것이며 부모들의 혈통은 끊겨지고 만다.

인간 영혼에 대해 말하자면, 여러분의 영혼은 여러분 자신의 재산이나 육체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여러분의 재산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그 재산이 없어졌을 경우 다른 물건들로 대신 보충할 수 있다. 비록 여러분의 육신이 언젠가는 무덤에 장사지내 지나 곧 여러분은 영화로운 육신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의 영혼온 그렇지 않다. 여러분의 영혼은 여러분 자신의 유일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으로 대치될 수 없다. 만일 잃어버리게 되면 영원히 다시 얻을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진지하게 경고하신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녹 12:4, 5) 
 
다른 모든 것들은 잃었을 경우 더 좋은 것으로 보충 받을 수 있으나 "여러분의 유일한 것”은 한 번 잃으면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아에 관한 의식은 자신의 영혼과 분리된다. 스스로를 관찰하고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 생각하고 여러분 주위에 빙 둘러진 바쁘고 활동적인 세상을 발견하며, 성장해가며 활동하거나 아니면 병들어 수척해 있는, 눈에 보이는 쇠퇴해 가는 육신을 입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 속에 숨겨진 내적 존재, 감추어진 어떤 것 즉 ‘‘유일한 것"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곧 여러분의 속에 있는 영혼인데 이 영혼을 사랑해야만 하며, 죽음에 봉착할 때 영광과 거룩함으로써 여러분의 영혼이 하나님께 되돌아 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하나님, 오직 그 분에게서만 그것을 받았기 때문인 것이다. 

여기에서 당신속에 있는 영혼은 홀로 거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여러분의 영혼은 세상에 접근할 수 있고 세상온 여러분의 영혼에 가까이 올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감각들을 주셨는데 그것은 아주 많은 창문들처럼 여러분으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과 이야기하게 해 준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감정과 동정심을 주셨는데 그것에 의해 여러분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공감을 하고 그들과 더불어 즐거워하며 그들의 슬픔을 같이 슬퍼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말하는 은사를 주셨으므로 여러분의 영혼은 은사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며 다른 사람의 영혼은 여러분의 귀에 이야기할 수 있다. 사람의 말이 글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 훌륭한 창안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여러분 영혼은 앞선 시대의 사람들 또는 여러분이 전혀 직접 만나 본 일이 없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더 높은 세상에 관한 의식과 지식을 적지 않게 갖고 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천사들이 여러분 위에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속에 영혼을 향해 열려져 있는 문을 가지고 있다. 그 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영혼에 들어오시고 여러분의 영혼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영혼은 세상, 자연, 천사들, 그리고 하나님과 다른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영혼이 독단적으로 취급되면 그것은 여러분의 유일한 것이다. 그것은 순수하고 유일한 어떤 것이며 또한 순수하고 유일한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으며 결코 파괴될 수 없는 면에서 그 자체로 남아 있다. 여기서 둘 중 한가지가 발생한다. 즉 영혼이 너무나 외롭든지 여러분 자신이 영혼의 고립성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든지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자신을 격려해 주고 우정을 나누던 것을 잃어버릴 때에 영혼은 여러분 속에서 너무나 외로운 것이다. 이것은 슬픔과 버림받았다는데 대한 외로움이며, 그것은 영혼을 억압하고 두렵게 만든다. 여러분의 영혼은 동정, 교제, 신뢰감을 주고받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평화와 행복이 있는 곳에서 활짝 펴지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 그렇지 못하고, 애정과 동정심이 여러분의 기분 전환을 해 주어야만 할 곳에서 미움이 여러분에게 저항해 오고 중상모략이 여러분을 괴롭힐 때에, 수줍고 움찔해진 당신의 영혼은 자신 속으로 도로 뒷걸음질 치고 만다. 영혼은 고민을 풀어 놓을 수도 없고 느끼는 바를 표현할 수도 없다. 안에 갇혀 슬픔과 비탄으로 수척해 가고 만다. 

또는 인생의 즐거움이 날아가 버리고 염려가 엄습해 오고 슬픈 일이 겹치는가 하면 전망이 어두워지고 희망의 별이 짙은 먹 구름 뒤로 사라져 버리면, 그때 영혼은 침울한 고립 상태에 빠져 뒤로 물러가서 하늘에 좋은 칭조가 떠오르기를 열망하게 된다. 반면 사탄은 때때로 파멸의 징조를 보이며 몰래 접근해 온다. 
 

그러나 영혼이 너무 큰 외로움에 의해 번민하며 우울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고독함의 의미를 충분히 깨닫지 못할 때 역시 손실을 입게 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을 저버린 천박하고 생각이 모자란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결과인 것이다. 그때에 영혼은 자신의 외로움 가운데서 영혼의 유일성을 이해 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는 기분전환과 오락을 추구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거나, 조용한 사고를 위해서 영혼을 집중시키거나, 영혼 자체를 위해서 영혼을 추구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이 말이다. 반면 영혼 자체는 항상 괴로움을 당하고 주위 환경의 노예가 되며 안식, 내적 평화와 자아를 검토할 겨를이 없게 된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이 두 방향으로 나가고 있음을 안다. 한편으로는 비참하고 절망해 있는 사람은 내적 고독으로 말미암아서 한탄하며 지낸다. 반면에 즐거운 듯하며 늘 분주하고 서두르며 자아를 내세우는 우리들은 결코 고독을 찾거나 자신의 고독한 영혼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다. 너무나 심각하게 고독에 빠져 있거나 영혼의 고독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한 사람들에 반하여, 오직 한가지의 치료법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고독한 영혼이 우리 하나님과 교제를 하게 되는 일인 것이다.

 

우리 영혼 속에는 지성소와 성소 그리고 성전 안뜰과 같은 영역들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영혼의 뜰 안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혼의 더 깊은 비밀스러운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친하고 영적인 친구들은 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 주변에 개인적으로 사뀜을 갖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우리를 보다 잘 이해하고 더 자세히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훨씬 더 친밀하며 우리를 잘 보살피고 위로해 준다. 그들은 우리 영혼의 성소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들이라 할지라도 우리 영혼의 지성소까지 들어 오지는 않는다. 지성소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으므로 그들은 거기에 들어 올 수 없다. 영혼은 그곳에 아주 외롭게 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성소,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은거지에 들어오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오직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만이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만이 홀로 영혼의 외로움을 물리치시고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그를 위로하시며, 세상적인 관심사들과 쾌락에 오염되어 있는 그의 영혼을 구하실수 있는 것이다. 

출처 자기부인 / 글쓴이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