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카이퍼 75

제 44장 둘째도 그와 같다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자연의 휘장 뒤에 숨어계신다. 그러나 그 휘장의 주름이 굽이치고 흔들리는 움직임을 통해서 우리는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 가까이에 계심을 인식한다. 자연에서 우리 눈앞에 살아있고 중얼거리며 맥박이 뛰고 움직이는 모든 것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의 약동을 느낀다. 성경은 자연을 결코 죽어 있는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온갖 방식으로 자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고,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땅이 떨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격노하시어 땅의 기초를 흔드시기 때문이다. 어두워진 창공에서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고 내려오신다." 회오리바람 속에서 ‘‘하나님이 그룹을 타고 나셨다." "물의 깊은 심연이’’ 거품을 일으킬 때, 그것을 ..

제 43장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어디로부터 오는가라는, 예로부터 내려 온 질문에 대해 그리스도의 교회는 두 가지로 답해 왔다. 그 지식은 자연으로부터 고리고 성경으로부터 온다고 했다. 이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리키는데, 추상적인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고, 그러므로 교회의 신조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지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영적 경험을 통해,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 그리고 은밀히 하나님과 동행하는데서 개인적으로 오는,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지식은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에 밖에서 오는, 하나님을 아는 이 최초의 지식에는 위엄이 있다. 지금은 자연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만을 살펴보자. 한 신앙고백서에서 선언하듯이, 우리 주변의 전 창조계는, 개별적인 피조물 하나하나가 글자로 쓰인 생생한 책..

제42장 네 힘을 다하여(2)

첫번째 저술에서 그는 성서와 기독교를 비판하는데, 성서가 신에게서 온 책이라면 인간이 쓴 책보다 더 정확하고 더 잘 쓰여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사람마다 상이하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로 인해 성서는 삶의 안내서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기독교를 비판함에 있어 기독교의 이적(異蹟)을 이교도의 설화와 비교함으로써 그 신뢰성을 약화하는 고전적 방법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처녀잉태설을 우주에 의해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태어난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샴족(Siamese)의 설화와 비교함으로써 기독교를 한낱 미산으로 격하하고 있다. 그는 또한 반성직주의를 표방했고, 성서에 나오는 모든 기적과 계시 그리고 예언을 오리게네스 같은 초대 기독교 사상가들처럼 비유적으..

제 41장 네 힘을 다하여

이 각박한 사회생활에서 아직 선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랑에 대해서 피상적인 얼버무림을 하거나 흥분해서 거만을 떠는 것처럼 기독교인을 성나게 하는 것은 없다. 하늘과 땅에서 가장 고귀한 것을 취급함에 있어서, 불신앙적인 그룹이나 절반쯤 믿는 그룹에서, 그것도 특히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해방된 여성들이, 점차적으로 복음적 신앙고백에 항거하기 위해서 몇 번이고 고귀한 사랑의 이상을 남용하는 것을 들었을 때엔 더욱 그러하다. 그때에 사랑은 종교의 전부라고 일컬어진다. 아무것도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다. 구약은 아주 무자비스럽다. 잘못한 사람들을 징계하는 바울은 때때로 너무나 가혹하게 보이지만 고린도전서 13장에 있는 사랑의 찬가만은 인기를 끄는 것이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 한 사람만이 흠모할 만한 대상이다. ..

제 40장 네 뜻을 다하여

여러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 만을 위해 존재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최고의 사랑의 대상이 되시고, 여러분의 모든 존재가 하나님께로 향한 사랑속에 몰입하게 하기 위하여 다른 것은 포기하려는 것인가? 마음에 의해 사랑이 누려지고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위한 사랑이 표현된디. 이것을 위해 여러분은 마음이라는 귀중한 도구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사용하고, 마음 위에 은혜스러운 사랑을 행사하는 것은 여러분 영혼의 중심에 있는 여러분의 자아인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격은 그곳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안에서 사는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 속에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사랑을 인식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들의 존재, 자아, 인격의 가장 깊은..

제 39장 네 목숨(영혼)을 다하여

만일 네 목숨(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여러분을 괴롭히며 죄책감을 갖게 하고, 이제까지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거의 진전을 하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주님께서 주신 계명에 대해서 보다 큰 관심을 갖고 고려해 보기 바란다. 여러분은 어린 시절부터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알고 있었다. 여러분은 그 구절을 암송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주님이 무조건 옳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분명 하나님께 대한 여러분의 사랑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마음, 목숨, 뜻,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기를 기대하듯이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

제 38장 네 마음을 다하여

사람의 마음보다 더 깊은 곳에 영혼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피실 때에는 마음뿐만 아니라 더 깊은 폐부까지도 살피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것에 대하여 ‘사람의 심장(our hea rt and our reins)을 감찰하시는 여호와'(렘 11:20)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사람들도 아주 긴장한 상태에서는 때때로 마음이 전부가 아니며 마음을 통과하면 가장 중앙에 있는 자아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요나단의 경우를 보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다윗은 의분하여 그와 그의 집에 충성을 다해 온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찾아온다. 그때에 요나단은 "네 영혼(역주 : 한글 개역본에는 마음이라 번역되어 있으나 영어 성경에는 thy soul로 나옴)의 소원이 무엇이든..

제 37장 다하여 (With all)

오늘날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마음, 목숨, 힘,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차 잊혀져 가고 있다. 적어도 주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뭇사람의 가장 큰 임무인 데 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심지어 신자들 중에서도 둘째 계명을 첫째 계명의 위치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헌신과 열정을 잃어버린 무력한 계명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강단에서 하나님에 대한 고귀한 의무가 강론될 때보다, 이웃을 위해 동정과 아량과 자아 희생을 하라는 설교가 외쳐질 때에 더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은 주종의 전도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제 36장 너는 하나님을마음에 두지 않았다

마음의 깊이가 없는 사람들은 사랑만큼 쉬운 일이 없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본래 자신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조금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데는 종종 어려움이 따른다. 이것은 사랑하려는 의지와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이웃들이 종종 거의 냉정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실제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열 명이라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한 명 밖에 안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말씀하실 때에 형제 사랑에 대한 사랑의 부족보다는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내세우셨다. 그리고..

제 35장 내가 사랑한다

한 젊은이가 자신이 선택한 아가씨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가 자신이 고른 청년에 대해서 느끼는 사랑이, 특히 첫 단계에서는 때때로 너무나 엄청나고 물불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에는 서로 눈을 멀게 할 만한 신비스러운 힘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약혼한 남녀가 늘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게 별나게 신비한 사랑에 도취되는 것은 오히려 예외적인 일이다. 여기서 고려하고자 하는 지나치고 열중케 하는 사랑이 그 안에 죄스럽거나 관능적인 경향, 또는 저속한 육감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지 말자. 여기서 언급하는 사랑의 황홀경은 단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것이며, 영혼과 육체 둘 다를 통해서 일어난다. 우리의 죄 많은 생활에서조차도 육체적 접촉과는 무관하게 이러한 사랑이 잘 이루어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