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카이퍼 75

제 53장 죽을 때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무덤 저편에 있는 것을 아는 것과 관련해서, 죽는 순간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죽거나 다른 사람이 죽는 방식도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에 기여를 한다. 보통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많은 것들이 그때에는 사라진다. 그때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 생명에 들어가는 입구에 선다. 그리고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시 122:2)는 시편 기자의 말은 또한 새 예루살렘의 문으로 들어가는 일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죽는 것은 실제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죽는 것은 하나의 행위이다. 태어날 때 사람은 수동적이다. 그 다음에야 삶이 시작된다. 그러나 끝이 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생을 떠나고 장차 올 생명에 들어가게 하시는 데서 완성의 때에 이르도록 특권을 주셨..

제 52장 하나님이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

하나님과 함께 지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는 사람들의 수가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할 만큼 소수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은밀히 만나는 이 실제적인 생활은 그만 둔 채로 사람들은 기도하고, 교회에 출석하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을 계속할 수가 있다. 사람들이 갖가지 환경과 기회에 수많은 기도를 드리는데, 영혼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께서도 영혼에게 나타나시지 않는 기도를 드린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교회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적도 없고 하나님을 만난 적도 없이 그 일을 되풀이 한다. 성례가 시행되고 설교가 전해지는 가운데, 마음이 하나님의 일들을 대하고 있었을지라도 마음이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 대화를..

제 51장 내가 죄를 주께 인정하나이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하나님의 뜻, 곧 결국에는 죄가 우리를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지식으로 인도하는 수단이 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의 위엄이 우리를 위해 더 밝게 빛나도록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무엇인지 깨닫기 어렵다. 사탄과, 사람으로 죄짓도록 시험하는 사탄의 종자인 마귀들이 이 하나님의 뜻을 악용하고 하나님을 대항하여 죄와 종교를 뒤섞는 일을 할지라도, 그 때문에 이 뜻의 영광이 결코 어두워지지 않는다. 또한 만약에 먼저 사탄이 타락하고 그 뒤에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주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또 다른 길 곧 하나님의 이름과 존재에 대한 훨씬 더 친밀한 지식은 아닐지라도 마찬가지로 깊은 지식으로 우리를 인도할 또 다른 길을 열지 않으셨..

제 50장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또 한 가지 길이 있다. 이것은 매우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길이다. 그 길이란, 죄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두려운 길을 뜻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생각하고 있는 바를 예수님의 이 한 마디가 즉각 설명해 줄 수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바리새인 시몬에게 하신 말씀이다. "사함을 받는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이 말씀으로써 예수님은 두 사람이 마주 대하도록 하신다. 한편에는 나인 성의 가장 명예로운 시민이요 집주인인 시몬이 있고, 다른 편에는 이 작은 성읍에서 공공연한 죄인으로 평판이 아주 나쁜 여자가 있다. 사실 상황이 이러했다. 그 여자는 더 많은 죄를 지었으므로 더 많이 용서함을 받았고, 그 결과..

제 49장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는그릇 행하였더니(계속)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 자녀에게 언제나 더욱 영적인 분이 되신다. 그가 영적 생활의 대가와 의미, 귀중한 가치를 대비를 통해 전보다 더 잘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 안에서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도들 가운데는, 부한 중에도 하나님에 대하여 더 부하여지고,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가난한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맡은 재물의 청지기로서만 지낸 사람들이 있어 왔다. 선을 행하려는 추진력이, 자신이 재물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온 예가 드물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영적 지식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슬픔에 압도되어 큰 고통 가운데서 배우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더욱 깊다. 심한 고난은 의기양양한 자만심을 무너뜨린다. 그런 고난을 당할 때 건강이나..

제 49장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는그릇 행하였더니

인생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밀물과 썰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매우 개인적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또한 있다. 그러나 이것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실망과 슬픔이 대체로 영혼으로 하나님을 향하게 하고, 고통은 언제나 사람을 온전케 한다는 이 사상은 경험적인 측면에서 아주 크게 반박된다. 뜻밖에 심각하게 닥치는 큰 재난이나, 역병의 발생, 배를 파선시킬 듯한 폭풍우, 파괴적인 지진, 또한 개인적인 병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죽음의 위협은 생각 없이 지내던 세상과 그 세상에 살던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상관해야 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한동안 마음을 쓰게 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위험이 지나고 나면, 받았던 약한 인상이 사라지는데 불과 며칠 걸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역병으로부터 구출을 받고나면, ..

제 48장 높은데 거하며 땅의 것들을보는자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사람이 하나님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모른다면 거기에도 죄가 있는 것이다. 때로 이 점이 슬프게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거나 함께 기도할 때 분명하게 나타나고, "주님을"(thee)과 “주님이"(thou) 라는 말 대신에 "당신"(you)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서 바로 나타난다. 이 사실에 너무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도 여전히 인사말에 두 가지 형태, 곧 좀 더 일반적인 형태와 좀 더 관습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좀 더 친밀한 형태를 사용하는 것이 언제나 변하지 않는 습관이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예전에, 네덜란드 아이는 아버지에게 당신(you), 당신 의(your) 라는 말..

제47장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지금까지 여러분이 모르고 있는 어떤 사람이 혹은 알고는 있지만 존칭을 쓰던 사람이 그냥 편하게 이름을 부르라고 하면, 그 즉시 사회적인 교제에 놀라운 친밀감이 생긴다. 성을 떼고 대선 세례명을 쓰면 여러분은 훨씬 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이런 변화를 모른다. 어린아이들은 커서 신발을 못 신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유아기의 습관을 버리고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 자신들이 좀 더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형태의 예의를 차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후에, 좀 더 친밀하게 알고 지내는 것이 우정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든지 아니면 연합해서 공동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거리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든지 간에 직함을 떼고 처음으로 서로를 이름으로 부를 때 우리는 서로 가까워졌..

제 46장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지적 훈련의 산물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여러분 영혼이 내적으로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에서 출발점을 찾을 때에만 진실한 것이 된다. 여기서는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일어난 접촉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온다.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빛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자신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발견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나가는 작용들에 의해 하나님의 존재를 정말로 느끼지 않는 한,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가질 수 없다. 물론, 이 지식은 접촉하는 감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영적이고 직접적인 인식에 의해서 알 수 있다. 그래서 추론에 의해서나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의해서 알 수 없고,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은 크시다..

제 45장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신다. 그러나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서 점점 더 분명하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휘장 뒤에서 그리고 그 휘장을 통해서 희미하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사람 속에서 좀 더 뚜렷하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골 1:15) 그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지극히 선명하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의 초상이 아니라 형상이다. 조각된 것은 선과 색조로 그린 것보다 훨씬 더 실물을 잘 전달한다. 형상은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대리석이나 쇠로 만든 형상은 부피 형태로 실물을 흉내낸다. 연필이나 붓으로 그린 초상화는 차갑고 딱딱한 대리석이 표현하지 못하는 생명의 온기, 영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