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신다. 그러나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서 점점 더 분명하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휘장 뒤에서 그리고 그 휘장을 통해서 희미하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사람 속에서 좀 더 뚜렷하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골 1:15) 그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지극히 선명하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의 초상이 아니라 형상이다. 조각된 것은 선과 색조로 그린 것보다 훨씬 더 실물을 잘 전달한다. 형상은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대리석이나 쇠로 만든 형상은 부피 형태로 실물을 흉내낸다. 연필이나 붓으로 그린 초상화는 차갑고 딱딱한 대리석이 표현하지 못하는 생명의 온기, 영혼의 불꽃, 표정의 변화를 전하지만 형상은 더 실물 같고 손으로 만져서 느낄 수 있음으로 인해 더욱 인상적이고 더욱 강력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초상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 표현에 모든 종교적 활동의 중심이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사람에게 주시고, 사람은 그 형상을 타락시킨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기를 원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려는 이 욕망은 극악한 죄이다. 그리고 짐승이요 죄의 사람이며 적그리스도인 사탄이 스스로 형상을 세우고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하는 경배를 하라고 요구할 때, 이 죄가 가장 극단에 이른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인 사람에게서 자신을 계시하신 이 사실을 비유나 온유적인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현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빌립에게 이같이 말씀하셨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14:9).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그리스도를 계신 그대로 볼 것이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를 보는데서 하나님을 친히 얼굴과 얼굴을 대하듯이 볼 것이라는 영광스런 소망이 이 사실에서 나온다. 그리스도를 볼 때, 그리스도 뒤에 그리고 그리스도와 나란히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다.
죄는 죄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래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훼손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 단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온전한 형상을 완벽하게 보여주신다. 이것이 인간 본성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영원부터 성자께서 성부의 형상이셨기 때문이고, 이 형상의 그림자로서 인간 본성이 땅의 티끌로부터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에 만족하는 사람은 자연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낙담한다. 혹은 영적 존재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에 만족하는 사람은 사람이 죄로 죽어 하냐님을 아는 참 지식에 이를 수 없고, 우상 숭배와 거짓 교훈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낙담한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여전히 우리의 신성한 예배의 중심이시다. 그리스도는 그가 말씀하신 것이나 행하신 것, 고통당하신 것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인격에 의해서도 예배의 중심이시다. 사도들의 영광은 그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보고 손으로 만진데 있다. 그리스도는 단지 선지자들 가운데 최고의 선지자이고 사도들 가운데 머리이실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우리 신앙의 모든 영광을 몸으로 구현하신 분이시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그의 이름으로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 세상의 방식을 변화시킨, 거듭나고 생명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이름으로부터 나온다.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곳에만 참된 기독교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한 때 있었던 위치나 말한 것, 행한 것, 인내한 것이라는 전통으로 다스리시지 않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면서 냐라와 민족과 세대와 가족과 개인에게 사용하시는 실제적인 능력으로써 통치하신다. 그리스도를 위하느냐 아니면 반대하느냐 하는 것이 세상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고, 모든 개인 생활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세상은 평안 가운데 기뻐할 것이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면 세상은 고난을 당하고 계속해서 괴로움을 겪다가 결국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거냐 아니면 계속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가운데 스스로 파멸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약화시키고 그리스도에게서 기독교를 떼어 내거나 기독교에 이교도들의 꾸며낸 철학적 이야기들을 섞으려고 하는 모든 노력은 영적, 도덕적 퇴보에 이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그리스도라는 최고의 이름을 부처나 공자, 마호메트 등과 같은 선상에 놓거나 다 같은 부류로 말하는 사람은 기독교와 모든 종교를 훼손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인류의 행복한 발전도 망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꾀어내고, 그 지식을 속이며 참된 하나님의 지식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 자체가 이생과 내세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이지만,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흐리게 만드는 모든 것은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찾는 것은 시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탐구할 것이다.
어느 날 여러분의 영혼이 모든 죄에서 깨끗해질 것이라는 보증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죄책이 더 이상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여러분이 어느 날 영광 가운데서 몸을 돌려받을 것이라는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거할 곳이 많은 아버지 집에 거하리라는 소망, 곧 영원한 빛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과 끝없는 교제를 나누며 지낼 것이라는, 간단히 말해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듣지 못했고 보지 못했으며 마음으로 생각도 못했던 것을 가져다 줄 유업을 받으리라는 소망이 바로 그리스도안에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다름 아니라 왕궁의 영광과, 거기에 들어 갈 수 있는 사람들의 영광이다. 이 최고의 영광이 구원인데, 이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한다. 하나님을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소유하는 것, 곧 하나님을 분명히 알고 복된 경배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과 영혼의 교제를 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영원한 구원의 핵심이고 진수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고, 또 여러분이 빛 가운데서 성도들과 함께 기업을 차지하도록 보장하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붙잡을 때에야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충만히 이해하고, 이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여러분에게 비치는 하나님의 지식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섭취한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구원을 준비하고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시며 언젠가는 구원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은, 단지 이 놀라운 사역이 완성되고 나면 그리스도께서 무대에서 물러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영광의 나라에서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으며 즐길 수 있는 분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영원히 계시지 않는다면 결코 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위에 있는 아버지의 집에 들어갈 때까지 이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천국 생활에서 완성될 것이지만, 지금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는 단지 미래의 계시에 대한 약속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리는 계시를 받고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이미 여기서 접할 수 있다. 복음서를 보면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 안에서 대략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원한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에게 나타났다.
승천하신 후에도 그리스도는 이 말씀 안에서 계속 살아 계신다. 이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이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그의 모습이 우리 가운데 거하고, 이 말씀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행한다고 말할 만큼 그의 인격과 모습을 아주 익숙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동안 사람들 가운데 다니셨듯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환경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오래 전에 하신 그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함으로 마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말을 거시고 교훈 하시고 격려하고 위로하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는 것도 전부는 아니다. 이 말씀에는 그리스도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능력들, 곧 활동과 영향력도 있다. 이 활동과 영향력은 불을 지피는 불꽃처럼 이 영혼에서 저 영혼으로 옮겨가고 사람의 가슴에 불길을 일으키며, 그렇게 해서 신성한 목적을 지니고 영적으로 성별된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였다. 이 사랑의 불길은 대대로 확대되어 왔고 오늘날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으며, 우리가 그 불길 안에서 살 특권을 받았을 때 우리를 품고 따듯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숨결을아주 가까이 느끼게 한다.
이 모든 것은 단지 20세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소극적인 결과가 아니다. 모든 현실 속에서도 이 사랑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나와 우리를 강권하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날마다 이 사랑을 부양하고 굳세게 하신다. 새로 태어난 영혼,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는 거룩한 생각, 우리가 행할 수 있게 된 모든 선한 행실 이것은 모두 성령의 놀라운 내주로 말미암아 일어난 하나님의 활동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셨고 지금도 매일 밤낮으로 오셔서 성도들의 무리 가운데 이렇게 거하심을 확증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각 사람을 아시고 이름으로 부르시며, 우리 마음의 필요에 맞게 자신을 주신다. 이와 같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우리 속에서 시작하신 일을 계속하시며, 인생의 성쇠를 통해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자비의 바다가 더욱더 영광스럽게 빛나도록 하신다. 진실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취하고 그리스도로부터 끌어 내는 하나님의 지식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고 가져다 주시는, 우리 영혼의 심연에서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식은 훨씬 더 많다.
그 지식의 신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께서 단지 이 형상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그 형상으로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이 형상을 우리 자신에, 곧 우리 인격과 우리 영혼에 새기신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내적 생명은 그리스도의 내적 생명을 만날 때 편안해진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그 모습을 남긴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할 때, 이것이 우리가 지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하나님을 아는 최고의 지식이다.
출처 자기부인 /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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