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카이퍼

제 38장 네 마음을 다하여

새벽지기1 2021. 9. 11. 07:55

사람의 마음보다 더 깊은 곳에 영혼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피실 때에는 마음뿐만 아니라 더 깊은 폐부까지도 살피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것에 대하여 ‘사람의 심장(our hea rt and our reins)을 감찰하시는 여호와'(렘 11:20)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사람들도 아주 긴장한 상태에서는 때때로 마음이 전부가 아니며 마음을 통과하면 가장 중앙에 있는 자아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요나단의 경우를 보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다윗은 의분하여 그와 그의 집에 충성을 다해 온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찾아온다. 그때에 요나단은 "네 영혼(역주 : 한글 개역본에는 마음이라 번역되어 있으나 영어 성경에는 thy soul로 나옴)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삼상 20:4)고 맹세한다.

 

여러분이 숙고해보면 여러분의 인생에 유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여러분의 영혼에서 나와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과 마음을 지나서 영혼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어떤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영혼 밖으로 나아가는 것 역시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외모에 대해 관심을 덜 가질 때에, 그의 용기, 힘 헌신과 자아희생에 대하여 더 많은 열망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은 점차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것을 여러분의 생활 속에 흡수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대체로 영혼에서 밖으로 나가는 정서와 마음의 표현은 감각보다 더 강하게 표현되지는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영혼과 관련될 때에만 진실하고 영구적인 가능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이 말은 인간의 마음온 불필요한 것이고 영혼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설상은 그 반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영혼의 절대필수적인 기관으로서 마음을 주셨던 것이다. 영혼 속에서 일어나는 감동은 마음을 통해서만 사랑이라고 하는 최상의 가치와 고상한 표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에서 마음을 첫째로 언급하셨다. 즉 “너는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뒤에, “너는 네 영혼(목숨)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서를 뒤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의 영혼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로 온다. 우리 마음은 그것을 흡수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 마음을 통하여 인간 영혼 속으로 들어와 영혼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상호적인 사랑의 삶을 각성시킨다. 그리고는 다시 영혼에서 마음으로 들어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끔 만든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제일 마지막 단계는 단지 우리 마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우리 마음속에서만 사랑의 불꽃 이 점화되어 불타오르게 되는 것이다. 영혼의 사랑은 경배의 특성이 있다. 그러나 마음은 유연함과 따사로움을 준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이 사랑은 여러분 속에서 참된 인간의 느낌과 더불어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마음의 사랑은 불가항력적인 상호간의 매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이것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영혼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석이 쇠를 아주 강하게 끌어당김으로써 그 사이에 공간이 존재하지 않을 때 마침내 쇠는 자석에 달라붙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주 친밀한 인력이 작용해서 마침내 서로를 갈라놓는 요소가 사라져 버리게 되면 마음과 마음, 영혼과 영혼이 서로 합치게 끔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분리시키는 모든 것이 제거되고 나서야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사랑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랑을 통해 우리 마음이, 그리고 우리 마음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붙어 있게 된다.

 

성경은 되풀이하여 강력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 표현이 너무 강해서 여러분은 그것이 자신들에게도 적용되는가 반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그러한 많은 장애물이 있으면 하나님께 완전히 달라붙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외로운 중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아주 강권적으로 끌어당기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축복받은 교제로 그를 매혹해 버림으로, 실제로 하나님과 그와의 거리를 떼어 놓는 모든 것은 다 없어져 버리고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완전히 밀착되고, 그의 영혼이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느꼈던, 감격적인 중생의 짧은 순간들을 기억하게 된다.

 

물질계에서 인력이라 불리는 것이 영적 생활에서는 사랑이라고 불린다. 사랑이란 만들어지거나 탐구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 사랑의 정도가 강한가 약한가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위대한 사랑이 여러분을 향하여 작용하기 시작할 때에 이 인력의 불가항력성을 깨닫게 된다.

 

예수께서는 이 사랑의 출발을 "이끄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이끄신다." 구세주께서는 스스로 “내가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 것이다”라고 선포하셨다. 그 말은 즉 “내가 큰 은혜와 사랑으로 너희 마음에 역사하여 너희들이 내게 마음을 주며 복종하게 될 것이다’’란 뜻이다.

 

이 사랑에는 초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과격성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써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능력인 것이다. 태양이 꽃망울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그 열기로 꽃망울이 피게 하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을 그 사랑으로 향하게 하고 동시에 여러분의 마음이 거룩한 즐거움으로 부풀어 오르게 해 주며 퍽 은혜스러운 감동을 주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이 사랑을 홉수하거나 혹은 그렇게 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을 때 여러분의 영혼은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이 축복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위한 사랑이 순수하고 부드럽게 눈뜨게 된다. 세상에는 비인격적인 사랑이 있다. 우리가 자연을 사랑할 때에 그것은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매혹 하거나 장엄함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과학 정의 또는 고상하고 좋다는 평을 듣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안식을 찾을 수 없는 막연하고 일반적인 사랑이다. 왜냐하면 실제 존재하며 사랑을 느끼는 영혼은 인격적인 사랑 안에서만 만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저귀는 새나 가축은 좀 더 온순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이쪽에서 일정한 대상을 향하여 사랑을 퍼부으면 상대방에서도 반응을 한다. 개가 지닌 매력이 상당한 것은 인격적인 반응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것을 자연, 과학, 법에서는 발견하지 못하지만 여러분을 위해 목숨을 마다 않는 개에게서는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더 거룩한 사랑의 전주곡에 불과하다. 인간끼리의 사랑은 더 풍부한 언어로 말하고 더 고상한 특성을 나타낸다. 여기에는 높아짐에 있어 다른 정도의 사랑이 있다. 어머니와 자녀간의 사랑, 아버지와 아들 간의 사랑, 남매간, 결혼하기 전까지 친구간의 사랑, 이와 같은 것들은 때로는 인간의 죄에 의해 오염되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이상적인 상태에서는 지상 최고의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랑을 하나님 자신이 그의 택한 백성과 연합하시는 사랑의 상징으로 사용하셨다. 

 

그러나 결혼제도에서 조차도 사랑의 완성은 발견되지 않는다. 부부애는 본성적으로 더 고상해지려는 충동을 느낀다. 마침내 사랑이 가장 존귀하신 하나님을 추구해 나가게 되며, 하나님 자신의 사역에 의해, 여러분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불꽃이 점회될 때에만 여러분은 가장 고귀한 사랑에 도달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에는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으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도 않게 되며, 결국 가장 큰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그때에 일어나는 갈등은 여러분이 하나님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데서 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시지만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분은 높고 고귀하시지만 여러분은 그분이 만드신 하찮은 피조물인 것이다. 여러분은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받으실 수 없는 분이시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서로 동동한 위치에서 주고받는 상호적인 것이다. 성숙한 사람과 한 어린아이 사이에는 고상한 인격적 사랑이 개발될 수 없다. 어린 아이는 폭넓게 성숙한 사람만큼 상승할 수 없고 어른은 단순하고 친절한 어린 아이에게 내려 갈수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그렇게 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을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하여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불균형을 바로 잡으시고 자신을 여러분의 생명에 결합시키고 자신을 여러분 존재에 적용시키며 죄를 짓는 외에, 모든 것에 있어서 인간들과 동동해지셨던 것이다. 이것은 신비스러운 일이다. 이를 통해 예수와 연합하고 그분을 믿고 영혼 속에서 그와 하나가 된 신자들은 불균형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 하나님을 진실되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주셨으며, 자신들은 주님의 머리에 다시 가시관을 씌울 수 없다고 말할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단 한 가지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 때에, 이 한 가지 즉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여러분을 끌어당기는 대로 마침내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끌어당기게 되는 것이다. 

 

출처 자기부인 /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