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 만을 위해 존재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최고의 사랑의 대상이 되시고, 여러분의 모든 존재가 하나님께로 향한 사랑속에 몰입하게 하기 위하여 다른 것은 포기하려는 것인가? 마음에 의해 사랑이 누려지고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위한 사랑이 표현된디. 이것을 위해 여러분은 마음이라는 귀중한 도구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사용하고, 마음 위에 은혜스러운 사랑을 행사하는 것은 여러분 영혼의 중심에 있는 여러분의 자아인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격은 그곳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안에서 사는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 속에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사랑을 인식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들의 존재, 자아, 인격의 가장 깊은 곳에서 목숨(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 하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되 또한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신이 구원을 받아 행복해지기 위해 영혼과 자아의 일부로만 하나님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여러분의 소원, 장래, 자아 인식의 일부분을 철회하는 도적 행위를 계속함으로써 하나님과 자아 사이에 영혼의 분리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네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아주 두려운 것이며 또한 아주 포괄적인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사랑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으로부터 전혀 생명력이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 여러분은 답변한다 “이 계명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천사가 되어야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다”라고. 만일 여러분이 사람이란말에 "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단서를 붙인다면 그 말은 맞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인간으로서, 여러분을 위해서 이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을 이루셨던 여러분의 구세주가 계신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정말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이 구세주 안에 거한다면 여러분이 가진 사랑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영혼은 평안을누리게 될 것이다.
제 40장 네 뜻을 다하여
예수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마 22:37) 안에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만한다는 명령을 포함시키신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고상한 이상을 제시하실 때에,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사랑할 마음이 생기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곧 그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뜻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의 뜻은 생각하고, 숙고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뜻이 사랑의 기관, 사랑의 도구가 되어서 그것에 의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될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무심하게 읽는 가운데 이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에 대한 조목별 연구가 거의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그 구절을 성급하게 읽는 중에 마치 우리는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기만 하면 되고 사랑하는 일은 마음과 영혼이 해야 하는 것처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우리가 뜻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라거나 우리 생각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지력을 다하여 하나님에 대해 지적인 고백을 해야 한다거나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던지간에 그의 뜻의 활동을 하나님께로 행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구절은 명백하고 뚜렷하게 우리가 온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선포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신앙심은 예수에 의해 사랑이라는 이 강력한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이 사랑이 우리 인격 전체에 스며들어야만 한다. 우리의 활력이 중요한 동기,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의해 인도되는 것은 영혼으로부터 우리 마음과 또한 우리 뜻 안에서인 것이다.
여기에서 뜻은 논리적 사고 과정, 명확한 판단, 터득된 이해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창조 능력, 상상력, 숙고, 묵상을 내포한 우리 의식의 온전하고 훌륭한 은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힘은 인간에게서보다 자연계에서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자연은 존속한다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무의식적인 것이다. 여러분은 고등한 유기적 조직을 가진 동물에서 의식의 발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고등한 짐승에서조차도 의식은 극히 미약한 것이다. 하나님 한 분 속에서만 온전한 의식적 삶의 영광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독특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속에서만 발견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의식이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미친 사람의 의식은 혼미한 것이다. 가없은 백치를 생각해 볼 때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그의 의식, 자아 의식, 의식 생활이 얼마나 말할 수 없이 큰 축복인가를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의식을 인간의 마음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있어서 마음과 선한 사업만을 중시하고 그것에서 홀륭한 인간 의식을 제거해 버린 모든 종교는 스스로 불구가 되며,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은사를 도둑질해 버림으로써 잘못된 종교로 변질되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의 학문 역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 기독교 신자의 의무임을 느끼게 된다. 학문의 한 분야, 즉 신학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목적으로 하여 그 영역을 잘 개척해 나갈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학문이 총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끔 되어야 된다.
학문이 아무리 완전하고 박식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따로 떼어 놓고 그분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되거나 그분을 부인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학문이 아니라 죄악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온 뜻을 다하여 우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큰 계명을 거슬렸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모든 사랑의 개념에 어긋나는 것이다. 학구적인 탐구에서 하나님께로 향해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모든 것 앞에서 학문적 지식으로 하나님께 대한 영광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과학자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과학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혈관에서 하나님 사랑의 전율을 느끼지 못하고 마치 우리가 온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큰 계명을 전혀 받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교리 규범에도 이것은 똑같이 적용된다. 학자들의 수는 얼마 안되지만, 그들은 각자가 신앙을 고백하도록 요청되어진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닫기는 어렵지 않다. 모든 사람은 규범, 즉 주요 사상 체계를 가지고 있고 거기에서 나온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아무리 보잘것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근거로 하여 생활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고 행동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신앙을 고백하도록 요청받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삶의 규준이 하나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규범에서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삶의 기준이 하나님께 부합되어야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인생관으로부터 모든 나머지 것들은, 그렇게 명하신 하나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 순용해야만 한다. 모든 사람이 혼자의 힘으로는 이것을 명백히 할 수 없다.
모든 다른 측면에서 인류는 주요 사상과 근본 확신들을 이전 세대들이 획득해 놓은 지식으로부터 본 딴다. 오랫동안의 변치 않는 신조를 갖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 역시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다. 교회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하여 지나간 이전 세대 사람들의 신앙 경험의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만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관의 출발점으로서 이러한 교회의 신앙고백 규범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국민은 건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산앙고백 규범들이 인생관에서 사라지고, 사람들이 그릇된 교육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신비주의적인 마음의 사랑과 의지의 행동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때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퇴락하게 된다.
이런 잘못에 빠지게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서 자신의 뜻을 분리시킴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약화시키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대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니다. 학문과 교회 신조를 떠나서 우리의 일상 작업, 친분관계, 대화, 우리가 세우는 계획, 스스로 결정하는 행동방침, 품고 있는 의향, 독서 생활, 사람들과 일에 대한 생각, 신념들, 상상, 예술과 문학 감상, 판단행위, 과거에 대한 견해와 미래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 일상적인 평범한 의식 작용이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함께 여러 방면의 의식 작용을 형성한다. 그것은 우리 뜻 전체, 우리 사고, 연구, 숙고에 관한 모든 일상 활동 영역의 전당이며 일터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서 지속될 수도 있고 아니면 매사에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그의 이름에 대한 사랑으로 점철되어 행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위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단지 우리를 인도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지배할 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 줄 알고 기꺼이 그렇게 하게 되길 원하신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다른 어떤 것을 하고자 할 때에도,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막기 위해서나, 그것에 의해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다. 단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인해, 그분을 위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귀중한 은사인 의식을 가지고 감히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 계획을 세우거나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출처 자기부인 /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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