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마음, 목숨, 힘,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차 잊혀져 가고 있다. 적어도 주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뭇사람의 가장 큰 임무인 데 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심지어 신자들 중에서도 둘째 계명을 첫째 계명의 위치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헌신과 열정을 잃어버린 무력한 계명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강단에서 하나님에 대한 고귀한 의무가 강론될 때보다, 이웃을 위해 동정과 아량과 자아 희생을 하라는 설교가 외쳐질 때에 더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은 주종의 전도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한다. 그러나 반대로 이웃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첫째 계명은 둘째 계명을 보장해 주지만 둘째 계명은 첫째 계명을 지키도록 해주지는 못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형제는 미워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회의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이웃을 돕는 일에는 앞장서나 하나님께 대해서는 차돌처럼 냉정한 태도를 취하는가 하면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마저 부인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둘째 계명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다시 교회 강단에서 강력하게 주장되어야 한다. 자신의 임무를 올바로 인식하는 설교자는 매 주일 아주 열렬하게 웅변적으로 교인의 양심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호소한다. 마침내 전교인들은 “우리 목사님은 얼마나 하나님을 열정으로 사랑하는가!"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마치 나무에 불이 붙듯이 교회의 지도층에 있는 임원 전체에게 퍼져 나가게 된다.
이 일은 시급히 시행될 수 있고 또 그래야 만한다. 이 책을 통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인 일과보다도 하나님과의 교재 그 분에 대한 지식, 사랑의 필요성을 깨닫는 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바란다. 기독교에서 건전한 신앙, 흠잡을 데 없는 행동, 많은 선한 사업이 필요한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기독교의 정수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복된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황금빛 찬란히 빛나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이러한 교제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런데 사람이 진지하게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는 순간, 그는 곧 커다란 난관에 부딪쳐 비틀거린다는 사실을 굳이 숨길 필요가 있겠는가? 이 난관은 이 장의 제목에 나온 두 단어(With all)에 있다. 아니면 두 단어 중 뒤에 나온, 마음을 힘들게 하는 단어(all)에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실상은 성자라 불리는 사람들조차도 생활 가운데 이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죄와 세상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분리시켰다. 그래서 기도시간 외에 때때로 하루에 서너 차례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언급하려면 먼저 우리 영혼을 순화시켜야만 한다. 여기에 덧붙여 교회에서나 집에서 드려지는 기도들 가운데 상당수가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무관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여러분의 영혼이 적어도 하루에 몇 차례에 걸쳐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시간을 가진다 하자. 그 때에 여러분의 사랑의 열도는 어느 정도이며 시간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가? 더 나아가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을 느끼게 되는가?
그 질문에 대해 매일이 아니라 어쩌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에, 그것은 마음, 목숨, 힘,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얼마나 못 미치는 것인가? '다하여'(all)란 말은 의심 없이 하루 종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한 사랑이 없어지거나 여러분 속에서 잠자고 있는 시간이 전혀 없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물론 구별되어야만 할 사항이 있다. 즉 우리가 영혼 안에서 하나님께 대한 부드러운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는 것과 그의 사랑이 우리 심령 속에서 상호 교류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 할 때에도, 마음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치밀어 올라와 말로 번쩍이며 그것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와 이기심에서 떠나게 하며, 헌신과 담대한 행동을 하도록 해 주고 이 사랑의 영감이 우리들 안에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순교자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죽음을 감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죽는 바로 그 순간에 말할 수 없는 고통 아니면 핍박자의 조롱에 마음이 산란해져서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다. 또한 우리의 사업, 사람과의 교제, 그리고 우리 마음에 가득한 염려들로 압도되어 우리들은 하나님께 그저 스쳐지나가는 말을 건넬 수는 있으나 우리의 영혼과 감각들을 하나님께 집중시킬 수는 전혀 없는 것이다. 한편 종일 명상에만 빠져있는 하나님께 대한 신비주의적인 사랑은 결국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맡아 감당해야 할 임무를 소홀히 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올바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마음, 목숨, 힘,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는 것은 역시 첫째 가는 으뜸 된 계명인 것이다. 우리 중에 누가 이 계명 전체의 극히 일부분이라도 성취 했겠는가? 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지킨 분은 단 한분, 즉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이웃 사랑에 대한 둘째 계명에 대해서 여러분은 예수 한 분만이 그것을 완전히 성취했음을 느낄 것이다. 많은 성자들조차도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 단지 먼발치에서 주님을 뒤쫓았을 뿐이다.
여러분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추적해 볼 때에 예수께서 홀로 완성점에서 계신 것을 알게된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 주님만 이 홀로 항상, 일순간의 중단함도 없이 끝까지 마음, 목숨, 뜻,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던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가진 영광의 면류관이다. 그 분 안에 세상의 생명이 있다. 온 세계 속의 수십억의 사람들 가운데 주님 한 분 외에는 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지킨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홀로 그 계명을 성취하신 것이다.
이 순수하고 완전하고 진실한 사랑은 참된 인간의 마음, 참된 인간의 영혼, 참된 인간의 의식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드리는 사랑의 기쁨을 누리시기 위해 이 지구상에 수많은 인류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지금도 관용하시며 운행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장차 이 사랑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는 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지만 장차 영원한 세상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댜
그리고 또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에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될 때에 그러한 사랑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잠들면, 즉 우리가 죽게 되는 순간에 우리와 예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 전혀 없게 될 것이다.
여러분을 예수께 결합시키는 접착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러한 사랑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넘쳐 흘러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며, 여러분이 그것을 가장 귀히 여기고, 자신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여러분을 감동시켜 여러분으로 하여금 최선의 목적을 이루게끔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러분이 예수님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처럼 완벽한 사랑에 몰입할 때에 예수님의 그 사랑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과 또한 이 사랑의 불꽃이 꺼져갈 때마다 예수께서 다시 사랑의 불꽃을 붙여 주신다는 것, 바로 이러한 일들이 그리스도인의 신비한 체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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