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카이퍼

5장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실 때(2)

새벽지기1 2021. 8. 9. 06:27

이것이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소생시킨다. 그는 선지자적 담대함을 가지고 주님께서 다시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는 날이 올 것을 예견하고 이 생각에 힘을 얻어 선포한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시 102:17). 

그는 사실상 여전히 주님께서 그 백성의 간구를 들어 주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훗날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간구를 들어 주시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편 기자는 하나님 자신에게서부터 인간의 소원에 반대하여 일어나는 다른 의견들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여러분은 스스로 다윗의 의견과 전혀 다른,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훨씬 더 지지하는가? 

 

그러나 다윗보다 더 아름다운 상상의 경지에서 하나님의 편재하심과 전지하심을 묘사한 사람이 있었던가? 여러분의 모든 기도들은 대부분 그의 글들에서 본 따온 표현들이 아닌가? 그는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라고 질문하고 시편 139편에서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라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사실 시편 기자는 모든 선지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덕들을 묘사해 놓았다. 그리고 성경 어느 곳에도 그의 표현보다 더 정확하게 전능하신 분의 신비스러운 일들이 은밀하게 또는 공공연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뛰어나게 성스러운 시인은 거듭 하나님에 관해서 또한 이 기도 문제에 있어서 아주 인간적으로, 인간끼리의 친한 교제가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에서 의미를 지니는 것 외에 의미하는 바를 언급한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대해 외면하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또 반면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때가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라.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이 말씀하신 진리를 믿는다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여러분은 그분 앞에 꿇어 앉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 외에 무엇이 성육신이란 말인가? 만일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오셨다는 것을느끼지 못한다면 이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인간의 말로 말씀하셨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인간의 본질을 입고 나타나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자신을 인자(Son of Man)로 계시하신다. 이 땅에서 인간의 마음은 말과 행동으로 표현된다.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말한다. 

 

모든 기독교 신양 온전한 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에 대한 막연한 추상적 상태에서 방황하게끔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분명한 확신 위에 기초한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인간의 모습과 언어를 가지고 한층 더 가까이 오시려고 하신다 우리의 마음과 따뜻하고 풍성한 교제를 가지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게다가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이 진실한 실재에 근거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가정이 아니고 실제적 사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이며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거룩한 분이 인간의 형상을 입으신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을 때 하나님 아들의 이러한 성육신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창조와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인간적 방법으로 외에는 실현될 수 없는 하나님과의 따뜻하고 풍성한 교제 대신에, 하나님의 광대하심에 대해서 추상적 사상 체계를 확립하려 하고 그리함으로 그분과 당신 사이에 영혼의 교통과 교제를 막는다면 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이것은 기도드리지 않는 철학자들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들이 아닌 먼지와 같이 삭막한 신학자들에게 남겨두라.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그분과 따뜻하고 천진난만한 교제를 가지라. 

 

여러분은 기도의 실천이 시편 기자의 기록들을 보증해 준다는 것을 안다. 어떤 때는 하늘 문이 여러분을 향하여 열려져 있어, 기도할 때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여러분의 간구를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하게 해준다. 그런데 또 어떤 때는 기도가 형식에 불과하여 아뢴 내용이 도로 자신에게 되돌아오며 욥이 말한 대로(욥 22: 14) 뻑백한 구름이 여러분을 가리운다. 

 

이 가혹한 고독의 순간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여러분은 다시 하늘 문이 열리며 드린 기도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에 직접 상달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여러분은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시편 기자가 여기에서 아주 곤고한 영혼을 가진 사람의 기도에 다시 귀를 기울이시는 주님을 깨닫게 될 때의 축복에 관해서 단언하는 바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모순점의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결코 고렇지 않다. 여러분이 자신의 기도생활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여러분이 기도는 자신에게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며, 기도의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여러분 안에 들어간다고 믿지 않으며,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드린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역할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실로 여러분은 여기에서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그 점에 대해서 다르게 보다 더 옳게 생각하여 기도생활 역시 하나님에 의해서 촉진되며 지시되고, 여러분 속에서 수행된다고 확신한다면 문제 해결의 빛이 여러분에게 비칠 것이다. 농부는 새로 쟁기질 한 고랑 속에 씨를 부린 후에 일정한 기간을 묵묵히 내버려 둔다. 하늘에서 이슬과 햇빛이 비치어 씨앗에서 싹이 나오고 잎이 자라 열매가 맺히면 그때에 밭에 나가 수확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의 기도생활도 이렇지 않은가?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 역시 우리의 심령 속에 기도의 씨앗을 뿌리심으로 솔선하신다. 그 기도 생명이 우리 속에서 자라나야만 되며 우리 영혼속 에서 기도가 성숙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가 일어나 기도가 우리 속에서 보다 고귀한 형태로 꽃피워질 때에야 비로소 하늘에 계신 농부께서 우리 안에 있는 기도 생명으로 다시 돌아오신다. 그때에야 우리 영혼으로부터 하나님께 아뢰어 지는 것에 대해서 풍성하게 응답받게 된다. 

우리의 기도생활은 대체로 이와 같은 경우이다. 미련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정화된 기도에 도달하게 된다. 세속적인 기도를 통해서, 하늘에서 이슬로 떨어지며 보다 높은 차원의 햇빛을 비추는 좀 더 고상한 기도에 이른다. 

 

개인적이고 특별한 기도들이 그렇다. 이것들 역시 당장에 정화되고 완전하게 되지는 않는다. 이런 기도들 역시 영혼 속에서 한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다. 또한 뿌리에서 싹터서 단계적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기대하고 계신 것 같은 기도로 발전해 간다. 단지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기도, 사람 자신의 감각과 기질이 일치하는 기도, 단지 무의식적 생각분만 아니라 우리의 전 인격을 표현하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영혼을 쏟아 드리는 기도로 말이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간을 허용하고 계신다. 그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만일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즉각적으로 되어진다면, 우리 안에서는 기도생활이 발전하지 않게 되며 기도가 우리 안에서 정화되지 않는다. 우리 기도들 사이에 생겨난 잡초들이 우선 제거되어야만 한다. 그 사이에 기어 다니는 모든 전염병균들을 제거되어야 만한다. 그리하여 기도가 정화되고 성화되어 거룩한 의미에서 그것이 믿음에 의해서 성숙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신에게 여유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관심하신 것 같은 시련을 통해 기도의 성장이 보다 더 왕성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여러분의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도달해야 할 완전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어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된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다시 여러분의 기도로 향하신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룩한 기도 학교에서 훈련시켜 주신 것에 대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게 된다. 

 

출처 자기부인 / 글쓴이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