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카이퍼

제6장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새벽지기1 2021. 8. 10. 07:03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주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과거에는 사람들이 소리 자체는 목에서 나오며 그 힘은 제한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까운 거리에서만 들을 수 있지 먼 거리까지는 들리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말하고자 원하지만 통화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 줄 말이 있으면 심부름꾼을 보냈다. 그리고 좀 더 후에 위대한 글자의 발명이 있은 뒤로는 서신이 전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이 모든 것이 변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우리 목 자체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단지 공기 중에 진동을 만들어 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공기의 진동이 듣는 사람의 귀 속에서 진동을 받아들이는, 예술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람이 말할 때에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이 진동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공기의 흐름을 따라서 이 진동들이 우리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의 귓가로 가서 귀를 통해서 그 사람에게 똑같은 생각을 되살린다. 우리는 이렇게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목과 귀를 사용치 않고 아주 먼 거리에서 눈에 보이는 부호들을 매체로 하여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고 이리하여 전선술이 발명되었다. 사람의 귀에 대해서 사람의 목청이 하는 것과 비슷한 접촉이 긴 금속 줄을 통하여 얻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발견을 통해 인간은 전화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더 큰 발전이 계속되고 있다. 알려진 바 에 의하면 이성적인 의사소통이 전선줄 없이도 공기를 통하여 전달될 수 있어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옛날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요즈음에는 실현된다. 이 훌륭한 발명품들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꼬리를 물고 개발되는 것을 고려해 볼 때에 한층 더 발달된 개발품들이 기대되며, 아직은 너무 멀어서 통화가 어려운 지역들이라 할지라도 멀지 않아서 통화가 가능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연약한 믿음에 도움을 준다. 예레미아 선지자의 말을 빌려 가까운데 계신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먼 곳에 계신 하나님(렘 23:23)도 되신다는 사실온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간격이 없어지므로 비록 그분의 보좌는 하늘 위에 있고 우리는 이 땅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만, 하나님께 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고 우리의 간구하는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옆에 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소근소근거리며 기도할지라도 말이다. 

 

다음의 질문보다 이에 대한 좋은 설명은 없을 것이다 :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시 94:9). 

확신은 하나님의 편재성에 대한 고백과 그분께서는 모르는 것 없이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에는 상상력을 뒷받침 해 줄 것이 전혀 없다. 

 

그리고 전혀 다르게 된 것이 이런 것이다. 우리 무능한 피조물들이 온 세계에 우리의 소리를 들려주며 서로 자신의 뜻을 알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금은 무선으로 수천마일 떨어진 거리에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은 이것이 한층 더 개발될 의사소통의 일각임을 보여 줄 뿐이다. 우리는 현재 이 의사전달이 마침내 무한히 확장될 방법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수단들을 창조하였을 분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주관하시는 우리의 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높은 영광의 보좌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시고 우리의 영혼 속에 속삭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알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우리가 그분께 간구하는 소리가 아무리 작을지라도 그 방법이나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모든 간격은 제거되기 때문이다.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삶에 대해서 우리에게 점점 더 뚜렷해지는 사실은, 그때에는 때때로 몇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모든 제한 조건이 없어지고 영화로운 삶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의 택함 받은 모든 성도들과의 교제가 한 번에 그리고 동시에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입증해 줄 것이다. 교통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성도들과 교제하셨던 것과 꼭 같은 방법으로서가 아니고 다만 비슷한 방법으로의 교제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엄청난 거리에 었는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 안에서 하나님께 더 나아가고 하나님은 말씀하심으로 우리에 게 더 가까이 하시는 것과 같이 여겨진다. "주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라는 기도에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라는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에게 더 구체적으로 된다. 

 

하나님과의 은밀할 동행에서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심지어 우리 속에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말미암는 신앙의 열정조차도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성령의 내적 사역이 많을수록 우리와 하나님과의 거리는 없어진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가까이 계시는 성령의 임재를 느끼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상대방의 귀에 들리는 것처럼 친밀한 속삭임인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보다 거룩한 평화가 심령을 가득 채우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스러운 즐거움이 우리를 신비한 황홀경으로 빠져들게 해준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것에 관해서 다루지 않겠다. 여기서 우리는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지만 죄나 고통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으며 하나님도 역시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아주 거룩한 신자들의 경우에도 계속해서 영혼이 이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그래서 마치 우리가 그분께 우리의 간구를 다시 들어주십사고 청원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라는 부르짖음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끼는 사람의 호소인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는 말씀은 처음에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의 외침은 모두 하나님과 우리 영혼, 우리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의 교제가 죄나 또는 괴로운 시험에 의해 차단되어 버린 불화의 국면에 속한다. 그때에는 다시 하나님과 우리와의 교제가 이루어지게 되어야만 한다. 전화를 비유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때 우리에게 전화를 거시고, 또 그분께서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전화를 응답한다. 그러면 끊겨진 관계가 다시 회복된다. 

 

하나님과의 의사소통 즉 교제는 우리의 삶을 성화시켜 주고 보호해 주는 능력이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하나님께서는 이 땅 에서 아주 높이 떨어진 하늘에 계시므로 우리가 무릎 꿇고 기도 하는 짧은 순간들만 우리가 그분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능한 한 중단되거나 방해되는 일이 거의 없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의 계속적인 교제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 된 자의 믿음의 능력의 비밀인 것이다. 

 

이전 시대, 즉 삶이 보다 덜 분주했을 때에는 이것이 지금보다 는 더 쉬었다. 현재의 삶은 우리의 신경을 너무나 곤두세우며 섀로운 사건들로 우리를 쉴새없이 압도해 오므로 하나님 앞에 고요히 영혼을 집중시킬 기회가 훨씬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과의 은밀한 동행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적인 의사소통의 발견물들에는 보상이 있다. 그것들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에 현실감을 더해 준다. 

 

그리고 과학적 발명물들은 우리의 경건한 삶에 도움이 된다. 그것들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오 주여, 내 말을 들으시고 나의 간구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라는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가운데 그것들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출처 자기부인 / 글쓴이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