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0 12

교회와 환경보호(신20:19-20)

교회와 환경보호(신20:19-20) 본문은 전쟁시에 지켜야 할 사항 중 수목을 보호하고 작벌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특별히 어떤 성읍과의 전쟁이 장기화 될 때에 일어날 수 있는 무분별함 파괴를 삼가라는 것으로, 가나안 땅은 수목은 백성들에게 여러 자원을 제공할 중요한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하겠다. 즉 자연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쾌적함과 평안을 주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적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보호는 교회(기독교)의 또 다른 사명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출애굽기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12: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애굽의 바로는 순순히 내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내리시기에 앞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싸인을 주고 받기로 하나님이 지침을 주셨습니다. 그 싸인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각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출12:6-7).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의 심판이 애굽에 임할 때 그렇게 피를 바른 집은 그냥 지나가시기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씻어주시는 피로, 예수님의 피가 묻어 있..

바울의 슬픔 (롬 9:1-5)

(2024/02/11, 주현 후 제 6주, 산상변화주일)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을 힘입어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족장들은 그들의 조상이요, 그리스도도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만물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 하나님의 불..

성만찬(7)(막14: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14:24) 위 구절은 성찬식에서 제공되는 포도주에 대한 기독론적 해명입니다. 포도주는 주님의 피, 즉 언약의 피라고 말입니다. 포도주는 색깔도 피와 비슷해서 “주님의 피”라는 말에 실감이 납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주님은 생명을 버림으로써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게 뻔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생명을 얻는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맡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방식으로 생명을 얻는다거나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려고 했으며, 십자가 위에서는 하나님이 당신을 버린 게 아..

성만찬(6)(막14: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막14:23) 성찬식에 관한 지난 묵상에서 로마가톨릭교회(이하 천주교)와 개신교의 다른 점을 짚었습니다. 그 이외에도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천주교는 미사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하는 반면에 개신교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부활절이나 성탄절 등, 큰 절기 때만 성찬식을 거행할 뿐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일 년에 4번, 많으면 매월 1회 정도 거행합니다. 개신교회의 예배에서 성찬식이 소홀하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몇 가지가 되겠지요. 첫째, 우리는 성찬식의 신학적인 중요성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둘째, 개신교 예배는 말씀에 무게를 둡니다. 셋째, 성찬식을 매주 행하면 형식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염려도 있습니다. 넷째, 큰 교회에서 성찬식..

성만찬(5)(막14: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막14:23)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성찬식에서 다른 점은 화체설을 받아들이는가 아닌가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반 청중들에게 포도주를 허락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미사에서 포도주는 성찬식을 집전한 사제에게 독점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학적인 것과 실천적인 두 가지입니다. 즉 이미 예수님의 피로 변한 포도주를 일반 신자들이 받는 중에 한 방울이라도 바닥에 떨어뜨릴 위험성이 있다는 겁니다. 빵은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미사에서 사용되는 성체는 모양이 오백 원짜리 동전과 비슷하게 생겼고, 맛은 밋밋합니다. 루터는 “교회의 바벨론 포로”라는 논문에서 로마가톨릭교회의 성찬식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비판했습니다. 첫째는 평신도에게..

마가복음 11장 1-11절: 나귀를 타신 이유

해설: 예수님의 일행은 드디어 시온 산 맞은 편(동편) 올리브 산에 이릅니다. 그곳에 베다니라는 마을이 있는데, 예수님은 그곳에서 제자 둘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시어 나귀 새끼 한 마리를 끌어 오게 합니다. 예수께서 미리 어떤 사람을 통해 준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2-6절). 제자들은 나귀 등에 겉옷을 걸쳐 놓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나귀에 올라 타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십니다. 올리브 산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 가려면 동편 문을 통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 문은 ‘황금문’이라고 불리는데,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실 때 그 문을 통해 들어 오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이 예루살렘을 점령 했을 때 그 문을 돌로 막아 버렸고 지금까지 그 문은 막혀 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많..

일터에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이유 [2024. 2. 20. 화. 일터소명 묵상]

일터에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이유 (야고보서 1:19-20)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일터에서 우리는 의사소통에 관한 어려움을 경험하는 때가 많습니다. 윗사람은 윗사람대로, 아랫사람은 아랫사람대로, 또한 고객들과 상대할 때도 소통의 어려움을 자주 경험합니다.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잘하고 소통을 잘할 수 있을까요? 해답은 경청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중요합니다. 경청은 그 사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윗사람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메모하는 것은 윗사람에 대한 예의입니다. 반대로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도 꼭 ..

그가 누구이기에 (막 4:35-41)

갈릴리 호수에서 일어난 사건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보여준 사건입니다.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도중에 큰 바람에 의하여 배가 흔들립니다. 그리고 물이 배에 차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고 불평합니다. 우리를 구해주셔야 하는데 죽게된 것을 내버려두신다는 불만입니다.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잠잠해집니다. 그리고나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고 믿음이 없다고 책망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두려움을 가진 채 예수님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가 순종하는지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아직도 예수님을 알아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풍랑사건은 중요한 계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가운데 나타..

인생은 하나님이 떠나시면 아무것도 아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떠나시면 아무것도 아니다. 글쓴이/봉민근 세상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은 없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에 쌓여 사는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기억하라! 인생은 하나님이 떠나시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전성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다.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전진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세상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기회가 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인생의 고난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욥을 보라 그리고 요셉을 보고 다윗을 보라! 사자의 굴에 다니엘을 보라! 한결같이 역전의 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