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6 12

저주 받은 주검을 처리하는 규례(신21:22-23)

저주 받은 주검을 처리하는 규례(신21:22-23)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받아 죽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주검은 나무 위에 매달았다(수8:29, 10:26). 그러나 비록 그가 저주받아 죽었다할지라도 그 시신을 나무 위에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었는데, 본문은 그와 같이 나무 위에 달린 시신을 처리하는 규례다. 한편 나무에 매달린 시체가 해지기 전에 장사 되도록 한 본문의 규례가 적용된 대표적 경우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아리마대 요셉에 대해 해가 질 때 장사 되셨다(요19:3-42). 즉 예수께서는 아무런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극악한 범죄자의 저주 받은 모습으로 나무 위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속량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2:31)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태복음21:28-31) 맏아들을 자처하는 유대인들, 그 중에서도 또 더 맏아들이라고 생각하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마23:23)고 따지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맏아..

겟세마네(11)(막14: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막14:41) 위 구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세 번째로 오시어 두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입니다. 우리 묵상공부의 본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의 번역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루터번역은 이렇습니다. “아직도 자고 싶고, 쉬고 싶으냐? 그만하면 충분하다.” 공동번역도 루터번역과 비슷합니다. 복음서가 묘사하는 제자들은 중요한 장면으로 가면 갈수록 예수님과 엇박자를 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습니다. 그게 좀 이상합니다. 복음서가 기록되던 시기에는 제자들의 지위가 확실한 기반에 섰을 때인데도 제자들의 실수와 한계를 전혀 숨기지 않..

겟세마네(10)(막14:39,40)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막14:39,40) 어제 묵상의 마지막 단락에 오해가 따를지 몰라서 한번 더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우리의 영적인 시야를 세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첫 단계는 눈이 감긴 상태, 두 번째 단계는 어렴풋이 열리는 단계, 세 번째는 환하게 열린 상태입니다. 이런 단계가 시험을 쳐서 점수를 매기듯이 확연하게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구별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겁니다.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단계, 조금씩 들리는 단계, 완전히 소리와 일치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 마지막 단계를 득음(得音)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겟세마네(9)(막14:39,40)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막14:39,40) 제자들이 피곤하기는 무지하게 피곤했나 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기도하기 위해서 주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시 잠에 떨어졌습니다. 이런 장면은 마가복음 기자의 편집 의도가 영향을 끼쳤다고 보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이 아닙니다. 잠시 한눈을 팔수는 있지만 이렇게 철부지 아이들처럼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위의 내용은 제자들의 기억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전승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복음서 읽기의 어려움입니다. 여기에는 객관적인 사실에..

평화의 전령이 되어 (눅 10:1-12) / 김기석목사

(2024/02/18, 사순절 제1주) [이 일이 있은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일흔[두] 사람을 세우셔서, 친히 가려고 하시는 모든 고을과 모든 곳으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가거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전대도 자루도 신도 가지고 가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아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거기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너희는 한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거기서 ..

기도를 배운다 / 김영봉목사

얼마 전, 후배 목사님 한 분이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스마트폰 앱에 초보자에게 단계적으로 마라톤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것을 따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앱이 안내하는 대로 한 번에 한 단계씩 하다 보니, 이제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을 했습니다. “기도 생활에 대해서도 그런 안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들 기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기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니 목사님께서 기도 코치가 되어 초보자들이 따라 하며 배울 수 있도록 안내하는 영상을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기도는 저절로 된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께..

예수님의 겸손을 배웁시다!(빌립보서 2:3-4)

예수님의 겸손을 배웁시다! (빌립보서 2:3-4)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기독교 역사 속의 성 프란체스코는 겸손한 삶의 자세를 잘 보여준 사람입니다. 누군가 그에게 어떻게 그리 위대한 일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가장 연약하고 비천한 자를 찾으시다가 저를 발견하신 모양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하도 보잘것없기에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자랑도 못 할 테니까요.” 이런 정도로 겸손하던 프란체스코에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엄격한 금식을 하곤 했는데 제자들에게도 금식을 하게 했습니다. 모두 잠이 든 ..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할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할까? 글쓴이/봉민근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할꼬? 잘 살고 복 받기 위한 수단이 신앙생활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그저 붙어서 기생충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득이나 보려는 마음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배우려 하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훈련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왜 나를 축복하시는가? 왜 내게 복을 주시는 걸까? 왜 나죠? 하나님의 은혜는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도저히 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받는 것이 은혜다. 하나님은 내가 없어서 일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용하심이 은혜다. 내 삶에 하나님이 중요하지 않은 때는 없다. 한 순간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못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