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1 13

미결 살인의 대속 규례(신21:1-9)

미결 살인의 대속 규례(신21:1-9) 본문은 성읍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시체는 발견되었어도 살인자가 누군인지 모를 때, 성읍 주민 전체가 공동 책임을 지고 반드시 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장로들은 아직 한 번도 부려보거나 멍에 메지 않은 암송아지를 택한 후 깊은 산골짜기로 끌고 가서 목을 꺾은 후, 장로들은 자기 성읍의 백성들은 살인죄의 무관하고 목격하지도 못했음을 맹세해야 한다(6-7절). 그런데 여기서 송아지의 목을 꺾는 것은 아직 붙잡히지 않은 살인자에 대한 징벌을 상징적을 나타낸 것이며, 구속사적으로 이 암송아지는 죄가 없으시면서도 죄인을 대신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표하는 것이다.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잠언17:15)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잠언17:15)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악인은 악하다"고 하고, "의인은 의롭다"고 해야 합니다. 악인의 악함 때문에 힘들어 하는데 그 악인의 편에 서서 악인을 두둔하는 사람 때문에 더 힘들고, 분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기준은 수시로 변하는 사람의 마음도 아니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도덕도 아니고, 나라마다 다른 법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고 그 말씀을 따라 악인과 의인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악인과 의인의 기준을 가난한 사람이거나 부자인 사람이냐로,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이냐로, 약자이거나 강자이냐를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

꽃이 피는 않는 씨앗

꽃이 피는 않는 씨앗 어느 나라의 왕이 신하들의 정직성을 확인하고자 여러 종류의 삶은 씨앗을 준비한 뒤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아름다운 꽃의 씨앗이네. 한 달 동안 각자 최선을 다해 꽃을 피워서 화분에 담아 오게." 신하들은 모두 정성 들여 씨앗을 심고 가꾸었지만 삶은 씨앗이었기에 아무리 좋은 비료를 주고 정성을 다해도 싹이 날 리가 없었습니다. 어느덧 왕이 말한 기한이 모두 지나자 궁전으로 신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하들 손에는 모두 아름다운 꽃이 자란 화분이 들려있었는데 씨앗이 자라지 않자 다른 꽃을 옮겨 심어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아무것도 자라지 않은 빈 화분을 들고 온 신하가 있어서 왕은 그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자네만 빈 화분을 가져왔느냐?" ..

새사람이 되었는데 옛 성품에 괴롭힘당하는 이유? / 신동식목사

새사람이 되었는데 옛 성품에 괴롭힘당하는 이유? 예수 믿는 신자에게만 있는 아픔이 있습니다. 불신자에게는 없지만 오직 신자에게만 있는 괴로움입니다. 바로 새사람이 되었는데 여전히 옛 성품에 괴롭힘을 당하는 일입니다. 예수 믿음은 새로운 피조물 됨을 의미합니다. 이전 것은 십자가에서 다 못 박았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성품을 소유한 존재입니다.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여러번 강조한 것은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엡4:22)”,“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

나를 버리리라(2)(막14: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막14:27)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출가를 마다하지 않은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로 예수님을 버리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런 이유를 거론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겁니다. 일반적인 두 가지 관점만 살펴봅시다. 첫째, 제자들의 배신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입니다. 자신들에게 밀어닥칠 불이익을 그대로 감수하기 어려웠겠지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당대에 의로운 사람의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심을 받을 수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의 제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시련을 각오해야 ..

나를 버리리라(1)(막14: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막14:27) 마지막 유월절 만찬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사이에 제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매우 심각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만찬 자리에서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 감람산으로 가는 도중에 일어난 대화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스가랴 13:7절의 인용입니다.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제자들은 한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흩어졌습니다. 이런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군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몸으로라도 막지 못했다는 잘..

성만찬(9)(막14:26)

'이제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니라.'(막14:26) 마지막 만찬이 끝난 뒤 예수님 일행은 찬미했다고 합니다. 이 찬미는 유월절 만찬이나 성만찬에 모두 적합한 의식입니다. 그 자리에 찬미가 왜 필요한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생명과 구원이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다는 것이 대답입니다. 생명과 구원은 인간에 의해서 다뤄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니까요. 그것을 아는 사람은 찬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그럴 때만 찬미할 수 있습니다. 예배 찬송의 의미를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이들은 자기감정에 사로잡혀서 즐겁게 찬송을 부릅니다. 그 안에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엄중한 사태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부르는 찬송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찬송일..

성만찬(8)(막14: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막14:25) 위 구절은 헬라어 원어로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멘 레고 휘민” 아멘은 진실로, 레고는 나는 말한다, 휘민은 너희에게라는 뜻입니다. 아멘으로 시작되는 문장은 예언자적 어투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강한 확신을 전제합니다.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이 주신 클로징 멘트는 한편으로는 비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첫째, 비장한 이유는 이 식사가 마지막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마지막 식사가 주어졌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 느낌이 예수님에게도 있었습니다. 둘째, 희망으로 가득한..

이성부 시인의 '봄' / '회복의 봄은 반드시 옵니다'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이성부 님의 시 「봄」을 하나님께 드리며 ‘회복의 봄은 반드시 옵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 너는 온다 / 이성부 님의 시 봄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달력 속 입춘은 지났건만, 응달엔 아직 겨울이 고집스럽게 웅크리고 있고, 남은 겨울 바람이 꼬끝에 아싸합니다. 겨울은 분명 뒷걸음질치고 있지만, 아직 봄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는 듯, 멀리서 멈칫거리며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가수 김창완 님의 동시 봄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오늘도 무지 추운데 / 오다가 학교 담벼락 밑에서 / 봄을 만났어요 / 반가워서 인사를 했더니 / “쉿, 아직은 비밀이야.” 그랬어요 / 쉿! 비밀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

마가복음 11장 12-14절: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해설: 다음 날 아침, 예수님은 다시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식전이어서 시장하셨던 예수님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다가가십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없었습니다. 아직 “무화과의 철” 즉 열매가 익을 때는 아니었습니다(13절).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나무는 유월절 즈음(3월 말에서 4월 초)에 가지에서 열매가 나기 시작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그 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1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무화과나무도 생명체인데,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그 나무를 저주하시다니요! 그 나무에게 저주 받을만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먹을 만한 열매가 열리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다짜고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