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2 12

아내로 삼을 수 있는 포로(신21:10-14)

아내로 삼을 수 있는 포로(신21:10-14)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여인을 제외하고 전쟁 중에 포로로 잡은 이방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10-11절). 그러나 백성들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결 예식을 행해야만 했다. 본문은 바로 그 정결 예식에 관한 규례다. 한편 본문은 일단 아내로 삼은 이방여인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노예로 팔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14절). 이는 가련한 이방 여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발로였으며, 그 이면에는 백성들이 성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이기도 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4:6-7) 우리가 이 땅의 삶을 사는 동안은 염려할 일도 많고, 근심거리도 많고, 문제거리도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이것들을 바라보면 마음의 평강은 깨지고 염려와 근심과 문제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다만 기도하라, 다만 간구하라, 다만 하나님께 구하고 싶은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사람의 지성, 사람의 사고, 사람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하나님께서 염려거리, 근심거리, 문제거리를 넘어서게 하시고, ..

카테고리 없음 2024.02.22

감나무에 까치밥

감나무에 까치밥 장편소설 '대지'로 193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 여사의 한국 사랑은 유명합니다. 그녀는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부모님을 따라 약 40년을 중국에서 보냈음에도 평생 한국을 가슴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살아 있는 갈대'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에 대해서 예찬했습니다. '한국은 고상한 민족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다.' 또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내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이며, 다음으로 사랑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쓰여 있을 정도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한국에 대한 애정이 생긴 계기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몇 번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그중에 '까치밥'에 얽힌 일화가 있는데 그녀는 따지 않은 감이 감나무에 달린 것을 보고는 주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저 높이..

나를 버리리라(6)(막14:31)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막14:31)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자기의 믿음을, 자기의 진정성을, 자기의 순수성과 본심을 몰라주는 주님이 야속했는지 자극적인 언사로 예수님의 발언에 토를 탑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지금 이 말을 하고 있는 베드로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뭔가 불안하지 않았을까요? 정말 예수님 말씀처럼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도 예수님이 반복해서 그걸 부정하셨으니 말입니다. 심리적으로 본다면 이렇게 ..

나를 버리리라(5)(막14: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막14:30) 스승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실로’는 ‘아멘’의 번역입니다. 강조법입니다. 예수님이 이 대목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베드로의 진술이 무책임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깨닫지 못합니다. 닭이 두 번 운다는 표현은 로마와 헬라 시대의 관용어입니다. 해가 뜨는 순간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에서 닭을 키우지 못한다는 라삐 규정이 있다는 사실을 마가복음 기자가 잘 모르고 이런 말을 한 거 아니냐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라삐 규정은..

나를 버리리라(4)(막14: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막14:29) 베드로는 수제자라도 되는 것처럼 앞에 나서서 큰 소리를 칩니다. 그 표현이 가관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당신을 배신하더라도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책임을 질 수 없는 말을 내뱉었군요. 베드로가 제자 공동체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었는지를 직접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복음서의 관심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이었으니까요. 제자들의 선교에 대한 보도라 할 수 있는 사도행전도 열두 제자들보다는 바울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는 몇 가지 단서가 있기는 합니다. 복음서에서 베드로의 위치가 다른 제자들에게 비해서 두드러진 것은 분명합니다. 공관복음서 모두 전하고 있듯이 베드로는 ..

나를 버리리라(3)(막14: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막14:28)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주님은 부활 후에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필이면 왜 갈릴리일까요? 어떤 이들은 갈릴리를 예루살렘과 대립적인 개념으로 해석합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이고, 갈릴리는 변방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를 살해한 곳이고, 갈릴리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시작되고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율법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갈릴리는 복음의 중심입니다. 갈릴리로 가리라는 말씀을 낭만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요.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던 갈릴리 호수와 가버나움에서 활동하던 그 시절이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그곳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득세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공생애 초기..

마가복음 11장 15-19절: 종교 소비자

해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신 후 곧바로 성전으로 가십니다. 성전 본체 바깥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습니다. 그 마당은 ‘이방인의 뜰’이라고 불렸는데,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이 예배 드릴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당에는 성전 제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파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어디에서도 이방인들이 모여 기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제사에 쓸 짐승을 엄격하게 검사하여 흠이 없는 것만을 허용했습니다. 그들은 순례자들이 가져 온 짐승에 대해 온갖 트집을 잡아서 불합격 시키고는 성전 상인에게서 제물을 사게 만들었습니다. 상인들과 제사장들의 결탁이 있었기에 성전에서 파는 짐승들은 아무 문제 없이 검사를 통과 되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제사 드리기 전에 성전세를 내..

리더십이 하나님 나라! [2024. 2. 22. 목. 일터소명 묵상]

리더십이 하나님 나라! (마태복음 19:27-28)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지만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일까, 궁금합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예수님은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다스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직업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는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말씀하시는 천국의 모습 중 비즈니스와 관련된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일찍이 목수로서 건축 분야의 비즈니..

변해야 산다.

변해야 산다. 글쓴이/봉민근 이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의 홍수시대다. 방송이든 유튜브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말씀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정반대로 가고 말씀이 귀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다. 가령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다 하자. 과연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 이웃을 위하여 실제적으로 내가 한 일이 얼마나 되는가? 원수는 사랑하지 못할 망정 이웃에게 거침돌은 아닌가! 나 자신 말로만 믿고 말씀이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귀는 들어도 마음은 열리지 않는다. 닫힌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니 삶이 없다. 때로 나는 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가 하는 의구심으로 나 자신에게 자문할 때가 있다. 말씀대로 살지 않을 것이면 성경을 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