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8 11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다니엘5:14)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다니엘5:14)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을 이어 왕이 된 벨사살 왕이 다니엘에게 한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르고, 바벨론의 다신론적인 생각으로 오해하고 있었지만 그도 다니엘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들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다니엘 안에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계셨고, 다니엘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사람들이 봤습니다. 성령께서는 다니엘에게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를 주심으로 다니엘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바벨론의 왕들과 고관들과 모든 바벨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다니엘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보았듯이 지금도 모든 믿는 자 안에 들어오셔서 역사..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시대 / 김영봉목사

요즈음 가장 자주 이야기 되는 주제 중 하나가 ‘생성형 인공지능’ (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입니다. ‘생성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인공 지능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선택하는 수준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사용자가 지시하는 명령을 수행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사용자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인공 지능을 연구하고 개발한 사람들 대다수는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공 지능은 인간의 예측을 넘어섰고, 개발자들은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지를 아직 정확이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난 주 뉴스에 보니, 생성형 인공 지능 개발에 참여했다가 인류의 미래에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한 어느 연구자가 생성형 ..

성만찬(1)(막14: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막14:22) 막 14:22-26절이 진술하고 있는 마지막 만찬에는 전승사적으로 세 가지 사건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지금 교회에서 행하는 성찬예식이 그것입니다. 성찬예식은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종교적 징표입니다. 특히 예수의 수난에 참여하는 징표입니다. 우리가 간접적으로 예수의 수난에 참여함으로써 그의 구원에 참여하게 됩니다. 초기 기독교부터 이 성찬예식은 기독교 예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둘째, 예수의 수난 전승에 자리한 이 만찬은 유월절 만찬입니다. 유월절 만찬은 고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해방된 그 날을 기념하는 행사였습니다. 초..

예수를 팔 자(4)(막14: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막14:21) 18절은 ‘나’를 팔리라고 하는데 반해서 21절은 ‘인자’를 판다고 했습니다. 나와 인자가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은 종말에 와서 세상을 심판할 어떤 이를 가리킵니다. 묵시문학적인 표현입니다. 원래 예수님은 인자와 자신을 구별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 8:38) 부활절 이후 초기 기독교는 예수님과 인자를 동일시하게 되었습니다.(마 10:32 참조) 이런 동일시가 위 ..

예수를 팔 자(3)(막14: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줄 둥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막14:20) “나는 아니지요?” 하는 제자들의 근심어린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이런 문장은 고대 유대인들의 식사 습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헬라어 ‘트뤼블리온’은 접시, 쟁반, 그릇, 수프접시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전식입니다. 이 접시에 과일 잼이나 소금물이 담기는데, 사람들은 빵을 거기에 찍어서 먹는다고 합니다. 이런 식사의 특징은 함께 먹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한 접시에 함께 넣고 먹으면서 그들의 조상들이 이집트와 출애굽 당시에 겪은 참상과 하나님의 구원 은총에 감사했습니다. 생존의 위협에 처한 사..

시편 130편: 바라고 기다린다

해설: 이 시편은 ‘데 프로푼디스’(De Profundis, “깊은 곳에서”라는 의미의 라틴어)라는 이름으로 사랑 받아 온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순례자의 노래’ 중 하나이며, 일곱 개의 회개 시편 중 하나입니다. “깊은 물 속에서”(1절)라는 말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곤경에 대한 비유입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져서 죽어가는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기도자는 자신의 영혼이 속절 없이 바다 속으로 침몰해 가고 있는 것 같은 상황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의 소리를 들어 달라고 호소합니다(2절). 이어서 기도자는 자신이 깊은 곳에 처한 이유를 밝힙니다. 그는 지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죄책감에 끌려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자신을 지켜 보고 계시다고 느낍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막 4:13-25)

귀가 있다는 것은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듣게 하기 위하여 귀를 창조하셨습니다. 듣는 것은 또한 깨닫는 것을 포함합니다. 깨달을 때 행동할 수 있습니다. 행동의 시작은 듣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씨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알려주셨습니다. 거듭난 자만이 이 비유를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씨뿌리는 것은 말씀을 뿌리는 일입니다. 길가에 뿌려진 말씀은 뿌려지자 마자 사단이 와서 빼앗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돌밭에 뿌려진 말씀은 뿌리없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인한 시험과 환란에 넘어짐을 의미합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진 말씀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각종 탐심에 빠져서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반면에 좋은 땅..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하는 것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하는 것 글쓴이/봉민근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알려는 노력이 늘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착각들을 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는 절대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이는 심각한 신앙적 오류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이 아닌 인격적인 만남이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 한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더 깊은 영적 세계로 들어가기를 소원한다. 열정적인 신앙, 깊은 기도, 말씀과 예배를 사모함,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더 알고 가까이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목표는 오..

복음의 역사는 은밀하지만 위대합니다.(막 4:26-34)

막 4:26-34 묵상입니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 비유는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올바로 반응합니다. 뿌린 씨가 열매 맺는 신비를 모르는 농부. 하나님 나라 또한 은밀히 성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 같습니다. 작지만 크게 자라 공중의 새들이 깃듭니다. 복음의 역사는 은밀하지만 위대합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다스리심이 신비입니다. 나에게 임한 구원의 은혜가 신비입니다. 성령님의 강권적인 사랑을 찬양합니다.